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겨울을 밀어내고 있는 3월, 아침 낭송 세미나 '문수보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일찍 떠서 밝아지기도 했고 멤버가 조금 바뀌어 분위기가 또 달랐는데요.
목포와 김해에서까지 접속해주셔서 새삼 화상연결의 밝은 면을 확인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에픽테토스 강의>를 한 주간 읽었는데요. 확실히 고대, 그러니까 2000여년 전의 텍스트이다보니 낯섦이 느껴졌습니다.
문체도(강의-대화체), 내용도(스토아사상), 형식도(방대한 주석) 몽테뉴를 읽을 때와는 달랐죠.
세련됨과 부드러움보다는 단단함과 투박함이 느껴졌는데요. 신기한 건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매력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비몽사몽 아침에 낭송할 때는 잘 몰랐지만, 샘들께서 올려주신 필사를 정리하며 다시 읽어보니 가슴을 울리는 말들이 보입니다.
여러 면을 고려해서 과감히 주석을 생략하고 읽어가기로 했습니다.
뭔가 중요한 부분을 놓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그 아쉬움을 기회삼아 재독해보실 것을, 혹은 미리 읽고 오실 것을 권유드립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 두 타임을 비워서 에픽테토스와 스토아철학에 대해 질문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 것도 고려해보겠습니다!
어떻게 '신적인' 영혼의 자유를 훈련할 것인가!
노예 출신에 절름발이였지만, 삶의 고귀함을 위해 철학한다는 것의 정수를 보여주는 에픽테토스.
그의 문장들을 읽다보면, 콕콕 꽂히는 구절들, 정말 강하다는 것은 이런 의미겠구나 하는 마음이 피어오르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나누어보고자 이렇게 선생님들의 필사를 정리해봅니다.
1장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들과 우리에게 달려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하여
그렇다면 어떤 능력이 말을 해줄 것인가?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능력이네. 그것은 어떤 능력인가? 이성적인 능력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여받은 능력들 중에서 그 능력만이 그 자체와―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떤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지―또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능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네. 황금이 아름답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는 다른 것은 무엇인가? 황금 자체는 말해 주지 않으니까. 그렇다면 황금이 아름답다는 것은 인상을 사용하는 능력이네. 다른 어떤 것이 음악의 능력, 문법의 능력, 다른 기술이나 능력을 판정하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평가하며 또 그것들을 사용하는 적절한 기회를 보여주는 것으로 또 무엇이 있을까? 이것 이외에는 없네.
그런데 원래 당연한 것이지만, 신들은 단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 다른 모든 것들을 지배하는 것, 즉 인상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만을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놓아두었던 것이네. 그렇지만 신들은 나머지 모든 능력에 대해서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에 놓아두지 않았다네. 이것은 적어도 그들이 원하지 않아서일까? 나로서는 신들이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또한 다른 능력들을 맡겼을 것이라고 생각하네. 하지만 신들에게는 전혀 할 수 없었던 것이네.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이 땅 위에 살고 있고, 우리 자신과 같은 신체에 묶여 있으며, 우리와 같은 그런 동료들에 함께 묶여 있는데, 이 모든 것을 감안해 볼 때 우리가 외적인 것들에 의해 방해받지 않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32~34쪽)
그러면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를 돕기 위해 무엇을 가까이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가? 왜, 내 것이 무엇이고 내 것이 아닌 것이 무엇인지, 또 내 능력 안에 있는 것과 내 능력 안에 있지 않은 것 이외에 다른 어떤 것이 있겠는가? 나는 죽어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또한 신음하면서 죽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감옥에 갇혀야만 한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또한 슬퍼해야만 하는 것인가? 나는 추방당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내가 웃으면서, 유쾌하고 평온하게 떠나는 것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 비밀을 나에게 말하게.’ 나는 말하지 않겠다. 그것은 나에게 달려 있기(ep' emoi) 때문이네. ‘그렇다면 나는 너를 결박할 걸세.’ 인간아, 너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나를 결박한다고? 나의 발을 결박할 수는 있지만, 나의 의지(프로하이레시스) 만큼은 제우스 자신조차도 지배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너를 감옥에 처넣겠다.’ 내 보잘것없는 육체를. ‘나는 너의 목을 베겠다.’ 왜, 내가 언제 자를 수 없는 목을 가진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가? 이 모든 것들을 철학하는 자는 연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은 이것들을 날마다 글로 써야만 하고, 또 이것들을 통해 자신을 훈련시켜야만 한다.(38~40쪽)
이것이야말로 훈련할 일을 훈련하고, 욕구해도 또 회피해도 방해받거나 회피할 수 없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이다. 나는 죽어야만 하네. 지금 당장이라면 당장 죽자. 잠시 뒤라면 식사할 시간이 왔기 때문에 지금은 식사를 할 것이네. 그런 연후에 죽는 걸로 하자. 어떻게? 자신이 것이 아닌 것을 되돌려 주는 사람에게 어울리는 것처럼.(42쪽)
2장 어떻게 인간은 모든 상황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따르는 것을 보존할 수 있는가?
