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입법자 수다
후기가 늦어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쓰는 입법자 후기입니다. 제가 한 주를 건너뛰는 바람에 늦어졌습니다. 이번 시간엔 아라한 장을 읽었습니다, 아라한은 ‘공경받을 만한 자’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통찰력을 지닌 깨달은 성자이자 윤회에서 해방된 자입니다. ‘아라한’이라는 궁극의 표상이 있어서인지, 이 장을 읽으며 ‘너무 도덕적인 것 아니냐, 우린 아라한이 아니다’라는 푸념이 저희 사이에서 먼저 터져 나왔죠. ㅎㅎ 저는 좀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좋았어요. 사리뿟따 장로, 마하깟사빠 장로, 띳사 장로, 마하목갈라... 이런 이름들을 다시 보게 되니 반가웠지요. 또 게송 하나하나가 공부하는 우리가 윤리로 새겨야 할 것을 직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어 좋기도 뜨끔하기도 했구요. 흥미로웠던 인연담과 게송을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쌓아두지도 않고
먹을 것도 집착하지 않는다.
공, 자취 없음, 해탈만이 목적이어서
그가 가는 곳엔 자취가 없다.
새가 허공을 날아도 자취가 없듯이 (게송 92)
번뇌가 다한 이는
음식에 집착하지 않는다.
공, 자취 없음, 해탈만이 목적이어서
그가 가는 곳엔 자취가 없다.
새가 허공을 날아도 자취가 없듯이 (게송 93)
첫 번째 이야기는 음식을 저장한 벨랏타시사 비구의 아주 짧은 이야기입니다. 매일 탁발하는 것이 불편했던 벨랏타시사 비구는 하루에 두 골목을 탁발하고 쌀밥을 말려 저장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선정에 든 후 나와, 탁발을 가지 않고 마른 밥에 물을 뿌려 먹었지요. 이 말을 듣고 부처님은 음식을 저장해서 먹는 것을 금하는 계율을 제정하십니다. 그래도 비구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하셨는데, 계율을 정하기 전 저지른 과오이고, 탐욕을 부려 저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비구는 더 깊은 선정에 들고 싶고, 좀 더 정진에 힘쓰려고 저장을 한 것인데 저장 금지법이 생겼군요.
‘음식을 저장’ 한다는 것이 뭘까요? 음식을 ‘空하고 無相한 해탈처’와 대비시킨 것을 보면, 우리가 가진 상이 아닐까 합니다. 선한 의지조차 그것을 쌓는 순간 집착이 일어난다는 것 같습니다. 게송 93번도 ‘음식’과 ‘번뇌’를 등치시키고 있는데, 뭔가를 잘 하려고 하는 것도 집착으로 이어지고 그 순간 번뇌가 일어나지요. 너무 자명한 얘기라 확 찔리더라고요. 후기 하나 공통과제 하나에도 번뇌가 이는 걸 보면 저에게 저장되어 있는 자의식을 다시 보게 됩니다. 새가 날아갔지만 자취가 없다는 비유는 너무나 찰떡같음에도 사실 그 경지가 잘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장자 응제왕」 편에도 거울비유가 나오는데, 비슷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조우한 것만 비추는 거울처럼 그 순간 도래하는 것과 소통하고, 이전에 흔적을 성심의 형태로 담아 두지는 않는다는 걸 거울을 통해 설명하고 있는데, 비슷하게 이해하면 될까요? ‘잘’이라는 집착조차 버릴 때 ‘고요’에 이르게 되나 봅니다.
다음 이야기는 사왈리 장로의 과거생 이야기입니다. 시왈리 장로는 사리붓따 장로의 막내 동생인 레와따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자, 부처님이 사리붓따 장로와 함께 레와따를 방문하려는 길에 동행하게 됩니다. 시왈리 장로는 공양을 받는 데서 제일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있지요. 해서 부처님은 넓고 탁발이 쉽지만 멀리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탁발이 어려운 짧은 오솔길을 선택해서 가게 됩니다. 그의 복덕으로 모든 비구들이 충분히 음식을 얻을 수 있으니까요. 시왈리 장로는 어머니 자궁 속에 7년 7개월 동안 머물다 태어난 것으로 유명한가 봅니다. 그는 태어난 날 출가했고, 머리를 깍는 동안 자신이 자궁에 머물렀던 때를 명상하며 아라한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과거에는 두 가지 상반된 과와 선업이 있습니다. 그의 선업은 윗빠시 부처님과 육만 팔천 명의 스님들께 신선한 꿀을 공양한 일이죠. 그는 꿀을 찾아 시골까지 들어가 고액을 주고 꿀을 구매합니다. 하지만 공양할 꿀임을 안 시골 촌장과 마을 사람들은 보시 공양을 하게 되고 그 작은 선행 공덕으로 시골 사람들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행복하게 살다가 천상에 태어났죠. 그의 과보는, 시왈리가 전생에 베나레스의 왕자였을 때, 아버지가 죽고 왕위를 이어받자 영토를 확장하며 벌어진 일이죠. 그는 군대를 이끌고 성에 쳐들어가 성문을 막고 7년 7개월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시민들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왕을 죽이고 항복합니다.
부처님은 그가 성문을 잠근 과보로 모태에 오래 머물렀고, 꿀을 공양한 공덕으로 커다란 복덕을 얻었다고 설명하십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과거생의 업과 과를 함께 보시기에, ‘과거’가 어떠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그 모든 것이 ‘과거생의 업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숙명론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과거생으로 모든 것이 치환되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생에서의 수행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우익선사가 선해하신 주역에도 보면, 선행과 지혜가 함께 닦을 것을 매우 강조하십니다. 과거생의 과,업이 있고, 이생에서 닦는 수행과 이 생에서 깨달은 지혜로 이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숙명론을 벗어나는 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것은 이들이 가진 국가관 내지는 정치체에 대한 새로운 감각 때문이었는데요. 수다의 방향이 부처님 시대의 ‘정치체’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갔습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자로서의 ‘국가’라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잘잘못이 법률을 통한 국가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인과에 따라 결정되고, 왕도 시민들보다 더 훌륭한 공양을 올리기 위해 경쟁하는 자로 묘사되기도 하구요. 또 왕이 출가하는 일화도 많아 저희들 사이에선 ‘그러면 소는 누가 키우나’라는 의구심을 한껏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플라톤이 국가를 개인의 확장으로 보아 개인이 가지는 지성, 욕구, 기개를 그대로 국가에 대입해, 지성=철학자, 통치자 / 욕구=농민, 상공인 / 기개=군인, 관리자로 등치한 것이나, 중국의 고전이 왕도정치를 위한 통치 지침서였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과도 비교하면 매우 다른 부분으로 보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원활한 통치를 위해 인과를 구성하는 방식이 익히 알고 있는 모델과는 많이 다르다 정도에서 멈추고 말았죠.
아라한 장이니까 부처님께서 아라한에 대해 정의해 주신 게송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후기를 갈무리할까 합니다. 기록적인 폭우 뒤에 다시 태풍이 예고되어 있네요. 모두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다음 시간에 다시 즐거운 수다로 돌아오겠습니다,
선악 두 가지를 버리고,
번뇌를 뛰어넘어
슬픔과 탐욕에서 벗어나 해맑은 사람,
그를 일컬어 아라한이라 한다(2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