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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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시간에는 <시론> 2장 후반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번 부분에서도 베르그손은 다양한 측면에서 지속의 관념을 설명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내용이 많아서,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시간과 공간의 기존 관념이 엉클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역시 베르그손!^^b) 저희는 ‘동시성’에 관한 이야기로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우면서도 헷갈리는 부분이 있어서 꽤 오랫동안 관련 이야기가 이어졌네요.
베르그손에 따르면, 시간과 공간은 확실하게 나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둘 사이에는 ‘삼투압 현상’과 비슷한 일종의 ‘교환’이 일어나는데, 베르그손은 이 지점을 '동시성'이라고 부릅니다. 그 동시성을 접점으로 한쪽에는 ‘지속하는 공간’(공간)이 있고, 다른 쪽에는 ‘공간적인 지속’(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공의 구별은 ‘경향성’의 구별일 뿐이지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거죠. 지속의 관점에서는 이런 시각이 당연한 것일 텐데, 지속을 표상하는 일이 쉽지 않은 저희에겐 여전히 새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지속의 관념을 떠올리는 일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로 베르그손은 ‘지속하는 것이 우리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습니다. 외부 사물도 우리처럼 지속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러한 관점에서 시간은 ‘동질적 장소’(공간)와 매우 닮아 있다는 겁니다. 지속하는 순간들은 서로에 대해 밖에 있는 것으로 보일 뿐 아니라 ‘공간운동’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측정 가능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지만, 지속 자체, 시간 자체, 운동 자체는 측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동시성들을 세거나, 동시성과 동시성 사이를 잴 수 있을 뿐이죠. 역자 해제를 읽어보니 좀더 이해가 되네요. 옮겨 봅니다.
“결국 자아 속에는 상호 외재성이 없는 계기만이 있으며, 자아 밖에는 계기 없는 상호 외재성만이 있다. 시간을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양자 사이에 일종의 삼투압이 일어나서 생긴 현상이다. 즉, 지속과 외부세계와의 결합에 의해, 그 외부세계의 분절이 지속에 도입되어 마치 시간이 나뉘는 것처럼 보이고, 지속의 기억이 외부세계에 도입되어 공간 속의 사건들이 보존됨으로써, 동질적 시간이라는 공간의 제4차원이 창조된다. 그러나 실제로 있는 것은 현상들이 그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공간과, 외부세계에 접근할 수는 있으나 상호 침투적인 지속뿐이며, 그 양자를 이어주는 것이 동시성이다.” (341~342쪽)
<물질과 기억>에서 우주를 이미지들의 총체로 설명하고, 외부 세계의 이미지들과 나의 신체 이미지로 나누어 보았던 것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책을 펼쳐보니 ‘기억’이 ‘정신과 물질 사이의 교차점’이라는 문구(27쪽)가 눈에 들어오네요. 어딘가 연결이 되는 것 같지 않나요?
이것 말고도 <물질과 기억>을 떠올리게 한 부분이 또 있었는데, 바로 ‘자아’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시론>에서 베르그손은 의식적 삶의 두 측면을 구별합니다. 이것을 직접적으로 보느냐 공간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이중적인 자아의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합니다. “구별되는 상태들을 보는 자아와, 그후 주의를 더욱 고정시킴으로써 그 상태들이 마치 한참동안 손 위에 떨어져 있는 눈의 결정체들처럼 서로 녹아드는 것을 볼 자아.”(175쪽) 이러한 구분은 <물질과 기억>의 원뿔 도식(꼭지점과 밑면)을 떠올리게 했어요. 세미나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베르그손의 후기 저작들을 먼저 읽고 다시 거슬러 올라가 첫 저작을 읽으면서 나중에 더 정밀하게 발전할 이론들의 씨앗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한 것 같습니다.
그뿐 아니라 베르그손의 ‘꼼꼼한 분석’에 대해서는 매 시간 감탄하며 이야기하게 되지요. 이번 부분에서는 직접 강조까지 하고 있어서 저희 모두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앞서 말한 ‘근본적 자아’를 다시 찾기 위해 ‘엄밀한 분석적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러한 노력이 어떤 것인지는 자신의 저작에서 직접 보여주고 계신데요. 그 내용도 우리에게 많은 영감을 주지만, 그가 자신의 사유를 풀어내는 방식과 태도 또한 매우 인상적입니다. 드디어 '자유'에 관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3장도 기대되네요.
저번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후기를 읽으니, 도움이 되는 것 같네요. 그런데도 '지속하는 공간', '공간적인 지속'과 관련된 동시성 등의 이야기가 아리송합니다. 또 자유는 어떤 방식으로 풀어갈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