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문 “원 모어 니체” 세미나 ‘뉴 페이스’ 두 분을 소개합니다!
먼저 이경원 샘은 지방에서 니체 세미나를 위해 올라오시는데요, 이전부터 철학에 관심이 많아 공부를 해왔고, 그러던 중 규문 니체 세미나에 접속하시게 되었다고 하시네요. 세미나 시간이 원래 7시에 잡혀 있었는데 30분 정도 땡긴 것도, 세미나 끝나고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셔야 하는 시간 때문이었어요.(다른 분들의 양해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감사하시다고 하셨어요^^) 특별히 시간을 내서 오시는만큼 니체와 즐거운 공부, 유익한 만남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구요. 다음으로 그리멀지 않은 인덕원에서 오신 ‘별나라 삼총사’(닉네임)님인데요. 닉네임처럼 저희 세미나 분위기를 업 시켜 주셨는데요. 오래전부터 니체와 들뢰즈를 공부하셨다고 하네요. 그리고 니체를 너무너무 좋아하신다고 해요. 첫 시간에 무려 3장 정도 메모를 해오셨는데요, ㅋ 아쉽게도 고병권 샘의 『언더그라운드 니체』에서 발췌를 해온 내용이라 샘들이 다들 그러시면 안된다고 하셨죠!! (그럼에도 적극 수용하시고 다음부터는 자기 생각을 적어오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아무튼 규문에 새로 오신 샘들 환영합니다^^
○ 이 책에서 “나를 잘 읽는 것을 배우라”
이번 첫 주에는 『아침놀』(1881) 서문, 1권, 2권 일부를 읽었는데요. 이 책의 서문은 1886년에 뒤늦게 씌여진 서문인데요. 다들 서문이 멋있다고 하셨는데요. 니체는 자신을 “지하에서 땅을 파고 있는 사람”(두더지), 즉 “뚫고 들어가고, 파내며, 밑을 파고들어 뒤집어엎는 사람”이라고 말하는데요. 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자신은 그런 일을 함에 있어 일에 대한 안목이 있으며 서서히, 부드러우면서도 과감히 전진하는 자이며, 결국 “자신의 아침, 자신의 구원, 자신의 아침놀에 도달하게 될 것을 알고 있기”에 어렵고 수수께끼 같은 일을 감수하는 자인데요.
니체가 깊이 파고 들어간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철학자들이 수천년 동안 신봉해온 낡은 “신념”과 “도덕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파괴”하는 것이라고 하는데요. 다시 말해 도덕앞에서 복종이 아니라, 도덕에 대해 따지고 의문을 제기하는 “도덕을 비판”인데요. 바로 “자신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기에, 지금까지 없었던 일로 어려운일임을 예고합니다. 그래서 니체는 문헌학자, “천천히 읽을 것을 가르치는 교사”라고 말하는데요. 이 교사는 “깊이 생각하면서 결론을 성급하게 내리지 않고, 섬세한 손과 눈으로, 천천히, 깊이, 전후를 고려하면서 읽을 것을 가르친다”라고 하면서 “나를 잘 읽는 것을 배우라.”는 말을 거듭 강조하고 있어요. 암튼 니체처럼 잘 읽는다는 것을 배우려면 많은 수련이 필요한 듯 해요. 자신의 생각, 판단. 실천, 깊이 모든 것을 고려하면서 읽어가야 하는 것이니까요.
○ 도덕적 성질이란 없으며. 쾌·불쾌도 없다
서문에 언급한 것처럼 『아침놀』에는 도덕에 대한 비판의식, 도덕을 파고들어가는 글들인데요. 첫 글이 “나중에 덧붙여진 이성”인데요. 여기서 니체는 사물을 판단하게 되는 이성이란 게,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며 나중에 발생 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비이성에서 기원”이라고 하는데요. 이성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라면, 우리가 선,악을 구분하는 도덕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이성이 도덕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면 도덕은 어떤 것일까요?
