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양식(style)으로서의 철학과 디오게네스의 철학함
푸코는 말년에 '진리의 탐구'라는 기존의 철학의 이미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진리는 있는 것이 아니라 '구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누구와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라는 실천적인 지점과 결부된다. 어딘가에 있는 진리를 찾기 위해 권위 있는 텍스트의 맹목적 독자나 강의의 단순한 청중에 머무는 방식의 배움이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도모하는 일련의 작용 속에서 나의 생각을 의심해 보고 변환해 가는 상호침투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앎이란 그런 과정 속에서 생겨나는 열매이기에, 안다고 하는 것 자체가 이미 실천이 된다. 푸코는 이렇게 철학을 삶이라는 재료의 변환(style)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디오게네스는 푸코의 이런 고민 속에서 주목하게 된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이다. 그는 환전상이었던 아버지가 화페를 주조한 일 때문에 추방당하여 떠도는 삶을 살았다. 그는 어느 아테네 연회의 자리에서 거기에 끼지 못하는 자신의 처지를 낙담하던 중에, 생쥐 한 마리가 기어 올라와서 그가 먹던 빵 부스러기를 먹어치우는 걸 보고 자신이 놓인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냈다고 한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자신과 동일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철학할 수 있는 조건으로 전환시켰던 것이다. 그것을 위해 그는 자신을 '단련(아스케시스)'했고, 더우면 더움을 겪고 아프면 아픔을 겪는, '자연에 적합한 노고'를 택해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다.
그는 인간 생활의 모델로 '개(cynos)'를 제시하였는데, 실제로 일정한 영토(주거지)가 없이 부랑자로 걸식을 하며 살았고, 그의 말을 듣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를 찾아다녀야 했다고 한다. 개처럼 산다는 것은 막 사는 것이 아닌 진지한 결단의 문제였다. 자신이 소유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존(existence)이라는 자각과 함께 부와 명성과 같은 외부 조건에 연루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에 대한 관심을 철회했으며, 사회적 규약과 척도들로부터 자유로운 본성의 삶을 살았다. 인간다움의 관습적 규정을 벗어나는 의미에서의 '개 같은 삶'이 곧 그의 철학함이었다. 디오게네스는 자신의 실존 외에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었고, 그 어디에도 귀속되어 있지 않았기에 세계 시민(cosmopolitan)을 자처할 수 있었다.
디오게네스가 받은 신탁, "통화를 손상시키시오"라는 답을 '사회적 통념을 오염시키는 사유의 전개'로 해석했다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화폐를 위조(?)하다가 추방됐다고 하는 이야기도 너무 절묘해서, 어떻게 보면 디오게네스의 일화에 맞게 각색이 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ㅋㅋ 철학자란 사회에 속하지만, 그 사회 밖에 있는 절반(?)의 이방인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개 같은 삶'을 보낸 디오게네스는 이런 철학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아요. 크~ 디오게네스에 반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