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제 몽테뉴의 <에세>의 마지막 3권에 돌입했습니다!
네 번째 계절을 함께하다보니, 흡사 반환점을 돌아서 쭉쭉 나아가듯 동력을 얻은 듯합니다.
3권에 들어서는 전 글보다 훨씬 촘촘하고 분량도 일관되게 잡힌 글쓰기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 겨우 세 개의 장을 읽었을 뿐이지만요.
당위적인 법과 의무들에 대한 일종의 저항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후회 없이 노년을 맞이하는 기술이 소개되고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책과의 사귐 및 자신의 서재 자랑(?)이 인상깊었는데요.
샘들께서는 어떻게 읽으셨는지, 그럼 3권의 첫 필사를 만나보시겠습니다!
1장 실리와 도리에 관하여
공공의 선은 배반하고 속이며 학살할 것을 요구한다. 이런 심부름은 더 복종적이고 더 융통성 있는 사람들에게 맡겨 두자.(13쪽)
나는 행동하면서 행동 그 자체 말고 다른 과실을 추구하지 않으며, 먼 나중의 결과와 목적을 거기에 연결시키지도 않는다. 각 행동마다 저 나름의 한 판 시합을 하는 것이니, 그럴 수 있다면 매번 과녁에 딱 맞히게 되기를!(15쪽)
그러나 이해관계와 사적 정념에서 비롯된 모질고 가혹한 마음을,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듯, 의무라고 불러서는 안 되며, 사악하고 배신하는 행위를 용기라고 불러서도 안 된다. 폭력과 증오로 기우는 자기들의 성정을 그들은 열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을 끓어오르게 하는 것은 대의가 아니라 이해관계이다. 그들은 전쟁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전쟁이기 때문에 불을 붙인다.(18쪽)
이편과 저편에 온 힘을 다해 자기를 내주는 것은 양심에도 어긋나지만 분별력은 더욱 없는 태도이다. 당신을 똑같이 잘 맞아 주는 한쪽을 배신하며 다른 쪽을 유리하게 해 주면, [유리하게 된] 그 다른 쪽은 자기 역시 똑같이 당하리라는 것을 모르겠는가? 그는 당신을 사악하다고 여기지만 당신 말에 귀 기울여 쓸 만한 것을 캐내면서 당신의 배신 행위를 통해 자기 장사를 한다. 왜냐하면 이중적 인간들은 가져다주는 것이 있어서 유익한 존재이지만 [그들이] 가져가는 것은 최소한에 그치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19쪽)
의지와 욕망은 스스로 그 자신의 법이 된다. [그러나] 행동은 공공의 규율로부터 그 법을 받아와야 한다.(20쪽)
“진정한 법과 완벽한 정의에 대한 정확하고 견실한 표본을 우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그것의 그림자, 그것의 윤곽일 뿐이다.”(키케로)(22쪽)
나는 실리적인 것과 도리에 맞는 것을 구분하는 일반적 어법을 따르는데, 실리적일 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부 자연스런 행동을 이 어법은 도리에 맞지 않고 추하다고 부른다.(23쪽)
두려움 때문에 내가 일단 하려고 한 것은 두려움이 사라진 뒤라도 해야 한다. 두려움이 내 의지가 아닌 혀만을 강제했다고 해도 나는 여전히 내 말에 대해 마지막 한 푼까지 지불해야 할 의무가 있다. 나로서는 때로 내 혀가 무심코 내 생각을 앞질러 가 버렸을 때에도, 그렇다고 해서 내 말을 부인하는 것인 꺼림칙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차츰차츰 제삼자가 우리 약속이나 맹세에 대해 갖게 될 온갖 권리를 뒤엎어 버리고 말리라. “마치 용맹한 자에게 폭력으로 강제할 수 있다는 듯이” 약속을 저버린 우리를 용서하는 권리를 개인적 이해가 갖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자체로 사악하고 부당한 것을 약속했을 때이다. 왜냐하면 덕의 권리는 우리 의무의 권리보다 우선해야 하기 때문이다.(32쪽)
