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니즘 철학이란
기원전 431년~404년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그리스 패권을 둘러싸고 30년에 걸친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치르게 된다. 패배한 아테네도 승리한 스파르타도 얼마 안 가서 쇠퇴하고 그리스는 중심 세력 없이 분열과 상생을 거듭하다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기원전 336년 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즉위하여 그리스 도시국가를 완전히 장악한 후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고 323년 사망한다. 한편 변방에 불과했던 로마는 포에니 전쟁(기원전 264~146)을 통해 서부 지중해의 최강자가 되었고 마침내 기원전 31년 아우구스투스 1세가 로마 제국 첫 황제로 등극하면서 그리스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알렉산드로스 사망부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등장하기까지 약 300년 동안을 헬레니즘 시대라고 하고 이때의 철학을 헬레니즘 철학이라고 한다.
헬레니즘 시대를 흔히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찬란한 대제국의 시절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리스 내부로 들어가 보면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불안의시대이기도 했다.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는 카르타고에서 거둔 자신의 승리를 보며 공포와 두려움에 눈물 짓는다(폴리비우스 <히스토리아> 중). 트로이, 앗시리아, 메디아, 페르시아, 마케도니아, 카르타고를 차례로 파멸시킨 운명의 여신이 언젠가 로마도 파멸시킬 것임을 직감하였기 때문이다. 정복자의 소회가 이러할진대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시대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사유했을까.
헬레니즘 철학의 근원은 소크라테스에 닿아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자연철학자들이 세상의 기원에 관한 질문과 함께 존재와 인식과 윤리를 고찰했다면 소크라테스는 이를 바탕으로 한발 더 나아갔다. 그는 철학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자신의 삶 자체에서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태도에서 증명하였다. 자신의 철학을 그대로 삶에서 살아낸 자. 이런 소크라테스 사상을 학문적이고 사변적인 측면에서 계승한 사람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이고 또 하나의 극단에는 거리의 삶 자체를 철학으로 만든 디오게네스가 있다. 이 극단 사이에서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견유주의. 피론주의 등 다양한 헬레니즘 철학이 형성되었다.
플라톤은 동굴 안에서 완전히 몸을 돌려 밖으로 나오는 회심을 통해 이데아라는 척도를 지향하는 철학자들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를 꿈꿨다. 철학자는 어떤 경우에도 모든 상황을 아우르는 보편적 지혜로서의 앎, 에피스테메가 필요하다. 이는 '영혼 돌봄'이라는 지속적 교육을 통해 도달할 수 있다. 현상적 가치에 영혼을 팔지 않은 소크라테스적 삶이 이런 교육의 목표이자 효과였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이 된 철학자가 가질 수 있는 도덕적 독점을 경계했다. 그는 플라톤의 이데아나 보편적 앎으로서의 에피스테메보다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실천적 지혜, 프로네시스를 지향했다. 이러한 앎을 얻기 위한 교육의 목적은 합리적 선택에 이르는 공동체적 인간의 양성이었다. 그러나 최고선인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적인 시선을 가지고 관조하면서 모든 사건을 평정하게 바라보는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폴리스는 이미 와해되었다. 군주정 사회에서 플라톤의 이상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공동체적 인간도 설득력을 잃어갔다.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무너져가는 그리스 정신, 팽창하는 마케도니아, 이로 인한 동방에서 유입된 신비 종교들 속에서 이제 각자의 '좋은 삶'에 대해 질문하며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선다. 그들에게 행복이란 두려움, 슬픔, 탐욕 등에 휩쓸리지 않는 내적 평온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삶에서의 실천이 중요했다. 아리스토텔레스까지만 해도 관조적인 것, 인간 삶과 떨어져 있는 앎에 대한 추구가 있었다면 이들은 훨씬 더 삶에 밀착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소크라테스적 전통과 더 맞닿아 있다.
이러한 실천을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자기 지배력, 자기 배려의 기술이라고 불렀다. 즉 외적 선들에 대한 욕망과 그에 따른 정념을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다. 자기 배려란 철학적 소화과정, 즉 이론적 원리를 행동으로 바꾸는, 영혼을 변형시키는 과정이자 훈련이다. 에피쿠로스는 "우선 너 자신 안에 있는 욕망과 욕구들이 어떤 것인지를 분석, 기술하고 재구성하라"라고 말한다. 자아의 본질보다는 자아의 행위 양식에 대해 질문하면서 자기가 온전하게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기술로서의 철학, 이것이 헬레니즘 철학이다.
지금 나의 철학은
처음 헬레니즘 철학을 접하게 된 계기는 푸코의 <주체의 해석학>을 공부했을 때이다. 철학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들은 그들의 철학은 너무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을 하는 듯했고 그래서 진부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돌고 돌아 역사적 맥락에서 다시 들여다보니 그들의 철학이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절감한다. 철학을 연구할 수는 있어도 철학을 살아낸다는 것이 그 시대에도, 지금 시대에도 얼마나 '드물고 귀한' 일이며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조금씩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자기 자신으로 온전하게 살아가게 하는 철학'이라니! 도대체 철학을 하는 이유가 이것 외에 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싶다.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있지 않냐는 질책이 뼈아프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난세가 아닌 적은 없었겠지만 난세에 대처하는 지식인의 자세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세상에 질서를 회복하고 인간을 교육하여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동양의 유가나 법가 같은 치자의 길이 있다면, 헬레니즘 철학처럼 평정심을 유지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각자 잘 존재함을 추구하는 동양의 노자나 장자에 해당하는 무위의 길이 있다. 어떤 길을 선택했느냐에 상관없이 자신만의 올바름을 가지고 삶 속에서 끝까지 그 올바름을 구현했다면 그 사람은 '행복'했으리라 믿는다. 문제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어떤 철학도 윤리도 없이 배회하는 나의 삶이다.
한때 종교적으로 믿는 신이 있었으면 했다. 그러다가 스피노자의 신에 대한 개념을 공부하고 왜 내가 나에게 신이 되어 줄 수 없단 말인가! 하는 깨우침이 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어쩌면 헬레니즘 철학의 자기 배려가 내가 내 자신이 되고, 왕이 되고, 신이 되는 내 삶의 윤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다음 시간을 기다려 본다. "양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여물을 양치기에게 가져오지 않는다. 대신 안으로 소화하고 밖으로 양털과 양유를 생산한다." 에픽테토스의 말처럼 헬레니즘 철학 윤리가 내 안으로 소화되어 나의 행위로 드러나 주길 바라는 기대감도 함께 가져본다.
와우! 철학하는 일요일이 이런 후기로 나오다니..!! 헬레니즘 문명과 노년의 철학. 교과서에서는 그저 찬란하다고 얘기된 헬레니즘 문명에서 왜 노년의 철학이 발달했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노년의 철학 또한 헬레니즘 문명을 꾸며주는 여러 장식들 중 하나로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러나 로마인들에게는 자신들이 정복한 도시들처럼, 언젠가 자신들 또한 그런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란 불안감 내지는 허무함 같은 게 있다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찬란함이 언젠가 끝나더라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은 지금 우리의 철학이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인지를 점검하는 시금석이 되기도 하죠. 철학 공부가 어떤 행위로 드러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이런 후기를 낳은 삶은 마냥 배회만 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