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과 달리 이번에 읽은 연옥편은 실제의 죄가 아닌 죄가 되는 기질을 벌합니다. 그 기질이란, 교만,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욕정이구요. 연옥의 두 번째 단지에는 시기의 죄를 응징합니다. 시기에 대한 벌은 눈썹을 모조리 철사로 뚫려 꿰매버림으로써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것입니다. 참 끔직한 벌이지요. 장님이 된 영혼은 태양을 즐길 수 없고 하느님도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증거니까요.
오만의 죄를 지은 영혼들은 가장 아랫단에 나옵니다. 이 영혼들은 바위를 등에 이고 움직이는데, 이들은 형벌이 무거워 몸을 바닥을 향해 구부리고 걸어갑니다. 단테는 이 영혼들을 한 마리 유충에 비유하죠. 유충은 아직 완전히 성장하지 못한 결점투성이 미완의 벌레다. 그런데도 고개를 위로 쳐들고 허세를 부리는 영혼에게는 겸손의 자세를 보이라고 몸을 구부리게 합니다.
다섯 번째의 단지에는 사랑함에 있어 나태한 자를 벌합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가 토론 끝에즘에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얘기를 잠깐 나눴지만, 단테가 말한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다는 분위기였어요. 『신곡』에 나타난 ‘사랑은 창조주도 피조물도 사랑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사랑은 ‘그저 미적지근하게 나태함을 보이는 것은 벌을 받는 일’이라는 것이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사랑도 열정을 담아서 해야 하나봅니다.
우리는 머지 않아 죽어서 저승이든 연옥이든 가겠죠. 그때 우리는 과연 어느 테라스에 머물게 될까요? 혹 연옥에 머문다면 얼마만의 시간을 정화해야 죄들이 씻겨질까요?
2교시가 시작되자 영혼에 대한 선생님의 강의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존재는 다 혼이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물론이고 동물과 식물에게도요. 토마스아퀴나스는 식물혼은 가장 기본적인 생명활동만 하고, 동물혼은 식물혼보다 더 극복해서 소멸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크로스 되서 동물혼이 생긴다고 하며, 인간혼은 이 두 가지가 다 생성소멸 되고 가장 위대한 혼으로서 식물혼과 동물혼이 생성소멸하는 맨 끝에 도달하는 게 인간혼이라고 하셨죠. 그래서 인간혼은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이 위대한 영혼이란 생명활동의 원리이고 동물이나 식물에게는 없는 합리성이나 영성이라는 것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신이 인간에게 선물로 준 선물이라는 것인데, 그게 사랑이라네요. 그래서 자기 안에 신의 은총을 깨닫는 자의 삶은 신에 부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신의 부합한 삶을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살 것도 같은데, 그렇다면 죄란 무엇인지를 알아야겠죠.
단테의 삶에는 많은 부침이 있었다고 합니다. 피렌체에서 유배를 당해 고향엔 돌아 갈 수 없었지요. 게다가 사랑하던 베아트리체마저 죽고 말았으니까요.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막막한 상황에 놓였을 때, 그를 해방으로 이끌었던 것은 두권의 책이었다네요. 단테를 철학적 탐구의 길로 이끈 텍스트는 『철학의 위안』과 키케로의 『우정론』입니다. 이 책을 통해 하나 얻은 것이 ‘당신의 이해력으로 제 3천을 움직이는 당신.’이라는 것. 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와 믿는 것의 문제와 사랑이라는 문제에 대한 탐구에 몰두했었다고. 이런 지혜는 전쟁과 살육의 한복판에서 나온 거라고요. 그의 지적 열정은 자기가 사는 세계를 알고 이해하려는 열정이 단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테죠. 철학을 하는 이유가 자신의 삶을 회피하지 않고 긍정하기 위함이었기에 그렇게 공부를 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철학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 있었는데 그게 시였다고합니다. 단테의 삶에 대해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삶에서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것은 배움 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치우쳐진 기질을 죄로 본다는 것이, 첫 시간부터 계속되어 온 '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속시원한 답이 된 거 같아요. 기질은 자신의 마음에 끝없는 번뇌를 일으키고,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요인이기에 그런가 봅니다. 자분자분 이야기를 듣는 것 같네요. 잘 읽었습니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막막함에 해방으로 이끈 두 권의 책이 신곡에서 단테를 이끈 베르길리우스와 베아트리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해방이란 감각, 돌아오는 주에 천국을 읽게 되네요. 천국이 어떻게 형상화될 지 단테에게 그 빛이란 어떤 건지 궁금해집니다.
지옥과 연옥에서 단죄되는 죄들의 구분, 죄에 대한 형벌의 분배도 흥미롭습니다. 죄의 원천을 '과도함'으로 보고 있는 점도 그렇고요. 저도 천국편에서 보게 될 '정당하고 절제된 사랑'의 모습이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