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에는 <연옥의 탄생> 7장과 8장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두 장에서는 12세기에서 13세기 기독교의 저승 체계에 일어난 변화들과 그 배경을 살펴봅니다. 저자인 자크 르 고프는 12세기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로서 “천국-지옥(또는 낙원-지옥)이라는 이원 체계를 천국-연옥-지옥이라는 3대 체계로 바꾼”(436쪽) 점을 듭니다. 이러한 변화는 물론 당시 사회의 많은 변화들이 반영된 것이기도 하지요. 그러한 변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민중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을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번 시간에 이야기를 나눈 ‘정의’ 개념도 그렇습니다. 문학 세미나에서도 이야기를 나눴지만, 사람들이 저승 세계를, 특히 지옥이나 연옥을 만들어내게 된 데에는 지상에서의 불의나 불평등을 바로잡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을 겁니다. 자크 르 고프 역시 저승 세계가 출현하게 된 것이 구원에 대한 열망보다는 정의의 필요에서였을 거라고 추측합니다. 그는 12세기를 ‘정의의 세기’라고 부르는데, 그만큼 정의의 가치가 중요해졌을 뿐만 아니라, 사법 체계의 변화와 더불어 교회에서도 교회법(캐논)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법이 만들어진 시기였지요.
그러면서 죄에 있어서도 ‘의도’의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12세기와 13세기 초에는 죄를 ‘무지’에 결부시키고, ‘의지적인 죄’와 ‘무지에 의한 죄’의 근본적 차이를 강조합니다. 죄인의 행동에서 의도를 찾으면서 죄라는 개념뿐 아니라 참회 예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이때부터 ‘사면 가능한 죄’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적어도 한 세기 전부터 기독교를 고해 쪽으로 밀고 가던 운동은 내면화되고 일반화되고 심화”(421쪽)됩니다. 그때까지는 성직자들에게만 한정되어 있던 내성(內省)의 관행이 속인들에게까지 확장되면서 모든 사람에게 양심의 문제가 중요해집니다.
또 하나 재미있었던 지점은, 연옥을 탄생시킨 사회적 변화 중 하나가 ‘세속적인 것에 대한 경멸의 약화’였다는 점입니다. 이런 변화는 지상적 가치들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지고, 그것들을 두고 떠나야 하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더욱 크게 키웠지요.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연옥은 새로운 희망이자 위안으로 부상하고, 지상의 삶이 연옥이라는 저승으로 연장됩니다. 그러면서 산 자와 죽은 자 간에 새로운 연대성이 생겨나는데, 자크 르 고프는 이러한 연대성이 가족적, 단체적, 동료적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었음에도 사실상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것이었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 유대는 개인적 죽음과 그 뒤에 오는 심판에 초첨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연옥의 탄생이 '개인'의 탄생을 견인했다는 점에서 연옥은 근대의 씨앗이기도 하네요.
그 외에도 수(數)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태도들이 생겨난 점, '중간'이지만 지옥에 가까운 중간이었던 연옥이 점차 “선에로, 위쪽으로, 하늘로, 하느님께로 중심이 옮겨진 중간”(500쪽)으로 변모해간 점 등에 관해서도 짚어보았습니다.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 이성과 계시, 이해와 믿음의 문제가 이 시대에 어떻게 분리되고 통합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뒤이어 읽은 <신곡> 천국편에서도 그와 관련된 언급들을 찾아볼 수 있어서 어제 문학 세미나에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나뉘면서도 나뉘지 않는 듯하고,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드러나거나 완전해질 수 없는 이 둘의 관계에 대해 계속 생각해보게 되네요.
다음 시간에는 <연옥의 탄생> 9장과 10장을 마저 읽고 토론한 후, 이번 시간과 마찬가지로 에세이 주제 관련 토론도 이어갑니다. 발제는 9장 해민샘, 10장 경희샘.
금요일에 만나요!
세계가 측정가능한 것으로 변모해가는 미미한 태동이 이번 장에서 감지되긴 했는데요. 수량화되는 과정과 관련된 심상을 연옥이 탄생하는 과정의 어떤 부분과 명획히 연결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사 좀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내면화되는 개인, 개인의 능력이나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구원을 보면서 세속화란 무엇인지도 묻게 됩니다.
이승에서 살만해진 것이 연옥을 요청하는 요인이 되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이승에 대한 미련이 삶을 연장하고 심판을 유예하는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네요. '연옥'의 탄생 과정은 인간 심상의 변화 과정이라고 해도 좋을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