하지만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은, 선과 악 또 유익한 것과 유익하지 않은 것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이듯이 서로 다른 사람에게 다른 것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네. 이러한 이유로 무엇보다도 자연에 일치해서 개별적인 경우에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선개념(prolepsis)을 적용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네. 이제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을 판별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외적인 것들에 대한 가치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 각자 자신이 누구인가에 따르는 것에 대한 가치도 사용해야만 할 걸세.(46쪽)
‘글쎄요, 내가 죽지 않는다고 당신에게 언제 말했던가요? 당신은 당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나는 나의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나를 죽이는 것은 너의 일이고, 두려움이 없이 죽는 것은 나의 일입니다. 나를 추방하는 것은 너의 일이고, 슬픔 없이 떠나는 것은 나의 일입니다.’(50쪽)
‘그러면 우리 각자가 자신이 누구인가에 따르는 것을 어떻게 인식하게 될까요?’ 에픽테토스는 대답했다. 사자가 공격할 때, 황소만이 자신의 힘을 인식하고 전체 무리를 대신해서 보루 앞으로 나서는 것은 어떤가? 혹은 이러한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동시에 즉각적으로 그 힘의 인식에 의해 동반된다는 것은 분명하지 않은가? 그러므로 우리의 경우에도,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는 누구든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지 않을 것이네. 하지만 황소가 단번에 황소가 되지 못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도 단번에 결코 고귀하게 되지 못할 것이네. 힘든 겨울 훈련을 거쳐야만 하며, 이에 대비해야만 하고, 자신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무모하게 뛰어들어서는 안 되는 것이네.(53쪽)
4장 도덕적 진보에 대하여
오히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네가 너의 행위를 하려는 충동과 행위를 거부하는 충동을 어떻게 발휘하는지, 또 너의 욕구와 혐오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있는지, 또 너의 목적을 이루는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는지, 또 그것을 위해 어떻게 너 자신을 내맡기는지, 또 너는 어떻게 그것을 위해 준비하는지, 그리고 거기에서 자연과 조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조화하고 있지 못한지를 알고 싶은 것이네.(65~66쪽)
그리고 끝으로 아침에 일어날 때, 그가 배운 이상의 모든 것(원리들)을 준수하고 지킨다면, 신실한 사람처럼 목욕을 하며 또 자긍심이 있는 사람처럼 먹는다면, 마찬가지로 언제나 자신이 부딪치게 되는 모든 상황에서, 달리는 사람이 달리기의 원칙을 적용할 때 행하는 것처럼, 또 음성 훈련사가 음성 훈련의 원리를 적용할 때 노력을 거듭하는 것처럼, 자식의 주도적 원리에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네. 이상과 같은 조건이 충족되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으로 도덕적 진보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며, 그 사람이야말로 아무런 목적 없이 여행을 해온 사람이 아닌 것이네.(68~69쪽)
여행의 목적은 오히려 어떻게 자신의 삶에서 슬픔과 신음을 없앨지를 연습하고, ‘아아! 나의 슬픔이여!’, ‘난 얼마나 비참한 인간인가’와 같은 한탄 소리를 없애고, 또 불행과 불운을 없앨지를 연습하는 것이네. 또 죽음이 무엇인지, 추방이 무엇인지, 감옥이 무엇인지, 독약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이네. 그래서 감옥에서도 소크라테스와 같이 말할 수 있도록 말일세. 즉 ‘난 얼마나 비참한 늙은이인가. 이것을 위해 나의 백발을 지켜 왔다는 말인가!’라고 말하기보다는 ‘사랑하는 크리톤, 그것이 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하겠지’라고 말이네.(69쪽)
