8주간 이어진 <창조적 진화> 강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에 정말 많은 내용이 담겨 있는 책이었는데요. 주옥같은 비유와 함께 베르그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놀랍고 흥미로운 지점들이 많았습니다. 이제 그 지점들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고 각자의 삶과 연결지어나가는 과제가 우리에게 남았네요. 앞으로 이어지는 베르그손 세미나에서 함께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마지막 강독에서 인상에 남은 부분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부정의 메커니즘
4장에서 베르그손은 3장에서 언급했던 ‘부재’의 개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3장에서 베르그손은 뭔가의 부재를 나타내는 말이 실제로 그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단지 자신이 기대하던 것이 없다는 의미일 뿐이라는 놀라운 주장을 내놓았지요. ‘무질서’는 ‘질서의 부재’를 의미하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던 질서가 없는 데 대한 실망감을 객관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고요. 이처럼 ‘무’의 관념을 ‘어떤 것의 부재’로 생각하는 것, 바꿔 말해 ‘존재’의 관념과 대립하는 의미로 생각하는 것이 우리 착각임을 설명하기 위해 베르그손은 어떤 대상(사물이나 의식 상태)을 완전히 삭제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가령, 어떤 장소에서 사물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그 대상이 있던 자리는 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기억과 기대를 가진 존재죠. 우리는 그곳에 있던 대상을 기억하고 그걸 만나고자 기대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엄연히 존재하는 ‘다른 사물’을 발견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죠. 외적 대상들뿐 아니라 우리 정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의 의식에는 한 순간도 공백이 없습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A의 부재’를 생각하는 것은 우선 A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그러고 나서 그것을 지우는 거죠. 긍정은 사물에 직접적으로 근거하지만, 부정은 항상 긍정을 매개로 해서 간접적으로만 사물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긍정 명제는 ‘대상에 근거한 판단’을 나타내지만, 부정 명제는 ‘판단에 근거한 판단’을 나타냅니다. 가령 ‘이 탁자는 검다’라고 말할 때, 나는 바로 이 탁자에 대해 말하는 거죠. 하지만 ‘이 탁자는 희지 않다’고 말하면 그건 탁자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그것이 희다’는 판단에 대한 판단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는 또 다른 함축이 있습니다. ‘그 판단은 다른 판단으로 대치되어야 한다.’
여기서 또 재미있는 주장이 나옵니다. 베르그손은 부정의 관념을 ‘사회’와 연결시키는데요, 부정은 교육학적이고 사회적인 본성에 속한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부정하자마자 다른 사람들에게 또는 자기 자신에게 가르침을 주려고 한다. 그들은 실재하건 가능적이건 하나의 대화 상대자를 [상상하여] 공격한다. 그는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고 [따라서] 경계해야 한다. 그는 무언가를 긍정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다른 것을 긍정해야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428쪽) 이처럼 부정의 말은 사람을 교정하고 그에게 경고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 대상은 말하는 사람 자신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실재하는 것에는 공백이 없고, 매번 새로운 뭔가가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앞서 말한 심리적, 사회적 이유로 인해 부정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번 우리 삶에 들어온 이 거짓 관념은 삶 전체를 잠식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 없는 것에 얽매여서 지금 여기서 생겨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내가 마주한 것이 무질서가 아니라 다른 질서이고, 무형식이 아니라 다른 형식이고, 부조화가 아니라 다른 조화라는 것을요. 그럴 때 우리는 나의 질서, 내가 따르는 형식, 내게 익숙한 조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게 됩니다. 매순간 생겨나는 새로운 것들을 보지 못하게 되니, 습관적인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테고요. 부정의 관념 뒤에서 이런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니... 그동안 아무 생각 없이 써오던 말들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그 외에도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샘께서 정리해주신 베르그손의 ‘자유’ 개념에 대한 내용도 마음에 남습니다. <물질과 기억>에서도, 그리고 이번 <창조적 진화>에서도 자유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등장했지요. 베르그손의 개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자유가 ‘비결정성’과 더불어 생겨난다는 주장도 정말 새로웠는데요. 샘께서 이번 시간에 소개해주신 내용도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베르그손이 말하는 자유에는 신중함과 성실함, 심층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요구된다고 합니다. 이번에 우리가 만난 자유의 개념과도 연결이 되는 지점이 있는 듯한데요. 아마 앞으로 읽어나갈 베르그손의 저작들에서 더 자세히 만나게 되겠지요.^^
이렇게 두 계절에 걸쳐 이어진 베르그손 강독 강좌가 끝이 났네요. 그동안 규문에서, 줌에서 옹기종기(^^) 함께 모여 베르그손을 알아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그 여정이 계속 이어질 예정이어서 설레네요.ㅎㅎ 그동안 미처 씹지 못하고 넘겨버린 부분들을 되새김질하며 소화시키는 시간이 되길, 베르그손과 더욱 찐하게 만나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봅니다. 함께해요, 샘들!^^
네, 그렇죠. 우린 보통 “나의 질서, 내가 따르는 형식, 내게 익숙한 조화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게” 되지요. 나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너는 이렇게 저렇게 행동해야 해!”라는 요구도 나의 질서를 타자에게 강요하는 일이지요. 무질서를 내가 기대한 어떤 것의 부재로 이해한다고 해도 질서와 무질서의 관계에 다가가는 것이 점점 어렵게 느껴집니다. 뭔가 풀리지 않고 꼬이는 문제들이 많아 보입니다. 어쨌든 질서와 무질서에 대한 생각거리를 안고 갑니다.
두 계절에 걸친 베르그손! 올해는 베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서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창조적 진화> 마지막에는 ~이 아니다, ~이 없다는 부정형 표현 방식이 왜 늘 힘이 없는지 아주 아주 친절한 설명에 감복하고 말았습니다.
저항의 목소리든 앎의 표현이든 긍정형이 아니면 세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판단에 대한 판단만 계속하게 되리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니체가 왜 '나는 원한다'라고 전환하는 것이 존재의 변혁이자 창조라고 말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하지만 지성이 있고 언어가 있는 순간 부정형 표현과 사고가 생겨난다는 것도 재밌었습니다. 인간은 복잡한 존재이고 그 복잡성을 이리저리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게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