그는 거칠고 격렬한 인간 행위에 선함과 인간미를, 그것도 철학 학파에 존재하는 가장 섬세한 것을 결합시켰던 것이다. 고통과 죽음, 가난에 맞서 저 크고 당당하고 끈질긴 용기를 부드럽게 해 저렇듯 지극한 인자함과 선한 성품으로 만든 것은 천성인가 노력인가? 칼로 피로 무시무시한 모습인 그가 자기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불패인 민족을 부수고 깨뜨리며 나아가다, 대혼전의 한복판에서도 자기를 맞아 주었던 이나 자기 벗을 만나면 몸을 돌렸던 것이다. 전쟁이 격렬함의 정점에 있고 분노와 살육의 거품을 물면서 타오르고 있을 때, 거기에 온화함의 재갈을 물릴 줄 알았던 이야말로 전쟁을 참으로 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행동들에 정의의 어떤 모습을 섞을 줄 아는 것으로도 [이미] 기적이다. 그러나 가장 온유한 태도의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그리고 순수한 무구함을 거기에 섞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아페미논다스의 힘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33~34쪽)
어떤 권력도
친구에 대한 배반을 옹호하거나
승인할 수는 없는 법이다
_오비디우스
그리고 자기 왕을 위해서나 일반적 대의와 법을 위해서라고 할지라도, 선한 인간에게 모든 것이 다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말이다. “왜냐하면 조국에 대한 의무가 다른 모든 의무를 숨죽이게 하는 것은 아니며, 조국 자신에게도 시민들이 자기 부모에게 공손하게 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키케로) 이것은 우리 시대에 적절한 가르침이다. 이 강철 갑옷으로 우리 심장까지 굳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 우리 어깨를 단단히 하는 것으로 족하다. 우리 펜을 잉크에 적시면 족하지 피에 적실 필요가 무엇이랴. 공동의 선과 공권력에 대한 복종을 위해 우정과 개인적 의무, 자기가 한 말과 혈연을 경멸하는 것이 심저의 위대함이자 드물고 특별한 덕성의 결과라고 한다면, 정말이지 그러지 못하는 우리에 대한 변명으로써, 그런 식의 위대함은 에파미논다스의 심정의 위대함 안에 깃들 수 없는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34~35쪽)
어떤 행위의 명예로움과 아름다움을 그 실리를 내세워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며, 유익한 것이면 누구나 그것을 행해야 하고 누구에게나 명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결론 내리는 셈이다.(36쪽)
2장 후회에 관하여
나는 존재를 그리지 않는다. 그 추이를 그린다. 이 시대에서 저 시대가 아니라, 혹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듯 7년에서 다른 7년이 아니라, 하루하루, 순간순간의 추이를 그린다. 나에 대한 이 이야기는 흐르는 시간에 맞춰야 한다. 나는 금방이라도 변할 수가 있으니, 우연하게만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럴 수 있다. 이것은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세상사와 막연하고 때로 모순되는 생각들의 기록인데, 혹은 내가 다른 나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혹은 같은 대상을 내가 다른 상황에서 다른 고려에서 파악해서 그렇기도 하다. 그런즉 어쩌면 내가 내 말을 반박하는 경우가 있겠지만, 그러나 진실에 대해서는, 데마데스가 이야기하듯, 조금도 반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영혼이 고정될 수 있다면 나는 나를 시험해보려 하지 않고, 마음을 결단하리라. 그러나 내 영혼은 늘 수련의 과정, 실험의 과정에 있다.(37~38쪽)
그러나 죄를 지으면 곧 후회하게 된다고 하는 사람들 말은, 마치 자기 집인 양 우리 내면에 기세등등하게 거주하고 있는 죄와는 상관없는 것 같다. 갑자기 우리를 사로잡는 바람에 우리가 정념에 휩쓸려 저지르게 되는 악덕은 부인하거나 부정할 수 있다. 그러나 오랜 습관에 의해 강력하고 세찬 의지 안에 뿌리내리고 닻을 내리게 된 악덕은 거역할 수가 없는 것이다. 후회란 우리의 의지를 부인하는 일이요, 상념들의 변덕일 뿐이며, 그것은 우리를 온갖 방향으로 끌고 다닌다. 후회는 후회하는 자에게 지난날의 미덕과 순결을 부인하게 만든다.
