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Seminar Board
《에티카》를 중심으로 달려왔던 스피노자 세미나가 이렇게 마무리됐네요. 규문에서 나름 고대 중국의 철학을 영역으로 삼아 공부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어느새 스피노자의 사유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공자나 맹자, 장자의 말씀도 떠오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건을 바라보고 분석하는 태도는 스피노자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역량, 예속, 수동과 능동 등등 스피노자의 사유로 문제나 사유에 접속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최소한 철학하는 삶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스피노자를 공부한 덕이었습니다. 후... 신파는 여기까지 하고, 간단하게 이후 일정을 공지하고 에세이 후기를 정리하겠습니다.
에세이도 끝났겠다! 다시 저희는 스피노자의 사유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세계를 조명하는 작업을 시작해야죠! 새롭게 시작하는 저희의 작업은 윤순쌤을 중심으로 진행합니다. 일단 1월 5일 수요일 오후 2시 줌에서 각자가 활용할 개념 두 가지를 정해서 모입니다. 그럼 짧은 방학 동안 충전하시고, 1월 5일에 봬요~!
이번 에세이를 진행하면서 느낀 건, 우리는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같은 세계에서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에세이 발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를 다양한 것들과의 관계에서 다양하게 조망하는 일종의 적합한 관념으로 이행하기 위한 여러 실천 중 하나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전제되는 조건은 다른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문제를 상세하게 제시할 수 있는 능력과 철학적으로 그 문제들을 다르게 제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일례로, 똑같이 유튜브를 하더라도 저는 무분별한 혐오가 난무하는 영상과 댓글을 보는 반면, 다른 선생님들은 그런 영상과 댓글은 전혀 보지 못했다고 하셨죠. 호기롭게 이 문제를 풀고 싶었지만 실패했습니다... 에세이를 몇 번이나 발표해왔지만, 이 능력들은 여전히 요원합니다. ㅠㅠ 이번 에세이 발표에서는 어떻게 해야 이런 능력들을 개발해야 하는지를 많이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문제를 쓰기 위한 노력
이번에 저희가 발표하는 에세이 테마는 ‘스피노자의 눈으로 본 우리 시대’였습니다. 지난번에 쓴 ‘내가 만난 스피노자’와 달리 사회적 문제를 잡고 그것을 스피노자적 관점으로 풀어보는 것이었죠. 하지만 문제를 풀기 위한 최소 조건으로 ‘자기 문제’라 항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는 않았습니다. ‘자기 문제’를 쓰는 것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지만, 자신의 문제가 사회 여기저기서 반복되는 것까지 함께 포함하는 작업입니다. 지난번 에세이 발표에서 채운쌤께서 하신 말씀이 다시 떠올랐는데요. ‘자기 얘기가 담긴 글’이란 구구절절 이렇고저렇고를 풀어낸 글이 아니라 그가 어떤 시대적 조건 속에서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가는지 드러나는 글이라고 하셨었죠.
그런데 자기 문제를 쓰려면 평소부터 다양한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는 노력이 필요하겠더라고요. 영화로도 극화된 《노매드랜드(Nomadland)》라는 작품에 따르면, 집 없이 떠도는 사람들에게도 이미 사회·계급적 분할선이 작동합니다.(저는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제 에세이가 끝났으니 마구마구 봐야겠어요! ㅋ) 떠도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다 백인입니다. 유색 인종은 찾아볼 수가 없죠. 유색 인종이 집 없이 떠돌면 ‘치안 유지’라는 명목으로 경찰에게 잡혀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비슷한 예로, 국립 중앙박물관에서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다고 할 수 있는 청소 노동자들은 벤치에조차 앉아서 쉴 수 없습니다. ‘미관을 해치기 때문’이죠. 아마 우리는 생각지도 못한 많은 배제가 우리 근처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겠죠.
