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낭송이다 보니, 진도를 가늠하기가 어려워서 주 3회, 10주 과정으로 낭송 세미나를 짰었는데요.
벌써 <에세> 1권의 반을 읽은 걸로 보아 딱 맞거나 한 두 회 전에 마치게 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자신의 최애 구절들을 가지고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눠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23장에서 26장에 걸쳐 몽테뉴는 습관의 강력함과 기상천외함, 현학적 지식의 편협함, 교육의 문제까지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럼 이번 주 필사를 보시겠습니다!
23장 습관에 대해, 그리고 기존의 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에 대해
요컨대 내 생각으로는 습관이 하지 않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세상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들은 바대로 핀다로스가 습관을 세상의 여왕이요 여제라고 부른 것은 온당한 일이다.(220쪽)
옛날 크레타 사람들이 누군가를 저주할 때면 신들에게 그가 부디 나쁜 습관에 빠지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습관의 권능이 가진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습관의 명령이 합당한지 따지고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를 낚아채서 장악한다는 점이다. 사실 우리는 태어나 엄마 젖을 빠는 것과 동시에 습관의 명령을 들이마시기 시작했으니, 그리고 세상이 얼굴은 그 상태로 우리 시야에 처음 들어오기 시작했으니, 마치 우리는 그 길을 따라가는 조건으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서 옳다고 받아들이고 있고 우리 조상들이 그 씨앗을 우리 영혼에 주입한 일반적인 생각들은 그 때문에 보편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221~222쪽)
관습은 만상(萬象)의 진짜 얼굴을 우리에게서 숨겨 버리기 때문이다.(223쪽)
관습의 막심한 편견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의심의 여지 없이 확고하게 받아들여진 적지 않은 것들이 저기 따라붙는 관습의 흰 수염과 주름살 말고는 아무 근거를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가면을 벗겨 내고 사물을 다시 진실과 이성의 자리로 되돌려 놓고 나면, 자신의 판단력이 마치 완전히 뒤집는 듯 느끼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훨씬 더 확실한 상태로 돌아왔음을 느낄 것이다.(224~225쪽)
24장 같은 계획의 다양한 결과들
인간의 지혜란 허망하고 변덕스럽다. 우리의 모든 계획, 우리의 결심이나 방비들을 가로질러 항상 사태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운수이다.(240쪽)
우리 지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혜는 예리하고 명민할수록 제 안에서 허약함을 알아보고 저 자신에 대해 더욱 경계한다.(242쪽)
각 사건의 다양한 특성과 여건이 야기하는 어려움으로 인해 최선책을 간파하고 선택할 수 없는 애매하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확실한 길은, 내 생각에는 이것이다. 즉 그렇게 해야만 할 다른 이유가 없더라도 가장 정직하고 공정한 편에 투신하는 것, 어느 길이 지름길인지 확신할 수 없으니, 언제나 곧은 길로 가는 것. 내가 방금 제시한 두 가지 예에서처럼, 공격당한 사람이 용서를 베푼 것이, 달리 행했던 것보다 아름답고 너그러운 일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혹여 전자에게 일이 잘못 돌아가도, 그의 좋은 의도에 대해서는 비난할 이유가 없다. 또 반대의 행동을 취했다 한들, 운명이 정해 놓은 종말을 피할 수 있었을지는 알 수 없고, 그랬어도 그토록 현저한 선행의 영광은 잃었을 것이다.(242~243쪽)
여전히 불안하고 의심스러워 떨리는 모습으로 자신 있는 척해 봤자, 중차대한 화해를 이끌어 내는 데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순순히 자기를 맡기고 믿어 버리는 것이 남의 마음과 의도를 내 것으로 만드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어쩔 수 없는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이 그렇게 하고, 적어도 얼굴만이라도 의심을 벗어 버리고 순수하고도 분명한 신뢰를 보인다면 말이다.(246쪽)
하지만 대비책을 강구해 본들 전적으로 불안하고 불확실한 것인 만큼, 어떤 일이 닥치든 담대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고,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다는 것에서 얼마간 위로를 얻는 편이 낫다.(250쪽)
25장 현학에 관하여
나는 이 책 저 책에서 내 마음에 드는 글귀를 슬쩍 집어내곤 하는데, 그대로 간직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 내겐 따로 둘 데가 없기도 하지만, 이 책에 옮겨 놓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글귀들은 여기 있어도 원래 자리에 있던 때처럼 내 글이 아니긴 마찬가지이다. 내 생각에 우리는 오직 지금 알고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지, 옛날 한때 알았던 것, 혹은 미래에 알게 될 것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257쪽)
디오니시오스는 오디세우스의 고난에 대해 연구하려고 머리를 싸매면서도 정작 자기 불행은 모르는 문법학자들이나, 피리 가락은 잘 조율하면서 자신들의 품행은 잘 조절할 줄 모르는 음악가들, 그리고 정의에 대해 말하는 법을 공부할 뿐 그것을 실천하는 법은 배우지 못하는 웅변가들을 조롱했다.(260쪽)
충만한 영혼으로 돌아왔어야 할 텐데, 부어오른 영혼으로 돌아온 것이다. 영혼을 살찌우는 대신 바람만 잔뜩 넣어 온 셈이다.(260쪽)
못된 교육에도 불구하고 이 천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우리를 망치지 않는 것으로 충분치 않다. 교육은 우리를 더 낫게 만들어야 한다.(263쪽)
26장 아이들의 교육에 관하여
그거야 어떻든, 그리고 이 글들이 아무리 시답잖더라도, 나는 감출 생각이 없습니다. 대머리에 반백인 제 초상화를 숨길 마음이 없는 것과 매한가지입니다. 화가는 완벽한 얼굴이 아니라 바로 내 얼굴을 그려 넣은 것이니까요. 왜냐하면 여기 쓰는 것들은 내 기분이요, 내 견해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글들을 내가 믿는 것들로서 내놓는 것이지, 믿어야 할 것들로서 내놓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표는 오직 나 자신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것을 배우면, 내일의 그 ‘나’는 아마도 다른 나가 되어 있을 겁니다. 남을 가르치기엔 너무도 배운 바가 없다고 느끼는 만큼, 내겐 나를 믿게 할 권위도 없고 또 그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276쪽)
마치 농사에서 씨앗을 심기 전과 심을 때의 일은 일정하고 쉽지만, 심은 것이 생명을 갖게 된 뒤에는 그것을 키우는 데 천차만별의 방식과 어려움이 있는 것과 꼭 같이, 사람도 심는 데는 별 힘이 들지 않지만 태어난 뒤에 기르고 가르치는 데는, 노고와 걱정으로 가득한 갖가지 심려를 짊어지게 됩니다.(277쪽)
<에세> 읽기만 하고 번개같이 튀어서 출근하는 데요. 읽을 시간이 있을까 생각하다 민호샘에 낚여서 시작했는데 재미있습니다. 이렇게 필사하신 샘들의 글을 정리해 준 걸 다시 보니 허겁지겁 읽었던 글들에 저런 빛나는 문장이 있었나 싶기도 하지만 반갑네요. 주말에 또 과제를 해야하는 난관이 있지만 그래도 금욜 저녁이라 여유 부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