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차에서는 『데리다-니체 니체-데리다』의 제2장을 함께 읽었습니다. 먼저 우리는 각자 해온 과제를 읽었는데, 읽고 난후 샘들에게 흘러나왔던 무거운 한숨을 어찌해야 할까요?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 샘들이 지난주에 만났던 ‘하이데거’와 마찬가지도 ‘데리다’도 처음 접해서그런지 겁을 좀 먹긴 한 것 같아요. 게다가 이번 장에 등장한 ‘기호, 기표와 기의, 현전, 차연(차이와 지연), 흔적, 해체, 구조’ 등의 개념들이 등장하는데, 좀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집단지성을 발휘하면서 조금씩 퍼즐을 맞춰가기 시작했습니다.
“데리다는 ‘텍스트, 기호, 기표와 기의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 지점이 어떻게 니체와 연결될까요? ‘차연’ 때문일까요? 라는 영아 쌤의 질문에서 출발해봅니다.
데리다는 니체의 글쓰기가 ‘차연’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데리다는 〈그라마톨리지〉(1967)에서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에 대한 비판을 시작합니다. 1장에서 하이데거를 읽었는데, 하이데거는 니체 자신이 직접 쓴 텍스트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힘에의 의지’라는 제목으로 (누이가) 편집된 책을 일차적 해석 대상으로 삼습니다. 니체의 ‘힘에의 의지’를 영원회귀, 위버멘쉬, 니힐리즘과 함께 연결시키고 있는데요. 이는 서구 형이상학과 존재와 존재의 차이에 대해 니체의 고유한 사상으로 해석하려는 의도였죠. 데리다의 관점에서는 이는 ”니체가 자신의 텍스트에서 “해석, 관점, 가치화, 차이의 개념을 심원하게 만들었다”는 측면을 거의 무시“(99)한 처사였습니다. 니체는 ”형이상학 안에 머물렀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로고스나 진리의 연관 개념 또는 언제나 존재하는 최초의 기의에 대한 종속적 내지 파생적 성격으로부터 기표를 해방시키는 일에 결정적으로 기여“ (100)했한 철학자니까요.
○ 기호, 기표, 기의
글쓰기에 관해 데리다의 이론은 니체 해석에 대한 결정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기호이론은 ‘목소리’와 ‘문자’ 사이의 구분에 근거하고 있는데, ”목소리(말해진 말)와 글(씌여진 텍스트)“는 데리다 전체 사유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데리다가 현대적 기호 이론을 말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은 ‘소쉬르적 종류의 기호학’입니다. 이때 언어는 기호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호는 ‘기표’와 ‘기의’ 두 가지 요소로 구성됩니다. 기표는 무언가를 의미하는 형상, 즉 시각적이고 청각적인 이미지로 목소리나 문자, 어떤 대상을 지시하는 것 등이 해당됩니다. 기의는 그 형상이 의미하는 내용, 기표가 지시하는 대상에 속하는 것이 되겠지요.
고전적 언어관에서는 기호들은 이분법적인 형이상학적 도식에 따라 기표를 기호와 기의로 나누고 두 측면이 서로 결합된 통일체로 표상됩니다. 음성 언어는 의미나 사유와 결합된 것으로 보이기에 우월한 기표의 지위를 얻습니다. 저는 이런 고전적 언어관에서 요즘 크크랩에서 읽고 있는 랑시에르의 『프롤레타리아의 밤』의 분할선이 떠올랐습니다. 기호를 기표와 기의로 나누고 계속 분할선으로 세계를 보게되는 거죠. 랑시에르는 우리에게 분할선을 흐리게 하는 실험을 하게 하는데, 데리다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
고전적 기호 이론에서는 ”언제나 기표와 기의가 구별되고 더욱이 이 두 가지는 엄격한 위계질서 속에 있다.(93)
하이데거 역시 로고스 중심주의와 음성 중심주의라는 현전의 사상에 매달렸으며 또 기의와 기표 사이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고수했는가라는 질문이다.(94)
데리다는 이러한 고전적 전통의 기호학에 대해 해체를 시작합니다. 기호학에서 “기의는 기표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기표와 기의는 동일한 사안의 두 측면”이며 “양면을 지닌 통일성”(105)을 갖습니다. 이 기호학적 기능 방식이 차이적이고 형식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차이적 글쓰기”라는 데리다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문자에 선행하는 그 어떤 언어 기호도 없다.”(96) 이러한 테제는 많은 혼란과 오해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니체도 1873년 니체(도덕 외적 의미에서의 진리와 거짓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고전적 기호 이론에 대한 불신 표명했는데요. 데리다의 진술은 이런 니체 입장과 연결이 됩니다. 데리다 관점에서는 기호에서 기표는 기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습니다. 그들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습니다. 소쉬르의 사유에서는 기호가 하나의 단일체로 여겨지지만, 데리다의 사유에서는 단어 혹은 생각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기표들과 기의는 계속해서 깨져서 분리되고 새로운 결합들로 다시 조합됩니다. 이 기호학적 기능 방식이 차이적이고 형식적인 성격을 갖고 있으며 데리다의 ”차이적 글쓰기“로 나타납니다.
기호는 끊임없는 기표들의 작용입니다. “하나의 기호란 다른 기호와 구별되는 무엇이며 이런관점에서 보면 언어는 동일성의 체계가 아니라 차이의 체계”(106)입니다. 언어란 차이의 산물인 기표가 만드는 차이들의 유희입니다. 하지만 데리다에 따르면 이런 구상은 제대로 실현되지 못했고, 다시 형이상학으로 후퇴하고 맙니다. 소쉬르의 사유에서는 기호가 하나의 단일체로 여겨지지만 데리다의 시각에서는 단어와 사물, 혹은 생각은 결코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그는 기호의 차이를 구조로 봅니다. 기표들과 기의는 계속해서 깨져서 분리되고, 새로운 결합들로 다시 조합되죠. 기표와 기의 사이에는 어떤 고정된 구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기의는 그것이 얽혀있는 기표들의 다양한 사슬에 의해 변하게 됩니다.