이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면 ‘깨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당장 내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서 별다른 문제가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죠. 다만 철학하는 삶을 결심한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부하다 보면 아무래도 개념들에 익숙해지고, 그런 개념들을 입에 올리다 보면 현실의 문제들이 별거 아닌 것처럼 보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제가 쓴 에세이를 돌이켜 보니, 개념이나 이런저런 복잡한 논의들만 가져와서 뭐라뭐라 떠들기만 했더라고요.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물고 늘어지는 가운데 그런 논의들이 의미가 있는데 말이죠.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걸 매일 되뇌어야겠습니다.
지복(至福), 역량의 실험
스피노자에 따르면, 이해와 실천 사이에는 조금의 간극도 없습니다. 인식이 변하는 것과 다르게 실천하는 것은 동시적입니다. 자신을 예속했었던 정념을 이해하는 순간, 그것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정념이 발생합니다. 물론 이때 정념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다양한 것들과의 연관 관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다각화의 작업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그 자체로 기존의 정념을 해체하는 작업 속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이반 일리치에 따르면, 근대는 중성적 성(sex)과 나이를 발명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쓸모 있는 주체를 만들기 위해 남성과 여성, 모든 나이의 고유함이 배제된 중립적 척도가 탄생했다는 것이죠. 지금도 저희는 스스로를 경제학적 쓸모에 입각해서 평가합니다. 젊음이 못지않은 패기와 체력을 자랑하는 노년, 남성에 뒤지지 않는 여성 등등의 수식된 말들은 우리가 얼마나 경제적 쓸모에 입각해서 스스로를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존재를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는 슬픔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하면, 존재를 다르게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얼마든지 슬픔에서 기쁨으로 이행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저희는 사회의 문제들을 다루는 것이 테마다 보니, 공공임대주택, 부동산 투기, 가짜 뉴스, 노년 등등 여러 문제들이 얘기됐는데요. 돈이 없다고 해서, 나이가 들고 몸에 힘이 떨어진다고 해서, 사회적 쓸모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해서 필연적으로 슬프게 살아가야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자리들에서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우리는 기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스피노자가 《지성교정론》에서 철학하는 삶을 결단하기 위해 ‘인식’에 몰두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습니다. 공동체의 규율이든 누군가의 조언이든 다르게 인식하기 위한 노력이 없으면 역량의 증대는 시도될 수 없습니다.
저희는 너무나도 많은 제도적·사회적·경제적 문제들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에세이를 나누면서 평소 제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문제 혹은 가볍게 인지하고 있었지만 더 심각하게 실감한 문제들도 있었습니다. 아직 제가 제기한 문제를 다르게 이해하는 데 이르지 못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둔 것 같습니다. 이제 다음 작업에서는 다르게 이해하는 데까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스피노자 팀에서 공지와 후기를 쓸 일은 없겠네요. 에세이를 마치고 마지막 후기를 쓰고 있는데, 뭔가 허하네요. 3년간 함께 해온 공식 일정이 일단락됐다는 걸 이제 실감하는 것 같아요. 빈 만큼 뭔가를 새롭게 또 채워야겠죠. 선생님들과 공부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정말 많은 걸 받았습니다. 앞으로 공부하면서 계속 갚아가겠습니다.
모두가 지복에 이르는 삶을 기원하면서 《에티카》 5부 정리42의 주석에서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후기를 마무리할게요. 내년에도 진리의 기쁨을 많이 맛보시길 바랍니다!
“이제 내가 인도해온 이 길이 아주 어려운 길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길은 발견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분명 그처럼 드물게 발견된 이 길은 어려운 길일 수밖에 없다. 실로 만약 구원이 수중에 있고 커다란 노력 없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거의 모든 사람이 이를 간과할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고귀한 모든 것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드물다.”
규창샘의 마지막 후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드네요. 공부를 통해 성장해 나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실히 보여준 울 반장님~ 수고 많았습니다.
그동안 함께 공부했었던 모든 샘들 고맙습니다. 고귀하기에 어렵고 드문, 하여 끝나지 않을 진리의 여정에 함께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어렵고도 드문 이 고귀한 길..걸어오신 스피노자 팀, 규창샘 앞으로도 잘 걸어가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