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계속되는 가운데 <에세> 읽기는 마무리되어갑니다.
몽테뉴의 박학다식함과 묵직묵직한 진솔한 문장들과 아침을 보낸 지 벌써 10주가 되어갑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또 어떤 주'머니에 쏙 넣고 싶은 문장'을 만날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물론 아직도 졸음이 남아 있지만요.
이번주도 재미난 문장들을 모아주셨는데요. 길게 인용되고 있지만 꼭 나누고 싶네요.
30분의 기적(경희샘의 표현) 덕분에 이제 대망의 마지막 페이지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이 기세면 2권도 당당하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다!
47장 우리 판단의 불확실성에 관하여
상대가 달리 도망갈 방도가 없어 무기를 들 수밖에 없도록 계속 공격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막다른 궁지란 포악한 선생이기 때문이다. 궁지에 몰린 자를 자극하면 무섭게 물어뜯는 법.(496쪽)
50장 데모크리토스와 헤라클레이토스에 관하여
판단력은 모든 일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어디서나 관여한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 하고 있는 시험(essai)들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기회이든 다 이용한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라도 나는 그것에조차, 멀찌감치서 여울의 얕은 곳을 가늠해 가며 내 판단력을 시험해 본다. 그러고 나서 내 키에는 너무 깊은 것으로 드러나면 물가에 머무른다. 그 너머로 건너갈 수 없음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판단력을 보여주는 특징적 자질 중 하나요, 나아가 가장 자랑할만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보잘것없고 하찮은 주제를 가지고도 나는 그것에 몸체를 부여할 수 있는 무엇, 그것을 받쳐주고 지탱해 줄 무엇을 찾아보려 애쓴다. 때로는 그 자체로는 더 찾아낼 것이 없는 고상하고도 진부한 주제로 판단력을 산보시키기도 한다. 하도 다져진 길이어서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밟으며 걸을 수밖에 없어도 말이다. 그럴 때는 가장 나아 보이는 길을 선택하거나, 수많은 오솔길 중 이것 또는 저것이 가장 잘 고른 길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판단력의 활동이다.(527쪽)
나는 우연히 주어진 논제를 취한다. 어떤 것이든 내게는 똑같이 좋다.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개진할 생각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도 그 전부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부를 보여주겠노라 약속하는 이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수많은 지체와 얼굴 중에서 나는 하나만 취해 때로는 핥아 보기만 하고 때로는 스쳐 보며, 또 때로는 뼈까지 꼬집어 본다. 바늘로 찔러 본다. 가장 넓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 가장 깊이. 그리고 내가 가장 즐겨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관점으로 그것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좀 덜 안다면 어떤 소재는 속속들이 다뤄 보겠다고 덤볐겠지만 말이다. 그저 여기서는 이 단어, 저기서는 저 단어, 저들의 저서에서 떼어 낸 편린들을 흩뿌리면서, 계획도 약속도 없이,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 때는 달리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으며, 의심과 불확실, 그리고 무지라는 나의 주된 상태로 물러나 버린다.(527~528쪽)
각각의 영혼은 자기 나라에서 왕이다. 그러니 더 이상 사안들의 외적인 성질을 가지고 우리를 변명하지 말자. 각 사안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우리에게 달렸다. 우리의 행불행은 오직 우리에게 달렸다. 봉헌과 맹세는 운수가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바치자. 운수는 우리 행습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반대로 우리의 행습이 운을 끌고 가며, 제 형태로 운을 주조하다.(529쪽)
53장 카이사르의 한마디
우리가 때로 우리 자신을 고찰하는 데 마음을 쓰고, 남들을 살피거나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을 알려고 들이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데 쓴다면, 우리 존재라는 이 피륙이 얼마나 연약하고 결함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 바로 욕망 자체와 상상으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 우리 능력 밖이라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성에 대한 특별한 증거가 아니겠는가? 인간의 최고선을 찾기 위해 철학자들 사이에 줄곧 이어져 온 대단한 논쟁이 그 좋은 증거이다. 이 논쟁은 아무런 결론도 의견 일치도 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또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541쪽)
무엇이 됐건 우리가 알고 있고 즐길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느끼며, 현재의 것들이 우리를 조금도 채워 주지 못하니, 우리는 미지의 것이 다가오기를 갈망하며 지낸다. 내 보기에는, 그것들이 우리를 만족시키기에 부족하다기보다는 우리가 그것을 붙드는 방식이 병적이고 혼란스럽다.
그는 보았다, 인간은 삶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을 가지고 있음을
그는 또 보았다, 부와 명예와 명성이 가득하고
자식들의 좋은 평판이 자랑스러운 인간들을.
그러나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내면 깊숙이 고뇌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탄식으로 옥죄이지 않는 자는.
그래서 그는 알게 되었다, 문제라는 그릇 자체라는 것을,
밖에서 넣어 주는 모든 좋은 것을
바로 이 그릇이 상하게 한다는 것을.
-루크레티우스
우리의 욕구는 우유부단하고 불확실하다. 그 무엇도 제대로 간직할 줄 모르고 제대로 향유할 줄 모른다. 인간은 이것이 사물들의 결함 때문이라고 여기고, 전혀 모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로 자기를 채우고 먹이면서 자기 욕망과 희망을 그쪽으로 끌어가며 그것들을 대접하고 떠받든다. 카이사르가 말했듯이, “천성적이고 일반적인 악덕으로 인해 우리는 보이지 않게 감춰진 미지의 것들을 더 신뢰하고 또 더 두려워하게 되는 것이다.”(542~543쪽)
54장 쓸데없는 묘기에 관하여
무지에는 학식을 갖기 전의 초보적인 무지도 있지만 학식을 얻은 뒤에 오는 박사님의 무지도 있다고 얼마든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학식은 첫 번째 무지를 흐트러뜨려 부수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른 무지를 만들고 낳는다.(546~5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