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법구경 이야기>에선 우데나왕과 그의 두 왕비 마간디야와 사마와띠에 관한 인연담이었답니다. 그 중에서는 ‘마간디야를 거절한 부처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마간디야는 꾸루에 살았던 바라문의 딸이었습니다. 그 바라문은 어느 날 부처님은 뵙고는 자신의 딸 마간디야의 남편감으로 생각하고, 부처님 앞에 딸을 데려오지요. 하지만 부처님은 그 바라문에게 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출가한 그날부터 염소치기 반얀나무 아래에 앉아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마라가 집요하게 허점을 찾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갈애, 혐오, 애욕이라는 이름의
선녀처럼 아름다운 세 딸을 보았어도
사랑하고픈 생각이 없었는데,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마간디야를 왜 원하겠는가?
그 더러운 몸에 나의 발바닥조차 닿지 않게 하겠네
이 게송 끝에 바라문과 아내는 아나함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게송을 들은 마간디야는 화가 나서 부처님 보다 뛰어난 남편을 얻어 복수하겠다고 말하죠.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마간디야가 악의를 품을 거라는 것을 부처님이 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다 아시면서 그러셨을까요? 좀 더 유연한 방법으로 설하셨으면 마간디야가 악의도 품지 않고 전부 아나함과를 얻었을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오직 도과를 증득할 시기가 무르익은 사람들을 위해서 법을 설하신 것 뿐 남이 당신에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을 개의치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생각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미 바라문과 그의 아내가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아셨던 거고, 마간디야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도 알았던 걸까요? 다 의도가 있으셨던 걸까요. 여하튼 부처님은 두 사람이 아나함과을 얻게 될 것을 알고 법을 설하셨을 뿐, 부처님 그렇게 법을 설하게 된 전체 맥락을 살피지 않고 그 일부가 자신을 모욕한 것처럼 들렸을 마간디야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마간디야는 외모가 출중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자신에 대해 분명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이후에 우데나 왕이 그녀에게 반해서 결혼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부처님에게 ‘나의 태생, 혈통, 사회적 지위, 부와 젊고 아름다운 매력으로 나보다 뛰어난 남편을 얻어 사문 고따마에게 복수하겠다.’라고 말합니다. 그런 자신의 오만함 때문에 부처님이 설하신 법의 맥락을 제대로 다 이해하지 못해서였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녀는 아나함을 얻는 대신 증오와 복수를 얻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사람의 몸이란 것이 갈애, 혐오, 애욕이라는 감각적인 것을 없애면 아무리 아름다운 여인이라도 한낱 오줌과 똥으로 찬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뭐 실제 그렇게 느끼기는 어렵겠지만요. 그냥 그럴 수 있겠다 싶기도 합니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라면 말이죠. 여하튼 법구경에서 끊임없이 연결 연결되는 때론 종잡을 수 없는 인연담을 읽으며 이러저러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때론 좀 의아해하고 때론 그럴 수 있겠구나라고 감응하면서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