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을 읽자> 시즌 3이 시작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이런저런 사정으로 함께하지 못하게 된 샘들이 계셔서 이번 시즌에는 오붓한 세미나가 될 듯합니다. 지난 시즌에 많은 샘들이 함께 하셔서 그런지 9명인데도 오붓하게 느껴지는 착시(착감?) 현상이..ㅎㅎ
이번에 함께 읽는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은 지금까지 읽어온 베르그손의 저작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입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회, 의무, 도덕, 종교 등을 다루고 있어서 그런 듯한데요. 그런 만큼 할 얘기도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베르그손 옹께서는 이번에도 익숙한 것을 새롭게 다루는 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계시지만요.^^ 첫 시간에 나눈 몇 가지 내용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사회와 의무
“사회적 삶이란 공동체의 필요들에 부응하는 다소 강하게 뿌리박힌 습관들의 체계처럼 보인다.” (9쪽)
1장에서 베르그손은 두 가지 도덕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도덕이고, 다른 하나는 베르그손이 우리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도덕입니다. 첫 번째 도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사회’와 ‘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베르그손은 우리에게 가장 오래된 기억이 ‘금지’의 기억임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 우리에게 주어지는 금지의 명령에 복종했습니다. 왜 복종해야 하는지 묻지 않고 그 명령에 따랐는데요, 이는 우리가 부모와 스승의 말씀에 따르는 '습관'을 들였기 때문입니다. 베르그손은 그때 우리가 분명히 깨닫지는 못했지만 그들 뒤에서 우리를 압박한 것이 바로 '사회'였음을 지적합니다. “우리 부모와 스승의 뒤에서 그들을 매개로 해서 자체의 모든 중량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어떤 거대한 무언가.”(8쪽)
우리는 어려서부터 부모와 스승의 말씀에 따르며 익혔던 습관들의 체계 덕분에 사회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잠시 그 습관들로부터 벗어나도 이내 ‘수직 상태에서 벗어난 시계추처럼’ 그 습관들에 이끌려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처럼 사회적 삶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습관을 베르그손은 ‘의무’라고 부릅니다. 이 습관들/의무들은 모두 서로 연관되며,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합니다. 제각기 분리되어 나타난다면 대부분은 사소한 의무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하나의 덩어리를 형성한 ‘의무 전체’는 그렇지 않습니다. 저희는 여러 군데서 언급되는 이 ‘의무 전체’의 의미가 맥락에 따라 조금 다르게 읽히기도 해서 조금 애매했어요. ‘의무 일반’ 혹은 ‘<그것이 의무이다>라는 형식’으로도 표현되는 ‘의무 전체’는 각 의무들에 ‘총괄적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그것들을 강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게 개개의 의무는 힘을 지니게 되고, 우리는 깊이 생각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의무를 따르게 됩니다.
닫힌 사회, 닫힌 도덕
이처럼 도덕적 의무의 기저에는 사회적 요구가 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사회, 즉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를 베르그손은 ‘닫힌사회’라고 부릅니다. ‘닫힘’과 ‘열림’이라는 틀은 베르그손이 새로운 도덕, 새로운 사회를 생각해보기 위해 도입한 것인데요, 사회, 영혼, 도덕, 종교 등을 닫힘과 열림으로 대비해 설명합니다. 베르그손은 우리가 사는 ‘사회’와 ‘인류 일반’ 사이에 닫힘과 열림 사이와 같은 대비가 놓여 있다고 말합니다. ‘가족이나 국가에 대한 애착’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비교해보면 좀더 이해가 쉽습니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이 두 정서는 정도의 차이가 아닌 본성의 차이를 지닙니다. 전자는 ‘선택과 배타성’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분쟁을 야기할 수 있으며, 증오심을 배제하지 않습니다.
“전자들(가족의 사랑, 국가에 대한 사랑)은 그들을 이끄는 대상에로 가서 곧바로 정착한다. 후자(인류에 대한 사랑)는 자신의 대상의 매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 정서는 그 대상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더 멀리 돌진해서 단지 대상을 가로지르면서 인류에 도달한다.” (54쪽)
선택과 배타성을 함축하고 있다면 그것은 닫힌 사회이고 닫힌 도덕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사회와 도덕은 모두 닫힌사회, 닫힌도덕인 거죠. 그렇다면 열린 사회와 열린 도덕이란 어떤 것일까요? 선택과 배타성을 전혀 함축하지 않는 사회와 도덕... 상상하기가 참 쉽지 않은데요. 베르그손은 이번 부분에서 다른 도덕, 완전한 도덕을 구현한 예외적인 인간들을 언급합니다. 기독교의 성자들, 그리스의 현자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 불교의 아라한들. 이러한 존재들은 그 존재 자체가 일종의 호소력이므로 그들 뒤에는 늘 군중들이 따릅니다. 이처럼 완전한 도덕에는 일종의 호소가 있으며 이는 특권적 인격 속에 구현된다고 베르그손은 말합니다. 이런 언급에서 저희는 처음에 역사적 영웅들을 떠올리게 되었는데요, 곧바로 그런 영웅들의 태도에서도 선택과 배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한마디로 ‘급’이 다르다는...^^;
베르그손은 늘 그렇듯 우리에게 이 다른 도덕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이번에 읽은 ‘감동’에 관한 부분도 그 설명의 일부인 듯한데요. 베르그손은 ‘음악적 감동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도덕에 있어서 현자들의 행동’에 비유합니다. 완전한 도덕이 일종의 호소를 지닌다는 언급과도 연결되는 듯하고요. 이전 저작에서도 베르그손은 음악에 비유해 설명하곤 했는데요, 이번 비유도 참 인상적이네요. 길지만 옮겨 봅니다.
“예를 들어 음악적 감동 속에 일어나는 것이 그것이다. 우리가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는 음악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의도할 수는 없는 것처럼 보이며, 음악을 들으면서 행동에 의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처럼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음악이 기쁨, 슬픔, 동정, 공감을 표현한다면, 우리는 매 순간 음악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우리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 아니 다른 모든 사람들 역시 그렇다. 음악이 슬퍼하면, 음악과 함께 슬퍼하는 것은 인류이고 자연 전체이다. 사실 음악이 이런 감정들을 우리 안에 들여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지나가는 행인들을 춤 속으로 밀어넣듯이, 음악이 우리를 이 감정들 안으로 들여보낸다. 도덕에 있어서 현자들도 이렇게 행동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삶은, 새로운 교향곡이 그렇게 할 수 있듯이, 예기치 못한 감정의 울림들을 갖는다. 그들은 자신들과 함께 우리를 이 음악 속으로 들어가게 해서 우리로 하여금 음악을 행동으로 표현하게 한다.” (55~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