왜 나의 지금 느낌을 젊을 적엔 가질 수 없었을까,
혹은 지혜를 가진 지금은 왜 옛날 그 빛나던 두 뺨을
되찾지 못하는가?
_호라티우스(43쪽)
우리 것보다 더 고상하게 행동하는 것을 상상하고 바란다는 것이 우리 것에 대해 후회하게 만든다면 가장 순진무구한 우이네 신체 기능에 대해서도 회환을 품어야 하리라.(52쪽)
어떤 계획이건 그 성패는 시기에 달렸다. 기회와 일감은 굴러가며 끊임없이 변화한다. 내 인생에서 몇 가지 중대하고 심각한 실수를 저질렀는데 좋은 견해가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시기를 놓쳐서였다.(53쪽)
무슨 일이건 지나고 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도 나는 별로 아쉬워하는 법이 없다. 그것은 그렇게 일어나게 돼 있었다는 나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제 저것은 우주의 거대한 흐름 속에, 스토아 학파가 말하는 인과의 고리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바란다고 혹은 상상한다고 해서 그대의 몽상이 점 하나라도 움직이지 못하니, 그렇게 되면 만상의 질서 전체와 과거, 미래까지도 뒤집히는 것이다.(55쪽)
내 생각에는 인간의 행복을 만드는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안티스테네스가 말한 것처럼 행복하게 죽는 것이 아니다. 다 끝난 사람의 머리와 몸에 철학자의 꼬리를 기괴하게 달아 매려는 노력을 나는 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초라한 끝자락이 내 삶의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며 긴 부분을 취소하고 부인하게 하려는 짓도 말이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은 모습으로 나를 내보이고 또 그렇게 비치기를 바란다. 내가 다시 살게 된다면 나는 내가 살아온 것처럼 다시 살 것이다.(57쪽)
3장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
자기 기질이나 성향에 너무 강하게 붙들려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주요한 능력은 다양한 일에 적응할 줄 아는 것이다. 별 수 없이 오직 한 가지 생활 방식에만 매달린 채 지내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것일 뿐 사는 것이 아니다. 가장 고매한 영혼은 가장 많은 다양성과 유연성을 지닌 영혼이다.(60쪽)
내 식으로 나를 만들어 가는 것이 내게 달린 일이라 해도, 벗어날 길을 모르게 매달려 있고 싶을 만큼 훌륭한 방식이란 없다. 삶은 고르지 않고 불규칙하며 다형적인 움직임이다. 자기 모습을 끊임없이 따라가기만 하고, 자기가 가진 경향에 너무 얽매여 그로부터 거리를 두지도 그것을 고치지도 못한다면 우리는 자신의 벗이 될 수 없으며, 자신의 주인은 더욱 되지 못하고, 자신의 노예가 될 뿐이다.(60쪽)
자신을 기운차게 시험해 보고 또 활동하게 할 줄 아는 이에게 명상은 강력하고 풍요로운 공부이다. 나는 내 영혼에 무엇을 채워 넣기보다 그것을 단련하고 싶다. 흐릿한 영혼의 모습이 어떤가에 다라 자기 생각들을 헤아려 나가는 일보다 더 흐릿한 일도 혹은 더 강인한 작업도 없다. 가장 위대한 정신들은 생각하기를 자신의 일로 삼으니, “그들에게 산다는 것은 곧 생각한다는 것이다.”(키케로)(61~62쪽)
