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그손을 읽자2] 4주차 후기 230805 / 해무 김현정
같은 문장을 몇 번씩 읽으며 이해해 보려고 씨름하다가 매번 진도만큼 다 읽지도 못하고 토론을 듣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지도 못한 내용과 토론의 후기를 쓰려니 어떻게 써야 할지 감당이 안 돼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네요. 게다가 다른 선생님들의 후기를 보니 왜 이리도 주눅이 드는지요?(ㅠㅠ) 어쩔 수 없이 책에서 나름대로 중요하다 싶은 문장들을 요약 필사하는 것으로 후기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샘들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지성의 자연적 기능
지성이 도구를 제작하는 능력이라고 할 때, 제작은 오로지 무기물질 위에서만 수행되므로 지성은 무기적인 고체를 주요 대상으로 삼는다. 따라서 지성은 불연속적인 것만을 명확하게 표상한다. 하지만 우리 행동이 영향을 미치는 대상들은 움직이는 대상들이다. 그러나 지성은 그 자연적인 성향으로 인해 고정적인 것과 부동적인 것에 집착한다. 즉 지성은 부동성만을 명확하게 표상한다. 그런데 제작이란 대상의 형태를 재료 속에서 재단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지성은 모든 재료를 마음대로 재단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물질에 대한 우리의 힘, 즉 그것을 우리 마음대로 분해하고 재구성할 능력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가능한 분해와 재구성을 실재적 연장 뒤에서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텅 빈 무차별적이고 동질적 공간의 형태로 한꺼번에 투영한다. 그런데 인간은 사회 안에서 사는 존재이고, 사회 안에서 구성원들은 서로 기호를 통해 소통한다. 그리고 인간 언어의 특징은 기호가 한 대상에서 다른 대상으로 전이하는 경향, 곧 유동성이다. 이러한 유동성으로 인해 말은 사물에서 관념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 이렇게 말은 유동적이고 어떤 것에도 고정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무기물질의 형식에 적응되어 있는 지성은 무기물질에 작용하지 않을 때라도 무기물질의 형식을 적용한다. 따라서 지성은 자신을 명석하게 판명하기 위해서 불연속성의 형태로 자신을 파악하고,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유기적인 것을 무기적인 것으로 분해하며, 생성을 각각 자신과 동질적이며 따라서 변화하지 않는 일련의 상태들로 표상한다. 지성은 언제나 주어진 것을 가지고 재구성하려 하기 때문에 역사의 매순간에서 새로운 것을 빠져나가게 하며, 모든 창조를 거부한다. 지성은 생명에 대한 몰이해로 특징지을 수 있다.
본능의 본성
반대로 본능은 바로 생명의 형식 자체를 본떠 만들어졌다. 일차적 본능들 중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들은 실제로 생명적 과정들이다. 본능과 지성은 한 동일한 원리에서 분기되어 발달한 것인데, 이 원리는 본능에서는 자신의 내부에 남아 있고 지성에서는 외화 되어 무기물질의 사용에 동화된다. 본능의 본질적 특성은 지적 용어로 표현될 수 없으며 따라서 분석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으로서는 본능을 지성의 용어로 표현하는 것 이외에는 방도가 없다. 신다윈주의는 본능의 진화를 선택에 의해 보존된 우연적 차이들의 총합이라 보고, 신라마르크주의는 생명체가 자신 안에서 고차적 본능을 발달시키는 것은 다소간의 의식적 노력에 의해서라고 본다. 이때 그들은 각기 오류에 빠져 있다. 종이 자신들의 본능을 변형하고 또 스스로 변형되려는 노력은 훨씬 더 심층적이고, 단지 환경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고 개체들에만 의존하는 것도 아니다. 본능에 대해 과학적이지 않지만 형이상학적인 구체적 설명은 아주 다른 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지성의 방향에서가 아니라 <공감>의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생명과 의식
본능은 공감이다. 직관은 우리를 생명의 내부로 인도해 준다. 직관은 무사심하게 되어 자기 자신을 의식하고 대상에 대해 반성할 수 있으며 그것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게 된 본능이다. 직관은 우리에게 지성적 소여들의 불충분한 점들을 파악하게 해주고 그것을 보완할 수단을 엿보게 해준다. 그러나 만약 이로써 직관이 지성을 넘어선다면 직관을 그것이 있는 지점으로까지 올라오게 해주는 것은 지성의 도움으로 가능할 것이다. 지성이 없는 직관은 본능의 형태로 남아 실제적으로 관심이 있는 대상에 고정되고 그 대상에 의해 외화될 것이다. 생명의 진화는 한 광대한 의식의 흐름이 물질을 관통하고 상호침투하는 막대한 양의 잠재성으로 가득 차 있던 것처럼 보이며, 그 흐름은 물질에 유기화 작용을 초래하였다. 의식은 스스로 해방되기 위해 유기조직을 한편으로는 식물, 다른 한편으로는 동물이라는 두 상보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 그 후 의식은 본능과 지성이라는 이중의 방향에서 출구를 찾았다. 의식은 본능에서 출구를 발견할 수 없었으며, 지성 쪽에서도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갑작스러운 도약에 의해서만 그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사실상은 어떤 한 존재의 흐름과 상반되는 흐름이 있을 뿐이다. 거기에서 생명의 모든 진화가 유래한다.
핵심적인 내용을 뽑아서 정리해주셨네요.^^ 지성은 물질을 조작하는 능력으로 본성적으로 생명을 이해할 수 없고, 본능은 생명을 내부로부터 인식하지만 그 인식을 생명 일반으로 확대하지 못하고... 그렇기에 생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둘의 협업(?)이 필요하며, 지성의 도움으로 깨어난 본능인 '직관'이 바로 그 열쇠라는 점... 일단은 요렇게 정리해봅니다.ㅎㅎ 세미나 시간에 나눴던 직관과 공감에 관한 이야기들도 분명하게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계속 마음에 남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