○ 차연(differance)
데리다에 따르면 텍스트는 기호들의 연쇄이며, 그 안에서는 “철저한 흔적의 차이들과 흔적의 흔적들만” 존재합니다. 기호학적으로 말하면 ‘그리마’는 가장 일반적인 기호입니다. ‘그라마’는 “더 이상 현전/부재의 대립에 의해 사유되지 않고”(112) 완전히 “차이들의 놀이에서” 존재하는 “구조 또는 운동”(112)으로 “차연”이라 불리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고 합니다.
데리다는 해체의 전략으로 ‘차연’을 내세웁니다. 차연(differance)은 데리다의 초기 대표작 『그라마톨로지』(1968)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면서 등장합니다. 데리다는 "텍스트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선언하면서, 플라톤 이후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정신, 음성중심 서양 형이상학(로고스 중심주의) 해체를 주장하는데요. 현전에 대한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이를 해체하려고 하며 해체에서 주요한 개념은 differance(차연)입니다.
우리는 차연이라는 개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으나 명료하게 이해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차연은 ‘차이’와 ‘지연’의 합성어인데 데리다가 만든 신조어입니다. 데리다는 니체의 글쓰기 형식이 차연에 의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같이 니체의 텍스트는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기에 여러 해석도 가능하고 기호로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데리다가 차연의 사유로 제시하는 것은 “니체에게서 나타나는 힘의 차연, 하이데거가 주장하는 존재적-존재론적 차이”(115)입니다. “차연은 단어도 아니고 개념도 아니고, 드러날 수도 없고 현전자의 현전의 진리에서 현재하는 존재자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116)입니다. 차연에 상응하는 것은 “증후학”이며, 해석은 사물의 묘사에서 의미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가치에 지배되지 않는 암호의 체계에서 나오는 해석입니다.
우리는 이 차연이 이해하기 힘들면서도 니체의 ‘힘에의 의지’와 비슷한 개념이 아닐까?라고 추측해보았습니다. 니체의 글쓰기 방식이 ‘차연’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현전’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했는데요. ‘드러나는 것’으로서의 현전은 근원, 중심과 같이 나오는데, 하이데거의 존재와 같은 의미일까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미나를 마무리 하면서도 ‘현전’ ‘차연’의 의미를 아리송하게 이해하고 마치고 말았네요. 하지만 세미나의 힘인지 끝나고 나니 답답했던 개념들이 조금씩 이해되고 다가오네요. 함께 공부한 샘들의 덕분으로.. 이번 세미나는 방학기간임에도 세미나를 위해 남원에서 올라온 경희샘, 청주에서 올라오는 경원샘이랑 함께해서 아주 소중했네요. 3장은 좀더 잘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후기 기대해주세요.
- 7주차(4.15, 월) 공지입니다.
- 3장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메모해옵니다.
- 3장 발제는 경희샘, 경원샘, 간식은 수니샘입니다.
승연샘의 후기를 보니 엄청 반갑네요^^ 첫시간 1장의 하이데거의 "존재란 무엇인가?"부터 2장에 데리다의 "차연'의 개념은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니체, 들뢰즈를 읽었지만, 이런 느낌은 아니었어요. 차연, 현전, 구조, 기표, 기의 이런 개념들로 혼란스러웠지만, 데리다는 확실히 하이데거 사유와는 다른 지점에 있었죠. 하이데거는 존재의 역사에 대한 물음에서 시작이라면, 데리다는 우리가 늘상 사용하고 있는 기호(소리, 이미지, 문자, 글 등)가 갖는 작용의 문제로 들어가, 니체가 어떻게 서양의 형이상학적인 구조를 해체했는지를 보여주는데요. 저는 그것이 바로 니체의 글쓰기, 기호와 기호의 배치에서 오는 효과(은유)에 있다고 보았어요. 이런 효과를 데리다는 "차연"의개념으로 설명하는 듯했어요. "차연"은 단어도 개념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차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했지만... 이런 기호와기호의 관계성에서 일어나는 효과들로 말하는거 아닐까요!! 학기마다 에세이를 보면, 각자의 특색이 드러나는 글쓰기임을 알 수 있는데, 이런 글속에 이미 "차연"이 있는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에세이마다 글이 달라지는 것도 "차연"으로 드러나는거 아닐까요^^
첫 시간의 '존재와 존재자의 개념'을, 두번째 시간에 '차연'의 개념을 이해하려고 우린 엄청 노력했잖아요. 책을 혼자 읽을 때는 정말 감이 안잡히다가도 함께 세미나를 하고 그 내용들을 복기하면서 또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면 '이런 의미인가?'라고 어렴픗하게 떠올려지는게 있더라구요. 우리가 지난시간에 '그래서 차연은 뭘까요??'라고 수없이 질문을 했는데 수니샘 말처럼 니체의 글쓰기, 기호와 기호의 배치에서 오는 은유에 있다고 보는 데리다의 관점으로 이해해봅니다. 이제 3장에는 '니체'를 읽게 되는데 우리를 어떤 혼돈에 데려다 놓을지 걱정도 되지만 기대도 되네요. 우리 수니 반장님~ 월요일날 뵈어요.
원 모어 니체팀, 원 모어 화이팅!!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하는 게 공부지요.^^ 뭐, 제가 굳이 필요해 보이지 않지만, 또 인정이 그러하지 아니하니^^ 끝까지 다 읽으시고 같이 만나서 얘기 나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