동물이 생존과 관련하여 몸의 색을 변화시키거나 죽은 체하거나 하는 것처럼, 인간도 안전에 대한 감각으로 적과 친구를 판단하는 행동을 하죠. 이런 점에서 “도덕적 현상”은 동물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인간에게 현명함, 용기, 절제가 생겨난 것도 이런 기원이라 할수 있어요. 더 들어가 니체는 동일한 충동이 도덕적 판단에 따라 어떻게 “변형된 충동”으로 드러나는지를 증명하고 있는데요. 가령, “시기”라는 것이 지금 우리와 달리 그리스인에게는 선하고 아무 불쾌감을 일으키지 않으며, 경쟁을 좋은 것으로 규정하고 평가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희망”이라는 것이 그리스인에게는 “맹목적이고 악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 반면에, 기독교에서는 희망을 하나의 “덕”으로 간주되었죠. 이처럼 충동 자체에서 선악을 구분할 수 없으며 거기에는 “어떠한 도덕적 성질도 없으며 더욱이 그것에 수반되는 괘·불쾌라는 특정한 감정”도 없다는 것인데요. 그리고 우리의 가장 오래된 도덕적 판단이란? “나에게 해로운 것은 악한 것(그 자체로 해로운 것)이다. 나에게 이로운 것은 선한 것(그 자체로 기분을 좋게 하고 유익한 것)이다. 나에게 한 번 또는 몇 번 해를 입히는 것은 그 자체로 적대적인 것”(111쪽) 이 되며, 그런 까닭에 “수치스러운 기원” 이라는 것이죠!!
○ 우리에게 체험이란 무엇일까요?
『아침놀』에서 니체의 주요 개념인 ‘힘에의 의지’로서 힘에 관한 것이 나오기 시작하는데요. 바로 “체험과 창작” 119번 아포리즘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 체험을 하면 일반적으로 내가, 주체가 자유의지로 체험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요. 사실 우리가 체험하게 되는 것은 “어떤 때는 이 충동에, 어떤 때는 저 충동에 먹이를 던지며, 이 충동들은 이 먹이들을 탐욕스럽게 붙잡는”이런 충동들이 만들어내는 운동에 의해서인데요. 그리고 우리는 이런 충동들이 일어나는 운동을 제대로 인식할 수가 없지요. 다만 갈증이나 배고픔, 고통, 기쁨과 같은 것으로 느끼기만 하지요.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한 소리, 움직임들을 느끼는 것도 자의식인 해석일뿐이라고 해요.
게다가 신경의 자극에 의한 이성(자아)이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래서 우리가 매번 책을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끼게 되는데, “오늘 밤이나 다른 날 밤이나 거의 비슷한 이 텍스트가 이렇게 다양하게 해석된다는 것, 즉 창작하는 이성이 동일한 신경의 자극에 대해 오늘과 내일, 전혀 다른 원인들을 마음속에 그려낸다는 것은, 이 이성의 후견인이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사람이었다는 데 근거”(138쪽)하기 때문이라고해요. “이성의 후견인”이 매번 바뀐다는게 재밌는 비유인 것 같아요. 그렇다면 한 번 두 번으로 내가 그 책을 읽었다고 감히 말 할수 없어요. 매번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성의 후견인”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게 할테니까요. “잘 읽는 것”에 한 방법일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세미나 마치기 전 인상 깊은 구절과 함께 간단한 느낌을 말하며 세미나를 마무리하였어요^^ 다음 주 월욜에도 건강한 모습으로 뵈어요^^
★ 2주차 (3.11. 월) 공지입니다!
- <아침놀>(책세상) 151~300쪽 까지 꼼꼼히 읽고 나누고 싶어 이야기를 메모해 옵니다.
(메모하신 내용은 규문>일반세미나>숙제방에 월요일 오후 5시까지 올려주시면 됩니다)
- 간식 및 후기는 승연샘 부탁드려요^^
- 그럼 월요일 저녁 6시 30분에 규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