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차(3/18) 공지
내가 지금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이런저런 생각이 많던 차에, 수업을 시작하며 선생님은 ‘사후 세계가 있다고 믿느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저승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있다고 믿는 것이 생각거리가 많아 재미있다는 깜찍한 대답과, 현실 세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에 저승이 있다고 믿는다는 대답이 이어졌습니다. 제 차례가 왔을 때, 전 먼저 웃음이 났어요, 계속 질문해야 하는 걸 회피하고 있던 저의 민망함 같은 것이었죠. 그리고 저도 모르게 솔직해지고 말았습니다. 배운 것에 따라선 사후 세계가 있다고 생각하나, 나에게로 오면 있다는 걸 믿지 않는다는 참, 말 같지 않은 대답이었죠. 말은 머뭇거렸고, 시선은 어디둘지 몰라 방황하며 부끄러움이 확 몰려왔습니다. 순간 공부하는 그 공간이 뱅뱅 도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난 뭘하고 있는 건가... 나는 나에게 무엇을 질문하고 있는가, 어떤 것을 배워 나를 향해 질문해 보는가, 생각이 참 많은 나날입니다.
<연옥의 탄생>과 <신곡>의 연옥편을 함께 읽고 있는 요즘입니다. 지옥편을 읽으면서는 ‘죄’란 무엇인가를 계속 질문했다면, 연옥은 죄에 대한 정화를 통해 계속 이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죠.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 자신을 확장해 공통감을 형성하는 과정 등 아는 것을 총동원해 연옥이 우리에게 윤리적으로 생각해볼 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얘기들을 나누었지요. 아울러 ‘게으름’을 죄로 본다는 것이 특이하다는 것도 말이죠. 사유의 나태함이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채운샘께서 단테의 영혼론을 설명하며 이 부분을 정확히 짚어주셨어요.
단테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영혼론에 입각해 존재하는 모든 것에 영혼을 부여합니다. 인간은 식물혼 동물혼을 거쳐 인간혼으로 완성된다는 것이었는데요, 앞의 영혼들을 극복하면서 “기억, 지성, 의지”를 가짐으로써 인간이 인간이게 되는 영혼으로 거듭납니다. 그래서 인간은 능동적으로 이 지성을 발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게 단테의 생각이었어요. 지성을 발휘하지 않거나 게으르게 하는 것은 그러므로 곧 죄가 되는 것이었죠. 단테에게 죄는 “사유의 게으름”이 맞았습니다. 자신이 놓인 지평에 대해 계속 질문하는 존재로 신을 표현해야 하는 것이 인간입니다. 연옥이 천국으로 갈 수 있는 대기소가 되는 이유는 바로 “회개와 참회”하기 때문이었어요. 이것을 단테는 인간의 ‘자유의지’라고 보았고 지성을 발휘되는 모습으로 본 거지요. 아우어바흐도 ‘과도하거나 부족한 것이 죄악’이라고 해설을 합니다. 지옥이 절대적 형벌의 공간이 되는 것은 자유의지를 망각한 존재들이기 때문인데, 그럼 어떻게 해도 구원할 수가 없다는 겁니다. 참 무서운 말입니다. 지옥과 연옥은 의외로 죄가 비슷합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지옥에서는 죄의 항목에 들지 않았어요. 어떠한 미동도 없는 동일성에 갇힌 존재, 열정도 냉정도 없는 존재는 구제불능이라는 말이죠. 이런 존재들이 있는 곳이 ‘림보’가 아니겠냐고 샘은 말씀하셨는데, 지옥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며 그들은 심지어 육체적 고통도 겪지 않고 있습니다. 정신의 고통만을 벌로 받는다고 했는데, 그 고통이 무엇일지 답을 얻지 못하고 있었어요. 근데 번뇌가 번뇌인지조차 모르는 사람, 왜 기쁜지 왜 슬픈지 알지 못하는 존재, 자신의 존재 조건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는 그런 존재가 있는 곳이 림보이고, 그 자체가 림보인거죠. 무감함이 정신적 벌이었다니요....
단테가 자신의 조건을 사유하는 속에서 길어낸 질문들이 그리고 그것을 모색하는 과정이, 다른 존재에게 말을 던지고 삶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나를 뚫고 훅 들어온 이 질문들에 아직은 휘청대지만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모색하라고 내몰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습니다.
단테가 던지는 질문들을 붙들고 다음 시간엔 에세이 주제를 잡아오시면 좋겠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궁금한지, 자신에게 질문해 보는 한 주이길 바랍니다.
* 다음 시간 공지입니다 *
- <신곡> 천국편 18곡까지 읽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 질문이 담아 문장을 필사해 숙제방에 올립니다.
- 아우어바흐의 <단테> 끝까지 읽어옵니다.
- 후기는 난희샘, 간식 은옥샘
지옥의 꼭대기에 있는 '림보'라는 공간도, 연옥의 꼭대기에 있는 '지상 낙원'이라는 공간도, 오늘 역사 세미나에서 언급되었던 '애매한' 공간이 아닌가 싶어요. 육체적 고통을 겪고 있지 않은 림보의 영혼들은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고, 지상 낙원은 낙원인데 천국이 아닌 연옥에 붙어 있고... 우리의 적극적인 해석을 필요로 하는 공간.^^
샘~잘 읽었습니다.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군요 ㅎㅎ
평상시 있는대로 바쁜 척하면서 정작 핵심은 피해 빙빙 돌고 있는 ᆢ림보 인생이 딱 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짜증나게 하는 물것들한테 끊임없이 물어뜯기는 벌을 받는다는 게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ᆢ
제 복력으로 천국은 제껴야할 것 같고
현실적 목표는 연옥 입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