우리가 비극에 의해 속임수를 당하더라도 의지와 무관한 외적인 것들은 우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면, 그때 이후로 그것이 나를 순조롭고 (행복하고) 평온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게 해준다면, 나로서는 그 속임수를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네. 하지만 너 자신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보는 것은 너에게 달려 있는 것이네.(70쪽)
내 모든 책을 잡아라, 그러면 너는 자신을 감정에서 벗어나게 하는 그 생각들이 참이며 또 자연과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70쪽)
5장 아카데미아학파에 대하여
우리 대부분은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러한 상태에 떨어지는 것을 회피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하지만, 혼이 쇠약해지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돌보지 않는다네. 제우스에 맹세코, 혼 자체에 관련해서 누군가는 어떤 논증을 하나하나 따라갈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상태에 떨어지게 되면, 우리는 또한 이 사람을 나쁜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누군가의 도덕감과 성실성이 무감각해지면 우리는 아직도 이것을 ‘[성품의] 힘’이라고 부르기까지 하는 것이네!(73쪽)
6장 섭리에 대하여
아니네. 오히려 너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떨면서, 또 일어나고 있는 다른 일들에 대해 통곡하며, 슬퍼하고, 신음을 내면서 거기에 그냥 앉아 있네. 그리고 신들에게 비난을 퍼붓는다네! 사실상 정신의 비열함에서 따라 나올 수 있는 경건하지 않음 말고는 달리 무엇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신은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견뎌 낼 수 잇도록 우리에게 이러한 능력들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좋은 왕과 참으로 아버지에 걸맞은 신[제우스]은 또한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의지]을 방해하거나 제한받지 않는 어떤 능력으로 자기 자신에게 남겨 두지 않은 채로, 그 능력들을 우리 자신의 힘 안에 오로지 맡겨 둠으로써, 모든 방해, 강제, 간섭으로부터 자유롭도록 그 능력들을 우리에게 부여했던 것이네.(86~87쪽)
8장 이성적 능력들은 교육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안전할 수 없다는 것
이것[수사학]은 더 긴급한 탐구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흐트러트리게 하는 어떤 활동일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은 자만심과 허영심의 빌미(원인)가 될 수 있을 것이며, 결코 작은 빌미가 아닌 것이네. 논리적이고 설득적인 추론은, 특히 그들이 훈련을 통해 꽉 채워지고 말의 능숙한 사용을 통해 부가적으로 말재간이 뛰어나게 되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네.(100~101쪽)
‘뭐라구요, 플라톤이 철학자가 아니었나요?’
그렇지, 그리고 히포크레테스는 의사가 아니었나? 하지만 너는 히포크라테스가 얼마나 자신을 [말로서] 잘 표현했는지를 볼 수 있을 것이네. 그러면 그가 의사였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잘 표현한 것인가? 그렇다면 너는 왜 같은 사람에게서 부수적으로 결부되어 있던 일을 혼동하곤 하는가? 플라톤이 잘생기고 힘이 셌다고 하면, 어떤 철학자가 철학자일 뿐만 아니라 부수적으로 잘생겼다는 이유로 해서 그것이 철학에 본질적인(필요한) 것인 양, 여기 앉아 있는 나 역시 잘생기고 강해지기 위해 애써 힘들여 분투해야만 하는 걸까? (...) 그럼 뭔가? 내가 이런 능력들을 부정하고 싶어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네. 나는 단지 너에게서 시각의 능력만을 부정하기를 바라는 것이네. 그럼에도 네가 나에게 인간의 좋음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의지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달리 답을 줄 수 없을 것이네.(101~1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