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중세철학 산책’ 첫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이 세미나를 신청하신 분들은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제가 열었지만) 대체 이 세미나 왜 신청한 거지? 목요일 ‘일리치 리-리딩’ 팀 분들이야, 하고 계신 세미나와 연관되기도 하고 저의 제안과 은근한 압박(?)도 있었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다른 분들은 어떤 관심과 문제의식 속에서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간 다른 것도 아닌 ‘중세철학’(중세철학을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인기가 많은 편은 아니잖아요?)을 공부하려 하시는 걸까?
첫 시간 줌 화면으로 얼굴을 마주하고 각자가 어떤 맥락 속에서 ‘중세철학 산책’에 접속하게 되셨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사를 공부하고 계시는 와중에 시기가 겹치는 서양 중세에 대해 알고 싶어지셨다던 연정샘과 ‘암흑시대’라고만 알고 있던 중세가 근대와 단절되어 있지 않고 또 동시에 그 나름의 고유한 합리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고 관심을 갖게 되셨다는 종범샘, 철학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던 와중 중세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하신 현숙샘. 그리고 일리치를 통해 중세와 만나게 된 일리리팀 샘들까지. 서로 다른 맥락을 가지고 지금 함께 중세 철학사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게 새삼 놀라왔습니다 ㅎㅎ
“만일 우리들이 계몽시대 이래로 친숙하여 온 그러한 종류의 철학함을 기준으로 택한다면, 기독교시대의 15세기 초에 존재한 것으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러한 사고와 행위의 조종 아래에서는 철학이 존재했다는 것을 우리가 부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온갖 반성들은 인간이 행위하고 사고하는 상황에 관한 완전히 비역사적인 견해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다.”(J.R. 와인버그, 『중세철학사』, 민음사, 9쪽)
‘중세철학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라는 질문을 가지고 세미나를 시작했습니다. 저자인 와인버그씨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이 철학을 신학의 시녀로 사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은 철학함의 한 조건이지 철학 자체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듯합니다. 사실 사고와 행위에 대한 통제와 억압이 반드시 이 시기에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고, 종교에 의해서만 이루어졌던 것도 아니지요. 다만 우리가 우리에게 익숙한 ‘철학’의 이미지(가령 ‘모든 것을 의심하라’ 같은 문장과 함께 소환되는 철학의 특정 이미지)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중세에는 철학이 존재하지 않았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될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본다는 건 참 어렵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기준으로 다른 시대의 사유를 ‘비과학적’이라거나 ‘비합리적’이라고 찍어내리기가 쉽습니다. 저도 중세철학이라고 하면 왠지 신앙의 정당화 도구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버리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내가 신앙인이 아닌 다음에야 이들의 철학을 공부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버리는 거지요. 그렇지만 이번에 아우구스티누스를 보았듯, 신앙이 반드시 깊이 있는 성찰과 대립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시대에 따라, 또 철학자에 따라 신앙과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릅니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도 중세도 고정된 통일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읽어낼 것인가 하는 데에 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신은 그의 작품 안에 그가 남겨 놓은 그림자, 흔적 및 영상으로부터 그의 이성적 피조물에 의하여 이해된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물리적 자연과 인간 양자에서 모든 것들을 생산한 삼위일체의 징후를 발견한다. 이데아 세계의 반영인 물리적 세계에 관한 플라톤적인 견해로부터 도출된 이 이론은,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창조자의 상징이라고 하는 중세적 개념의 기초들 중의 하나이다. 그것은 성서의 비유적 해석을 지지하였다. 사실 신은 자연의 책과 계시된 책을 산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 양자 안에서 상징들은 표면적으로 명백한 의미를 넘어서서 신비적 의미를 소유한다.”(J.R. 와인버그, 『중세철학사』, 민음사, 45쪽)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그에게 신이란 단순히 초월적 창조주, 인격신, 믿음과 숭배의 대상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은 그 자신 외에 다른 것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이 세계의 원리와 같은 무엇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신은 감각에 의존하지 않는 진리를 인간에게 내적으로 계시하는 존재이며, 선함 그 자체이지만 특정한 질(質)에 의해서 규정될 수 없는 존재이고, “위대하지만 양(量)이 없으며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장소를 소유하지”(43쪽) 않은 존재입니다. 신이란 말하자면 신비인데, 신의 신비로움은 그가 자신의 작품 안에 남겨 놓은 그림자, 흔적 및 영상으로부터 발견될 수 있습니다.
세계는 신이 만들어놓은 책이고, 인간에 의해 그 영적이면서도 이성적인 의미들이 해독되어야 합니다. 상상해볼 수 있을 뿐이지만, 이런 세계는 정말로 풍요로운 세계일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차 있고, 인간은 그러한 의미를 발견하고 또 거기에 담겨 있는 계시에 따라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겠죠. 이러한 관점은 플라톤의 이론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와는 다른 뉘앙스를 품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중세철학이 창조한 세계는 어떤 것일지. 본격적으로 중세 사상가들을 만나며 알아보도록 하시죠.
후기가 늦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중세철학사』를 4장까지 읽고 오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