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6 입법자 수다
악행을 하는 자는
금생에서도 괴롭고 다음생에서도 괴롭고
두 생에서 모두 괴로워한다.
악행을 저질렀구나! 라고 되새기며 괴로워하고
악처에 떨어져 더욱 괴로워한다.(게송 17)
게송 17번과 관련된 인연담에 등장하는 인물은 데와닷따입니다. 인연담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참 얘기가 어디로 흐를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야기가 수미쌍관해서 딱 떨어지지 않을 때도 있고, 중간에 많은 이야기를 거쳐 가기에 정작 이 이야기를 왜 하고 있는지 길을 잃을 때도 허다한 것 같습니다. 마지막에 가서야 이유를 다시 상기하게 되지요. 데와닷따 이야기도 그가 전생에 저지른 어마어마한 악행들을 거쳐 게송에 도달했지요.
사끼아족의 왕자인 데와닷따는 아누룻다, 밧디야, 아난다, 바구, 낌빌라, 그리고 우빨리와 함께 부처님께 출가합니다. 함께 출가한 분들이 모두 아라한이 되거나 다른 과(果)를 성취한 것과 달리 데와닷따는 세속적인 신통력을 얻는데 그쳤다고 합니다.
데와닷따가 부처님과 함께 꼬삼비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부처님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크나큰 존경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는 부처님에 대하여 질투심을 느낍니다. 그 후 부처님께서 라자가하의 웰루와나 수도원에서 많은 대중들에게 설법하고 계실 때, 부처님께 나아가 승단을 자기에게 맡겨 달라고 제안하지요. 부처님께서는 그의 제안을 얼토당토 않은 것이라고 꾸짖으시며 거절합니다.
데와닷따는 수치심을 느끼고 부처님께 복수하리라 마음 먹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세 번씩이나 부처님을 해치려고 했지요. 첫 번째는 자객을 보내어 부처님을 살해하려 했는데, 자객들이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크게 감동하여 제자가 되어 버립니다. 또 큰 바위를 굴려 부처님을 해치려고 했는데, 실패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나운 코끼리 날라기리를 부처님을 향해 돌진케 합니다. 이때 아난다는 자기 생명을 희생해서라도 부처님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에서 부처님 앞에 나가 코끼리를 막아서는데, 그럴 필요조차 없었던 것이, 코끼리는 부처님 앞에 이르자 부처님의 자애 삼매에 조용히 무릎을 꿇었던 것이죠.
얼마 뒤 데와닷따는 중병에 걸려 아홉 달 동안을 앓아 누워 있으면서 한사코 부처님 뵙기를 애원합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은 하는 수 없이 병든 그를 데리고 제따와나 수도원으로 향했는데 이 소식은 부처님께도 전해졌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데와닷따는 결코 나를 볼 수 없으리라”고 말씀하시지요. 그럼에도 데와닷따가 탄 가마가 마침내 제따와나 수도원 근처 연못에 이르렀고 수행자들이 잠시 가마를 내려 놓고 물에 몸을 씻는 사이 데와닷따도 가마에서 내립니다. 그런데 발을 땅을 딛자마자 땅이 두 갈래로 갈라졌고, 그는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버리고 말았지요.
문제는 데와닷따가 이렇게 누군가를 죽이려고 하다가 실패한 것도, 그 결과 어딘가로 빨려 들어간 것도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죠. 부처님이 들려주신 데와닷따의 갖가지 자따까(과거에 속하는 일)에 따르면 왕의 아들일 때도, 부유한 집 자손일 때도, 심지어 동물이었을 때도 반복하여 했던 일이었어요. 늘 욕망의 불길에 휩싸여 결국엔 스스로 죽음을 자초함으로써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이죠. 어쩌면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도 처음 하는 일이 아닐지 모릅니다. 늘 하는 실수, 습관처럼 하는 행동들, 무심히 일어난다고 생각되는 일 모두가 데와닷따처럼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진행될 줄 모두 아시면서 부처님은 왜 데와닷따를 출가시킨 걸까요? 부처님께서는, ‘그가 출가한다면 아무리 큰 죄를 저지른다고 해도 미래의 윤회를 벗어날 씨앗을 심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하시죠. 부처님의 자비심과 인간에 대한 긍정이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법구경의 많은 인연담이 인간에 대한 긍정 위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구요.
데와닷따 인연담을 시작하는 맨 앞에,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어 ‘없다’라는 것을 모르는 아누룻다의 이야기와, 쌀이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해 세 왕자가 다투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쌀은 창고에서 나온다, 쌀은 솥에서 나온다, 쌀은 황금 손잡이가 달린 접시에서 나온다며 다툼을 벌이죠. 몇 만겁의 자따까를 보시는 부처님과 달리, 눈앞의 것, 내가 경험한 것 이상을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것임을 대비하여 설명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러나 6명의 왕자는 그 무지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고자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버리고 부처님께 귀의하여 아라한이 됩니다. 욕망의 근원을 이해하려고 지혜의 길을 나선 것이 그들의 행위를 바꾼 것이겠지요.
‘그냥 읽어라도 본다’ 생각하고 월요일 아침 모여서 법구경을 읽고 있는데, 가랑비에 옷 젖듯 법구경에 빠져들고 있어요. 어른을 위한 동화 같은 느낌도 들고, 게송에 딱 맞는 인연담이 불교의 개념이나 용어는 몰라도, 마음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 같기도 하구요. 살짝 봤는데, 다음 주에도 재미있는 인연담이 기다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