운명은 젊은 시절부터 나를 하나이고 완벽한 우정으로 이끌고 그것을 기뻐하게 만들면서 다른 것에는 정말이지 얼마간 싫어하는 마음이 들게 만들었고, 고대인이 이야기하듯, 우정이란 둘이 있는 짐승이지 떼지어 있는 짐승이 아니라는 것을 내 머릿속에 너무 깊이 각인시켜 놓았다. 또한 나는 반쯤만 그리고 적당히 내 생각을 전하는 것을 천성적으로 힘들어하거니와, 불완전한 다수의 우정을 맺을 때 사람들이 우리더러 주문하는 저 비굴하고 의심에 찬 신중함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세상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이 위험하고 허위에 불과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에는 사람들이 특별히 우리에게 그 점을 주문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목표를 인생의 안온함에 둔 사람은 (내 말은 본질적인 안온함에 뜻한다.) 까다롭고 섬세한 기질을 마치 페스트처럼 피해야 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능소능대할 줄 알며 여러 층위를 제 안에 두고 있는 영혼을 나는 찬양하리라. 제 운명이 자기를 어디로 데려가든 편안하고, 자기 집 짓는 일이나 사냥, 송사에 대해 제 이웃과 이야기 나눌 수 있으며, 목수나 정원사와 기분 좋은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영혼 말이다. 자기 시종 중 가장 미천한 사람에게도 친근하게 대하고, 자기 집 하인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나는 부럽다.(64쪽)
라케데모니아인들의 용맹함이 절도를 필요로 하고, 전쟁에서 그들을 다독여 줄 피리 연주의 부드럽고 우아한 음색이 필요했던 것은, 그 용맹이 행여 무모함과 분노로 변질될까 염려해서였는데, 보통 다른 민족은 누구나 군인들의 용기를 과도하게 뒤흔들고 들끓게 하는 날카롭고 강력한 음향과 음성을 사용했던 것과 달랐다.(65쪽)
왜냐하면 아무리 유용하고 바람직한 것이라 해도, 내 생각에, 필요하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 무엇 하나 없이도 지낼 수 있고, 학문 없이도 우리 목적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좋은 소질을 갖고 태어나 사람들과의 사귐을 통해 단련된 영혼은 스스로 온전히 유쾌한 존재가 된다. 예술이란 이런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을 검토하고 수집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70쪽)
비너스를 여신으로 만든 자들은 그녀의 주된 아름다움이 비육체적이고 정신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 남자들이 찾는 비너스는 인간에도 심지어 짐승에도 속하지 않는다. 짐승들이 비너스가 그렇게 우둔하고 속악하기를 바랄 리가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리가 보니, 짐승들은 흔히 육체보다 먼저 상상력과 욕구로 달아오르고 자극된다. 수컷이건 암컷이건 무리 중에서 애정의 대상을 선택하고 차별이 이루어지며, 자기들끼리도 좋아하는 마음을 오랫동안 서로 나눈다. 노쇠해 기력이 없는 짐승도 사랑으로 여전히 몸을 떨고 히힝거리며 소스라친다. 일을 벌이기 전에 기대와 열정으로 가득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육체가 제 유희를 다 마치고 나면 아직도 그 달콤함을 기억하며 서로를 쓰다듬는다. 일이 끝나 으쓱해하는 놈들고 있고, 지치고 흡족한 채 환희와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녀석들도 있다. 육체의 본능적 욕구를 해소시켜야 할 뿐이라면 그렇게 세심한 준비를 하며 상대의 관심을 끌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랑은 거칠고 충동적인 굶주림을 처리하는 음식이 아니다.(73쪽)
책은 나의 행로 어디에나 나의 곁에 있으며 어디든 나를 동반한다. 그것은 노년에, 홀로 있을 때, 나를 위로해준다. 지루한 권태의 무게를 내게서 덜어 주며, 불쾌한 사람들로부터 언제나 나를 떼어 준다. 그것이 고통이 극단적이고 압도적이 아니라면서 그날 날을 무디게 한다. 머리 아픈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나는 그저 책에 매달리면 된다. 책은 나를 쉬 자기에게 향하게 하며 힘든 생각을 잊게 해 준다. 그러면서도 보다 현실적이고 생생하며 본능적인 다른 안락함이 없어서 자기를 찾는다는 것을 알아도 조금도 대들지 않는다. 책은 항상 같은 얼굴로 나를 맞아 주는 것이다.(75쪽)
