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입법자 모임 후기입니다~ 이번에는 게송 2, 3번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게송 2번은 "부처님께 귀의한 것만으로 천상에 태어난 맛타꾼달리"입니다. 맛타꾼달리는 아닌나뿝빠까의 아들입니다. 아닌다뿝빠까는 어느 누구에게도 뭔가를 준 적이 없기 때문에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자(아닌다뿝빠까)'라고 불립니다. 얼마나 인색한지, 아들이 아파 죽어가는데도 의사에게 대가를 주기 싫어서 결국 치료할 시기를 놓치고 맙니다. 게다가 아들이 죽으면 장례식에 온 사람들이 사실 자기집이 부자라는 사실을 알까 두려워 죽어가는 아들을 문 밖에 내놓고 방치하지요. 그런데 이 게송의 주인공은 죽어가는 아들 맛타꾼달리입니다. 이렇게 심한 대우를 받은 아들은 죽어가면서 단 한 번 만난 부처님을 만나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그러자 온갖 귀한 것을 걸친 천신으로 다시 태어나지요. 게다가 다시 태어난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가 이 경위를 알려주어 아버지까지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설득합니다.
헐~ 도대체 앞에 있는 그 극단적인 경우는 다 뭐란 말인가! 부처님 한번 믿으면 이렇게 일이 술술 잘 풀리는 건가?! 이 게송은 놀랍게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한번 돌리는 건 그만큼 어렵고, 실질적인 영향력이 큰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맛타꾼달리는 어떻게 보면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버려져서 죽어가는 처지였습니다. 분노나 원한에 차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가 부처님을 한번 만나 청정한 마음을 일으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그는 그 순간 원한의 고리를 끊어서, 결과적으로 '한 번도 준 적이 없는 자'인 아버지를 '주는 자'로 만든 겁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성취이고, 그렇게 마음을 돌리는 건 그야말로 세계를 바꾸는 일임을, 이 게송은 보여주는 것이지요.
한 인간이 마음을 돌이켜 바뀌기란 너~무 어렵습니다. <법구경>은 이를 게송 3번 "거만한 띳사 비구"를 통해 알려줍니다. 띳사 비구는 부처님의 사촌이라는 이유로 선배 수행승들에게 오만하게 굴며 억지를 부렸습니다. 부처님은 그가 그런 이유가 사실 전생에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전생담은...너무나 작고 비근해서 그의 고집이 너무 이해가 잘 가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띳사 비구는 전생에 히말라야에서 수행하던 데왈라라는 수행승이었는데 어느날 그는 나라다라는 수행승과 같은 곳에서 묵게 됩니다. 그런데 나라다가 자다가 화장실 가는 길에 그의 머리카락을 밟고 지나갑니다. 데왈라는 무척 화를 냈죠. 문제는 데왈라가 나라다를 괴롭힐 궁리를 한 끝에 반대 방향으로 머리를 두고 누운 겁니다. 다시는 머리카락을 밟지 않으려고 반대 방향으로 들어온 나라다는 결국 데왈라의 머리를 밟았습니다. 데왈라는 길길이 날뛰며 나라다의 머리가 일곱 갈래로 쪼개지는 저주를 내립니다. 나라다는 이에 맞서 잘못한 사람에게 그 저주가 내릴 거라고 맞섭니다. 결국 왕까지 나와 중재에 나서지만 데왈라는 결코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머리가 쪼개질지언정 결코 자신이 심술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데왈라는 다시 태어나고 나서도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촌인데...너무 우리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수행하고 신통력까지 갖춘 사람이 이렇게 옹졸하다니? 게다가 다시 태어나고 나서도 이렇다니? 너무 놀라웠죠.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 정도로 수행을 하고 나서야 부처님의 사촌이 되어 자신의 마음을 돌릴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얻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수행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고집을 부리고 있다는 자각은커녕 그런 이야기조차 듣지 못했겠죠. 그보다는 자신이 당한 원한, 그로 인해 일어난 마음과 허울에 더 주목하고 집착하게 될 테니까요.
이렇게 오늘은 마음을 돌리는 일의 대단함과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원한을 끊는 게송으로 후기를 마무리 하겠습니다~
'그가 내게 욕을 하고
나를 때리고, 나를 패배시키고
내 물건을 훔쳤다.'
이렇게 앙심을 품는다면
그 원한은 고요해지지 않으리라.
'그가 내게 욕을 하고
나를 때리고 나를 패배시키고
내 물건을 훔쳤다.'
이런 생각을 품지 않으면
그 원한은 고요해지리라.
자다가 화장실 가는 사람에게 머리를 밟히다니... 그것도 두 번이나... 심지어 반대로 돌아누웠는데도...
수행이 어디 다른 곳에 있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가' '나를' 괴롭혔다는 망상, 다시 말하면 '그래서는 안 되는 그가'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되는 나를' 막대했다는 원한의 고리를 끊는 일.
다음 생에까지도 이어질 정도로 강력한 것이 원한이지만, 그것을 끊을 기회도 항상 함께 한다는 점은 위안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