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읽고 있는 <법구경>은 제2장 불방일(不放逸)입니다. 부처님은 이 말을 가장 많이 하셨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되풀이하셨다 합니다. '방일'이란 말 그대로 마음을 놓아버리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마음은 어디로 놓을까요? 첫째로 나쁜 행위로 가도록 놓아버리는 것이고, 둘째로는 감각적 욕망을 향하도록 놓아버리는 것이고 마지막으로 나쁜 짓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행위를 하지 않으려는 방향으로 놓아버리는 것입니다. 늘 마음이 선을 향하도록, 늘 깨어있는 것이 '불방일'인 것이죠.
이번에 읽은 <법구경> 또한 '방일'을 경계하는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들...도대체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읽는 우리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ㅋ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쭐라빤타까라는 수행승입니다. 그의 부모는 신분을 초월한 사랑의 도피를 한 남녀인데요, 그들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러나 <법구경>은 그들의 이야기를 뚝 끊고 쭐라빤타까와 그의 형 이야기를 합니다. 쭐라빤타까는 전생의 업(!)으로 인해 아무리 가르침을 들어도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합니다. 이에 쭐라빤타까의 총명한 형 마하빤타까는 그를 구박합니다. 심지어 속세로 돌아가라고도 하죠. 모든 것을 아시는 부처님은 쭐라빤타까를 찾아가 천 하나와 주문 한 구절을 전해주십니다. 부처님께서 시키는대로, 쭐라빤타까는 천을 문지르며 주문을 외웁니다. 그 순간 그는 무상함을 깨닫습니다. '이 천 조각이 전에는 아주 깨끗했는데 이제 더러워졌다. 내가 이렇게 문질러서 본래의 깨끗한 성질을 잃어버리고 더러워졌다. 아! 조건에 의해 생겨난 모든 것은 무상하구나!'
이 이야기를 읽으며, 부처님께서 전해주시는 전생의 업이란, 말 그대로 업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물론...잘 모릅니다...ㅎㅎ). 쭐라빤타까는 업으로 인해 멍청함을 타고 났지만, 그게 깨닫지 못할 이유는 안 되는 거지요. 모든 깨달음은 불방일, 마음의 흐름 하나를 알아차림에 달린 것임을 새기며 오늘도 게송 하나를 얻어 갑니다.
때는 몸에 낀 때만을 말하지 않네.
때는 탐욕의 다른 이름
탐욕이 없는 청정한 나의 교단에서
비구들은 탐욕이라는 마음의 때를 제거하며 살아가네.
때는 몸에 낀 때만을 말하지 않네.
때는 분노의 다른 이름
분노가 없는 청정한 나의 교단에서
비구들은 분노라는 마음의 때를 제거하며 살아가네.
때는 몸에 낀 때만을 말하지 않네.
때는 어리석음의 다른 이름
어리석음이 없는 청정한 나의 교단에서
비구들은 어리석음이라는 마음의 때를 제거하며 살아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