사람들 이야기로는 자기 말 고삐를 잡고 걸어가는 사람은 [언제든 말을 탈 수 있으니] 걷는다 할 수 없다고 한다. 나폴리와 시칠리아의 왕이었던 우리의 자크는 잘생기고 젊고 건강했는데, 프랑스로 오면서 들것에 실려 왔다. 질 나쁜 털 베개에 누운 채 회색 직물로 된 옷을 입고, 비슷한 재질의 헝겊 모자를 썼으나, 그의 뒤로는 성대한 왕족풍 행렬이 따르며 가마솥과 손으로 이끄는 온갖 종류의 말들, 귀족과 관리들이 줄지어 가니 아직 연약하고 동요하는 검박함을 보여 준 셈이다. 소맷부리에 치유법을 넣고 다니는 병자는 안타까워하지 않아도 된다. 책들에서 내가 얻는 열매 전부가 대단히 진실한 이 격언을 실천하고 적용하는 데 담겨 있다. 사실 책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책을 별로 꺼내 읽지 않는다. 구두쇠들이 자기 보물을 즐기듯 그렇게 나도 기분이 나면 그때 즐기려니 하면서 지르기는 것이다. 소유의 권리로 내 영혼은 배부르고 만족스럽다. 평화 시나 전쟁 시나 나는 책 없이 여행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책을 들여다보는 일 없이 며칠 또 몇 달이 마냥 흘러갈 수도 있다. 곧 혹은 내일, 또 혹은 기분 내키면 하고 나는 말한다. 그동안 시간이 흐르고 지나가 버리더라도 나는 괘념치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원할 때 내게 기쁨을 주기 위해 책들이 내 곁에 놓여 있다는 생각을 하거나, 책들이 내 삶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주는지를 깨달으면서,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쉬고 있는지를 말로는 다 담아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생이라고 하는 여행길에 내가 발견한 최고의 장비가 바로 이것이며, 분별력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못 가진 경우 나는 그 처지가 극도로 안타깝다. 아무리 하찮을질라도 어떤 종류의 기분 전환이든 내가 즉각 받아들이는 것은 책이 내 곁에서 빠져나갈 일이 없기 때문이다.(75~76쪽)
내 생각에 제 집 안에,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곳, 자기에게 특별히 아첨하고 자기를 숨길 수 있는 곳을 갖지 못한 자는 비참하다! 야심이 자기 하인들에게 주는 보수란 그저 장터에 서 있는 입상처럼 남의 시선 앞에 서 있게 해 주는 것이다. “위대한 운명이란 거대한 예속일 뿐”(세네카), 그들에게는 구석방마저도 쉬기 위한 곳이 아니다. 우리네 수도사들이 행하는 엄격한 생활 중에, 어떤 수도회에선가 항상 함께 있는 것을 규칙으로 하고 어떤 행동을 하건 자기들 중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하도록 한 것은, 내 보기에 가장 혹독한 것이었다. 그리고 한 번도 홀로 있을 수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혼자 있는 것이 좀 더 견딜 만하다고 생각한다.(78쪽)
책을 고를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매력적인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고통 없는 좋은 것은 없으니 그것 역시 다른 쾌락들과 마찬가지로 순진무구한 쾌락은 아니다. 그것은 불리한 점들을 가지고 있으니 그것도 아주 심각한 것이다. [책을 읽노라면] 정신은 단련되지만 육체는 그렇지 않아, 가꾸는 것을 내가 잊지는 않았지만 그런데도 아무런 움직임 없이 있노라면, 몸은 축 늘어지고 병들게 된다. 노쇠해져 가는 지금 이 시기에 이보다 더 내게 해롭고 내가 더 피해야 할 지나침도 없다.(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