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이슬람 세계사1』의 6장~12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방학을 즐기다 뒤늦게 후기를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ㅎㅎ. 벌써 내일, 아니 오늘 아침이면 그 뒤의 내용들을 나누겠네요..! 책의 내용은 더 넓고 자세하지만 세미나 당시에 나누었던 부분을 중심으로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칼리프 중심의 이슬람 문명은 내재적인 결함을 안고 있었습니다. 코란은 칼리프와 무관하게 모든 신자에게 열려 있었기 때문에 칼리프가 종교적 권위를 가지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 아래 도시 안에 자치적인 종교 엘리트들이 등장했고, 다양한 계층, 인종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의 관점으로 묶이지 않았습니다. 이슬람 문화는 지향하는 바가 다른 이 모든 관점들이 결합되어 나타났으며, 그 과정에는 격렬한 투쟁이 있었습니다. 신학과 법학의 대립, 궁정과 도시의 대립 등이 경전의 해석과 생활 양식을 둘러싸고 벌어졌습니다.
아바스 제국의 몰락
분열은 종파의 분리로 드러납니다. 이슬람의 종파는 크게 순니파, 시아파, 수피즘으로 나뉘어지는데요. 각 종파가 시아파의 여러 분파, 순니 법학파와 신학파, 수피형제단과 같은 이슬람 분파 공동체로 구체화되는 데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바스 제국의 붕괴였습니다. 제국이 몰락하게 된 데에는 노에 병사와 익타라는 두가지 제도가 결정적이었습니다. 노예 병사로 지방 파벌의 세력이 강해졌고, 군인이나 관리들에게 토지를 나눠주고 관리하게 하는 익타 제도가 도입이 되었고, 그 결과 대토지를 소유한 익타 수급자들이 자치국이 되어 이탈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결국 제국이 만들어낸 군사·행정·문화 분야의 갖가지 정책들이 오히려 제국의 몰락을 재촉했고, 마침내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중동의 국가와 사회가 형성되었습니다.
무슬림 공동체
아바스 제국의 붕괴 이후, 지역과 종교적 계파에 따라 다양한 공동체들이 등장했습니다. 그 안에서도 다시 여러 분파들이 생겨나기도 하고, 서로의 관행들이 겹쳐지기도 했다는 점에서 그 구분이 어렵기도 했는데요. 순니파는 전통적인 종파로 주로 칼리프를 중심으로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샤리아”와 같은 이슬람 법을 제정함으로써 믿음을 이성적으로 이해하려고 한 종파라고 이해했는데요. 반면, 수피즘에서는 즉각적, 개인적으로 하느님의 실체를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절제된 생활을 통해 사고와 감정에 몰입함으로써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고자 했으며, 이 체험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이해했지요.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정통성을 중시하는 종파였는데요. 시아파는 순니파 칼리프의 정통성을 부정했습니다. 종교 지도자 이맘이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통치와 종교를 분리하지 않은 것이지요. 순니파와 시아파의 분리에 관해서 인간의 자율성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가 그 둘을 가르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순니파는 시아파에 비해 인간의 자율성을 조금 더 인정하는 쪽에 가깝기 때문에 코란과 하디스와 같은 하느님의 말씀과는 별개로 샤리아라는 법을 제정할 수 있지 않았나 하고요. 그리고 종파들의 분포는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있는데, 현재에도 지역적으로 그 구분이 가능하지 않을까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분쟁의 씨앗, 코란의 해석
인간이 신이나 진리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분리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나누기도 했는데요. 무슬림들은 어떻게든 경건하게 신의 뜻을 따르려고 하는데, 각각의 정신세계는 판이했기 때문에, 지역적, 민족적으로 다양하게 뿌리를 뻗어갈 수 밖에 없었는데요. 넓게 분포된 다양한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놓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분열과 분쟁을 낳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고 하시기도 했고요. 분쟁의 씨앗은 어디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흘러오고 있을까요? 그건 아마도 코란을 중요시하는 데에서 오는 것 아닐까요? 코란의 해석은 다양할 수 밖에 없는데, 코란 자체를 신성시하고 중요시하다보니 거기서 당연히 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나피·말리크·샤피이 3개 학파는 ‘이즈티하드의 문’ 즉 독립적인 추론을 봉쇄했고, 후대의 법학자들이 율법에 대해 개인적인 또는 독자적인 해석을 제시해서는 안된다는 원칙에 합의”(286)하기도 했습니다. 신도들은 종파에 관계없이 함께 모여 예배를 보았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치열한 분쟁과 분열은 소수의 종교 지도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것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했습니다.
대중 이슬람 사회
앞선 추측은 다음 구절에서 구체화되었는데요. “소도시와 마을은 이웃, 종파 또는 직업에 의해 규정되는 무수히 많은 집단으로 이루어진 분절적인 사회였지만, 이들 집단이나 사회가 경제적 계급에 의해 규정되는 일은 없었다. (…) 도시나 마을은 개인의 의식 속에서는 중요했을지 몰라도 어떤 단체를 결성하지도, 지역에 기반을 둔 행정기구를 조직하지도, 정치적 시민권의 개념을 만들어내지도 못했다.”(268-9) 원자처럼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도, 분절적인 사회였음에도, 어떤 일체감을 가졌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신 아래 모두가 같은 형제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코란에 근거해 살면 되는 것이지 또 다른 공동체로서의 법과 제도를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지금의 국가 제도, 지역 구분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개인의 윤리
신 아래서 인간은 무력한 존재가 되는 이슬람의 독특한 사상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유일신 종교 중에서도 이슬람교가 신의 절대성을 제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듯 합니다. 절대적인 신과 무력한 인간. 이것이 이슬람 사유에서는 행위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리인 듯합니다. “시신이 장의사의 손에 맡겨져 있듯이 인간이 하느님의 손에 맡겨진 상태”(299)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라마단에서 금식은 개인의 금식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금욕을 행하기 때문에, 분쟁이나 다툼이 있더라도 그 시기에 만큼은 중단된다고 하는데요. 그만큼 강력한 신앙이기 때문에 하느님을 믿는 것은 총체적인 삶의 방식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이슬람과 무슬림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었는데, 구체적인 면면들을 알게 되니 무슬림을 추상화하는 시선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천일야화』가 이전보다 더 입체적으로 읽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역시 문학은 그 당시의 역사와 철학과 함께 읽을 때 더 풍성하게 읽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즈티하드... 오랜만에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하네요 ㅎㅎ 저희 공부하는 사람들은 천일야화와 함께 이슬람을 무궁무진하게 이즈티하드 해야만 하겠습니다 ㅎㅎ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슬람과 무슬림의 이미지가 달라지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인 면에서 어떤 식의 변화가 있었는지 훑어주고 있는 점도 많은 도움이 되고요. 이슬람 제국들이 몰락하면서 근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슬람이 어떤 변화를 겪어 오늘의 모습이 되었는지 점점 더 궁금해집니다. 계속 따라가봐야죠~
해민샘이 말하는 이슬람의 내재적 결함이란 말에 머물게 되네요. 단일한 실체의 세계를 보여주는 종교와 달리 이슬람이 확장하고 형성되는 과정을 보다보면 비균질적이고 역동적이며 혼란한. 그래서 역사성을 느끼게 되는데요. 이런 형성되는 것으로 작동하는 종교성과도 관련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