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세미나가 끝났다.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아니 대강이라도 세미나 책을 읽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난 8주를 보냈다. 때론 급하게 훑어보고 때론 읽지도 못하고 세미나에 참여했지만, 그래도 어떤 개념 하나에 열중했고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보려 시도했다. 그것은 바로 무질서의 개념이었다.
사실 난 질서와 무질서에 대해 관심이 많았었다. 내가 경험한 세계는 질서와 무질서로 양분된 것처럼 보였다. 질서 지어진 세계가 그럴듯해 보였고 무엇인가가 더 고급스럽고 세련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니 우린 ‘무질서에서 질서로 향해 가는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것이 나에겐 일종의 ‘진화’였다. 그러지 못한 상황들에 마주칠 때마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기분을 상해하며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서와 무질서는 관념이 생산해 낸 표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무질서는 우리가 기대한 질서가 아닐 때 그것에 대한 실망의 언표일 뿐이다. 예를 들어 인도의 거리는 그야말로 카오스다. 그곳에서는 내가 기대하는 질서는 없다. 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니, 그곳이야말로 무질서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허나 이 세상에는 질서와 무질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본성의 질서가 있다고 한다. 핵심은 생명적이고 자발적인 질서인가 아니면 타성적이고 자동적인 질서인가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도와 같은 곳의 질서를 생명적인 영역으로 바라볼 것인가 아니면 타성적인 영역으로 바라볼 것인가의 문제가 되고, 그것은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게 한다. 질서와 무질서의 관념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우리는 이런저런 것들을 극단적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의 간격들에 대한 감수성이 마비되어 버렸다.
의식 존재인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위들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간격의 극단들을 세는 것이 아니고 간격들 그 자체를 느끼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간격들을 결정된 간격들로 의식한다.(497)
우리가 간격들 그 자체를 느끼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간격은 시간 그리고 지속과 관련된 개념인 것 같은데, 그 의미가 손에 잡힐 듯 말 듯 하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간격들을 결정된 것으로 의식하기 때문에 간격들 그 자체를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베르그손은 어린아이의 그림맞추기 놀이와 예술가의 작업을 예시로 해서 이 문제를 다룬다. 그림맞추기 놀이에서는 특정한 시간이나 어떤 시간도 요구되지 않는다. 그림맞추기는 결과가 이미 주어져 있기 때문에 재구성과 재배열이라는 작업만으로도 그 목적 달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베르그손의 시간에 대한 용법이 독특하다. 기계론과 목적론처럼 어떤 작업이 이미 계획된 틀이 있거나 도달해야 할 목적이 있으면 그것은 시간/간격 그 자체를 느끼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극단들을 세는 것일 수 있다. 거기엔 간격이 소거되고 시간이 부수적인 것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림맞추기처럼 지나간 것들을 공간에 순간적 병렬 형식으로 펼쳐놓을 수 있다고 인식한다.
반면 예술가의 시간은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그의 작업의 지속은 그의 작업 전체를 이루고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시간이 끊임없이 스스로 창조하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발명으로서의 시간을, 비결정된 시간을 느끼고 살아간다. 예술 작업은 고립된 인위적 체계 안에서가 아니라 “예측불가능한 것과 새로운 것의 구체적 전체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발명으로서의 시간이며 그것의 작업과 시간이 순간으로 분리되지 않는다. 예술가도 그의 작업을 예측할 수 없다. 그는 자기 작업에 온전히 몰두하고 그 시간을 살고 거기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낸다.
이러저러하게 간격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뭔가를 시도해 보려 했는데, 맴도는 느낌이다. 어쩌면 우리가 『창조적 진화』를 이해하기 위해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예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방식으로 해석도 해보면서 시간을 온몸으로 살아내고 있는 것이 간격들 그 자체를 느끼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동시에 그것이 예술 활동일 수도 있겠다.
바쁘신 중에도 매시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저도 이번 주에 시간에 관해 나눈 이야기가 계속 마음에 남네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 자체가 시간이고, 우리 존재 자체가 시간이라는 것... 이러한 관점이 어떻게 윤리로 이어질지 다음 시즌도 기대됩니다!😀
매번 하나의 개념을 품고 세미나를 마치신다는 것, 좋네요!!
예술활동으로서의 읽기-생각하기-쓰기-말하기에 대해 고민해보게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