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중세의 점점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위 디오니시우스, 에리우게나, 안셀무스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각각 5세기말 6세기 초, 9세기, 10세기의 인물들입니다. 이왕 만났으니 이들 사유의 핵심과 특징을 파악해야 할텐데 만만치가 않습니다. 잘 모르긴 해도, 세계가 어떻게 창조되었고, 인간은 어떻게 진리와 신을 인식하며, 신과 인간의 관계는 어떠하고,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의 중요한 철학적 질문에 이들이 어떤 입장을 취하는지 살펴보고, 이들의 입장이 앞선 그리고 다가오는 시대의 철학자들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을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위디오니시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정통 신학이 확립되어 있던 5세기 말 경에 활동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입니다. 신플라톤주의를 계승하고 있는 듯한데요, 초실체로부터 모든 것들이 생기는 이 과정을 초실체의 선의 과잉에 기인한다(p. 52)로 본다든가, 일자(一者)로부터 더 직접적으로 비롯되는 것들은 덜 직접적인 과정들보다 완전하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철학은 사변적 신비주의라고 일컬어지도 합니다. 신의 궁극적 실재는 알 수가 없으므로, 또는 알면 알수록 알기 힘들기 때문에 신비주의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대로 두자는 것인지 궁금합니다(이성적으로 끝까지 논증하는 안셀무스와는 분명 다른 것 같습니다만).
에리우게나는 참다운 종교와 참다운 철학을 동일시합니다(p. 55). 이 때문에 철학과 종교를 혼동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만, 신플라톤주의 노선을 따르던 그는 철학에서 존재가 생성되는 과정을 신의 창조 과정과 흡사하다는 데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신플라톤주의의 유출설처럼, 신의 피조물 또한 창조주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또, 에리우게나는 창조하는 것과 창조되는 것의 구분을 통하여 자연을 네 가지 차이에 의해 설명합니다. 이러한 설명과정에서 신이 자연과 동일시되는데, 이 점은 범신론적 측면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그의 저술이 교황에 의해서 파문되거나 이단철학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안셀무스의 시기에 접어들면서 중세 철학은 종래 철학자들의 사유를 붙들고 있었던 신플라톤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안셀무스는 신을 존재론적으로 증명하려고 했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성적으로 입증하려 한 것입니다. 안셀무스는 왜 그랬을까요? 성서와 계시를 근거로, (물론 “묻지마” 식은 아니겠지만) 믿으면 된다고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했을까요? 성서적 근거나 계시적 근거만으로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신을 믿는 사람이든 그렇지 않은 사람이든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성적 설명을 제시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요.
이런 배경 하에서 안셀무스는 『프로슬로기온』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합니다(pp. 70-71). ‘그 이상 더 큰 것이 아무것도 인식될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그 논증 과정이 71-74쪽에서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데요, 하지만 이 설명이 제게는 알듯말듯하고, 요령부득입니다. 한편, 안셀무스는 신앙이 오성에 선행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받아들였다고 합니다(p. 67). 그럼에도 안셀무스는 “믿기 위해서 안다”가 아니라 “알기 위해서 믿는다”고 했습니다. 이 점은 아우구스티누스와 차이를 보이는 부분인데, 안셀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차를 좀더 깊이 들여다보면 안셀무스의 철학적 위치가 좀더 선명하게 부각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어쩐지 글에서 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네요 ㅎㅎ 저도 위디오니시우스의 '배운 무지'가 흥미로웠어요. 어디선가 주워들었던, 무지로 환원하는 방식의 부정신학과는 조금 다른 결을 지닌 것 같아서요. 그게 무엇일지는... 차차 알아가보도록 하죠 ㅎㅎ;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꼼꼼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