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수업 시간에는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소피스트는 ‘지혜로운 자’라는 뜻이지만, 궤변론자라는 표현이나 진리를 중요시하지 않고 논쟁에서의 승리만을 가르쳤다는 플라톤의 평가가 더 익숙합니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짤막하게 나온 소피스트에 대한 설명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는 탓이기도 하지요. 소피스트들은 돈을 받고 지식을 판다는 점, 덕이 없는 자에게 무분별하게 지식을 가르쳐 사회를 혼란하게 한다는 점, 아테네의 신들과 과거로부터 전승된 지식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등 여러 측면에서 아테네 토착 지식인들에게 비판을 받았습니다.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소피스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고 소위 말빨만 기르는 쟁론술과 반론술을 가르치는 기술자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소피스트들은 아테네 외부에서 유입된 사람들이었고, 다양한 삶의 배경을 가진 이들답게 통일된 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으며, 사회마다 정의가 다르고 법과 관습은 자의적인 것인데 기존의 법과 관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강자의 이익만을 취하고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도덕에 대해 회의적인 관점을 취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잘 작동하려면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이에 대해 누구나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담론이 한 사회를 지배하고 그것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배제하는 상황이라면 사회의 역동적인 변화가 힘들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아테네도 아테네 토착 지식인들과는 다른 소피스트의 목소리는 힘을 얻지 못하였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으며 아테네는 정치적 혼란과 쇠퇴의 길을 가게 됩니다.
소피스트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소크라테스도 아테네에서 활동했는데 소크라테스는 금욕적인 신체단련을 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자신과 같은 삶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특정 정파를 지지하지 않았고, 아테네 토착 지식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노모스로부터 이탈하여 자기 안의 다이몬이 명령하는 대로 살았고, 자기 삶을 충만하게 살았습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채운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주역 ‘천지비’괘의 육이효가 떠올랐습니다.(六二 包承 小人吉 大人否亨.) 구오효와 상응하는 육이효에 해당하는 사람이 소인이라면 길한 것이고 대인이라면 비색하게 된다는 구절입니다. 비괘를 보며 왕에 의해 발탁되는 자가 왜 소인이면 길하고 대인이면 비색한 걸까 생각했는데 발탁되는 시기가 비괘의 시대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보며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아테네의 정치체제가 불안정해지고 사회가 혼란해지던 시기를 살았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다이몬의 목소리에 따라 정치에 나아가지 않고 자기돌봄을 실천하며 살았습니다. 불의한 시대에 편승하여 한 자리를 차지하거나 이익을 얻는 일을 따라가지 않고 스스로 충만한 삶을 살았던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비괘 육이효에서 말하는 대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자와 예수, 그리고 소크라테스처럼 당시의 권력에 편승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대인이고, 성인이 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피스트가 활동하던 아테네와 제자백가가 활동하던 춘추전국시대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소피스트들 만큼이나 제자백가도 여러 제후들에게 유세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팔았는데요. 뭔가 둘이 지향하는 비전부터 앎에 대한 태도 같은 걸 비교하면 서로의 담론이 좀 더 풍성해질 것 같아요. 그리고 소크라테스 또한 소피스트 중 하나라는 얘기가 있는 것처럼, 공자도 유세가 중 하나라는 얘기가 있었는데요. 소크라테스가 여러 텍스트에 걸쳐 상반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처럼, 공자도 맹자와 장자 등 텍스트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그려지더라고요. 시대적으로나 인물적으로나 여러 모로 비슷한 지점이 많아서 정말 그 시대에 어떤 공통된 자장이 형성되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나저나 소크라테스의 삶을 천지비괘 육이효로 해석하시는 부분이 꽤 흥미로운데요? 일요일 오전만 할 게 아니라 이후 주역 공부도 같이 하셨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ㅋㅋㅋ 어쩌면 곧 저희가 오프라인에서도 함께 공부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