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보다 ‘존재’에 마음을 쏟아 ...
원래 일요일은 한 주 동안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날인데, 친한 도반 선생님의 권유로 덜컥 규문 오전 강의를 신청했다. 어느덧 7주 차. 이번에도 꾸역꾸역 몸을 일으켜 반마취 상태로 책상에 앉았다. 매주 그랬지만 이번 주도 버거웠다. 왜 그런지 정확히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내용이 어려워서... 잠에서 덜 깨서.. 단지 이 때문만인 것은 아닌 것 같다. 90분 동안의 강의 가운데 어떤 지점들이 내 무언가를 건드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정체 모를 감정에 휩싸인다. 참 낯선데, 고향에 돌아간 것 같은 이 묘한 기분. 이번 주도 우리의 채운 선생님은 묵직한 화두를 투척하시고 사라지셨다.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를, 너무나도 담담하게, 그리고 툭툭.
지식 습득용 공부, 영혼 돌보기용 공부
세상에는 기본적인 존재론적 차원 위에 내가 있음을 인식하고 내 모든 것을 이루고 있는 자연과 우주의 이치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가는 삶과, 돈과 명예와 같이 사람들이 중요하게 쫓는 가치를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사는 삶이 있다. “자신의 삶을 문제시하고, 자신을 시험하고, 자신의 영혼을 돌보는 것”을 마음에 두고 “돈 문제, 재산 관리, 지위를 얻는 것, 대중들 앞에서 웅변가로서 성공을 거두는 것, 정치적 당파”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던 소크라테스. 귀족 가문의 자제로 태어나 정계 진출이 보장되어 있었으나 현실의 지평을 견디지 못하고 완전한 지복의 삶을 향한 외로운 길을 선택했던 플라톤. 이들은 자신의 소유보다 존재에 마음을 쏟아 좋은 혼을 가질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그런데 이러한 가르침보다도 여기에서 당혹스러웠던 지점은 내가 돈과 명예를 쫓아 살아왔다면, 그 이유는 첫째는 내가 거기에 귀를 기울였기 때문이고, 둘째는 무식해서였다는 것이다. 모든 존재에는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훌륭한 상태, 자연에서 부여받은 본성적 역랑이란 게 있다. 그리고 그 본성에 맞게 기능하는 상태가 덕이고, 아르테이다. 어떻게 살아야 행복에 이를 수 있는가? “너답게” 살아라.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에 의해 구성된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네 마음의 내적 본성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한편 우리가 좋은 삶을 살지 못하는 건 좋은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무상함을 모르고, 무상함을 모르므로 집착하고, 집착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괴로워하며 잘못된 인과를 만들기를 반복하는 무명의 삶, 이 악순환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요한 것도 그저 ‘무상을 아는 것’뿐이다.”
더러워도 폐허에서 시작하기
살다 보면 지금 내가 속한 조직을, 제도를, 혹은 지금 나와 인연을 맺고 있는 사람을 떠나야 할지 말지 고민이 들 때가 있다. 플라톤은 389년 아테네 정치 상황에 현기증을 느끼고 남부 이탈리아 시칠리아로 떠나 정치적 개혁에 대한 새로움 꿈을 구상한다. 이곳은 영원불멸, 심신이원론 등 플라톤 중기 이후의 철학적 사상에 영향을 끼친 피타고라스 학파와 접촉한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흥미로웠던 점은 아테네에서 시칠리아로의 플라톤 이주에 대한 채운 선생님의 해석이었다. 왜 플라톤은 아테네에서 개혁하려 하지 않았나? 그곳에는 이미 기득권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개혁을 하려면 너무 많은 갈등과 수고를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아마도 플라톤은 완전히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고 싶었을 것. 현실을 견딜 수 없어 세상이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상적 삶을 꿈꿨던, 그리고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도, 따르는 제자 하나 없어도 그 고독을 선택했던 플라톤이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이상주의는 후기로 가면서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무리 더러워도 폐허에서, 무너진 자리에서 시작했어야지, 완전히 새 판에서 하얀 집을 지으려고 했던 것은 플라톤 철학이 더 개혁적으로 나가지 못한 주된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과연 플라톤의 시칠리아 이주는 도피였을까?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이 대목은 쉽게 수긍이 가질 않는다. 떠나야 할 때와 머물러야 할 때를 제대로 알기란 참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목전 앞에
죽음까지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할까? 약을 가져오라는 소크라테스에게 친구 크리톤은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사형 명령이 내려져도 한참 후에야 그걸 마신다고, 게다가 그 사이 폭식과 폭음에 심지어 욕정을 느끼는 상대와 성교까지 한다고, 그러니 서둘지 말라고 말한다.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이렇다. “자네가 말하는 사람들이야 그 짓들을 하는 게 당연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러지 않는 게 당연하지. 조금 후에 마신다고 한들, 나 자신에 비웃음을 자초하는 것 외에 아무런 이득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니까. 삶에 집착하고, 더 이상 아무것도 안 남았는데도 아낀다면 말일세.” 독배 받을 그 순간까지 나는 뭘 할까? 이득, 그것도 어리석은 이득을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도 챙기려는 어리석은 인간. 나라고 그러지 않을 수 있을까. 게다가 소크라테스의 죽음 장면에는 가족도 없다. 자신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사람들을 향해 엄숙한 죽음을 방해한다며 소란 피우지 말라는 소크라테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 아테네 정치에 분노하고 그곳을 박차고 떠나 새 판을 짜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한 플라톤의 이야기는 그나마 현실감이 있지만, 죽음 직전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낯설다.
규문 공부가 왜 버거운지, 그러면서도 ‘집’에 돌아간 것 같은 이 기분의 정체는 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익숙한 것과 좋은 것 중에 익숙한 것을 선택하는 게 보통의 인간인 것 같다. 그리고 익숙하지만 공허했던 지식 습득용 공부만 해왔던 나에게 이 철학 공부는 여전히 어색하다. 익숙했던 기존의 내 삶의 방식이 거부당하는 것 같은 기분에 저항감도 생긴다. 공부를 하다 보면 자기가 부정당하는 느낌 때문에 불편해지는 순간이 온다는 채운 선생님의 이야기를 나는 매주 체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묘하게 설레기도 한다. 내 마음의 내적 본성 목소리를 들은 걸까? “죽음을 피하는 것보다 비천함을 피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살러 가는 당신과 죽으러 가는 자신 중에 어느 쪽이 더 좋은 일을 행해 가고 있는지는 신만 안다.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으로 거리를 두어라. 무엇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있을 것인지에 대해 고민의 방향을 틀으라.” 하나하나 묵직한 이 메시지들 앞에 오늘도 슬픔, 분노, 그리고 기쁨.. 온갖 감정이 올라온다.
오우야. 철학하는 일요일이 산파가 되고 있군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알아야 할지 생각해야 하고,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볼 줄 알아야겠죠. 하지만 이게 말만큼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요즘 너무나도 느껴지는 건데,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건 너무 어렵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도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모습이, 그 중에서도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전해 들은 플라톤이 참 궁금해요. 아테네를 떠난 플라톤은 어떤 앎을 삶으로 드러내고 있었을까요? 독배를 마시기 직전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플라톤에게 어떤 가르침으로 다가왔을까요? 그리고 우리는 일요일 아침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요? 우리 자신을 위한 앎의 여정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