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기 단테의 「신곡」 에세이 발표 후기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관찰’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을 확신하게 되고 확장되었다고 말했는데요. 이는 단테 ‘본연의 나’를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읽은 신곡이 우리에게 그런 것 같습니다. 천국, 연옥, 지옥이란 특정 장소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 상태라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상태를 친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 천국을 느끼는가, 언제 지옥이라 생각되는가, 언제 죄를 뉘우치는가. 각자의 마음 상태를 봄으로써 우리 또한 본연의 자신 모습을 발견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각자가 어떤 마음 상태를 에세이로 엮었는지 그것에 대한 채운 선생님의 코멘트는 무엇이었는지를 저의 사적 감정과 버무려서 후기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경희샘 - 변화를 키워드로 쓰셨는데요. 베르그손은 어떤 상태가 a에서 b로 가는 것을 보고 인간은 공간적 표상으로 인식한다고 합니다. 이는 감정, (사건의)인과도 그렇게 표상한다고 합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것이 유용하기 때문에 인간의 지성은 당연히 이렇게 작동하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보고 ‘변화’라고 하지만 베르그손은 이것이 변화가 아닌 ‘지속’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말하는 그 ‘변화’도 그가 보기엔 언어로 표상한 것이라는 거죠. 지속하는 것이란 차이로서 발생하는 동시에 과거가 돼 버리는 이런 순간들이 무한히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과거 현재 미래는 분리할 수 없는 것인데 우리는 그것을 표상하고 있다는 것이죠. 매 순간이 차이로서 돌아오는 것이므로, ‘변화’를 언급한다면 우리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이 순간에 어떤 행위를 한다는 것은 과거 전체로서 그 순간 차이의 발생으로 지금에 발생하는 것이며 이것을 ‘현행적’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를 ‘신곡에 적용해보자면, 신곡의 캐릭터 ’단테‘는 모든 기억을(역사적, 신화적, 개인적) 만나면서 지옥, 연옥, 천국 3개의 구획된 공간을 유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는 저자 단테의 마음이라는 한 공간이기도 한 것이죠. 표상된 이미지를 공간화한 것으로 글이 쓰인 것입니다. 경희샘의 글, ‘변화를 형상화한 단테의 신곡’은 자신이 생각하는 변화를 부정하고(그것도 변화인데 말이죠!) 단테의 변화를 보려고 했다는 점에서 단테와 접속하지 못하고 생각이 미끄러지게 된 것이라고 선생님께서는 지적하셨는데요. 자신이 느끼고 있는 ‘변화’라는 것을 밀고 나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에 단테와 접속하는 데 실패했다고 합니다. 경희샘 금쪽이에게 내린 채운 샘의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문학 작품이란 자기 느낌에서 출발하는 것이므로 옆의 눈치를 보지 말고 자기 생각을 쭉 밀고 나가는 글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글감을 정리해서 쳐내고 한 가지를 골라서 명확하게 드러내고 그것을 붙들고 분석해라. 텍스트로 들어가서 분석하는 힘을 길러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경희샘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코멘트이기도 합니다.
***정옥샘 – 신곡과 연관 지어 숲이란 단어를 여러 의미로 해석한 글이었는데요. 저는 이날 한 시간이나 지각해서 정옥샘 글을 못 읽은 상태로 채운 선생님의 코멘트를 듣게 되었는데, 지금 샘의 글을 읽어보니 저는 그날 완전 다른 사건을 염두에 두고 있었더라고요. 이번 정옥샘 글이 에세이가 아닌 소설처럼 읽혀 좋았습니다. 개인적 사건이 보편적 인간의 코드를 보여주고 풀어가는 글이란 어떤 것인지 조금은 알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에세이 후속편이 있을 것 같고…. 앞으로의 정옥샘 글들이 그냥 막~~기대됩니다. 글은 전체적으로 좋았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은 2, 3가지 토픽이 섞여 있었는데 그 점이 선명하게 모이지 않았다는 코멘트를 받았습니다. 뭐 이 정도면 10점 만점에 9.5점 받은 거라 생각됩니다.
***해민샘 – 해민샘은 한 학인으로부터 전체 구조로 보았을 때 제목과 소제목들의 연관성이 어떤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두 가지를 답해주셨는데요. 첫째는, 본인도 아는 사람들을 자신만의 분류로 지옥, 천국으로 보내곤 하는데 앞으로는 단테가 지옥의 사람들 얘기를 귀담아 들어줬듯이 자신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한 점, 두 번째는 이와 반대로 본인도 누군가에게는 지옥, 천국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점을 소제목에서 풀어내고자 했다고 합니다. 헐!!! 신곡을 읽는 동안 저는 단테가 무슨 얘기를 하고자 하는지만 알려고 했지 그가 어떤 것을 경청하고 있는지 이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거든요. 해민샘의 발상은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기에 해민샘의 문제 제기는 제겐 너무 신선했습니다.우리에겐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려 해도 그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은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오프더레코드’에서 채운 샘이 해민샘에게 말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난희샘 – 우리에게 있어 몇십 년 전까지도 타인에 대한 연결된 마음은 무속 신앙 형태의 풍습으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근래에 와서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습니다. 이는 고통을 느끼는 감각마저도 잃게 된 지금의 사회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런 문제 제기와 함께 연옥이라는 세계에서는 고통을 오히려 더 심화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왜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글이었습니다. 채운 선생님은 지옥이나 천국이 아닌 연옥에서 고통을 분석하고 고통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고통을 심화시키는 것이 왜 중요한가를 주제로 다시 에세이를 써 볼 것을 주문하셨는데요. 난희샘은 너무 좋아하면서 “okay” 하셨습니다. 규문 홈페이지 “노년의 철학 하기”에서 난희샘의 수정된 글을 곧 볼 수 있겠네요. 난희샘의 수정된 글을 본다면 그 또한 저희에겐 좋은 공부일 것 같습니다. (우리가 다시 수정해서 에세이를 쓰는 것도 공부지만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수정된 글을 보는 것은 더 큰 공부잖아요~~~)
***호정샘 ; 개인적으로 호정샘 글에서 ‘게으름’에 대한 저의 고민이 풀렸는데요. “온 신경이 시달리고 방해받느라 자기를 괴롭히고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 이것이 나태한 자들의 고통”이라는 샘의 해석에 소름 돋았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것에 대한 유용성을 의심하는 호정샘 금쪽이에게 하신 채운 샘의 처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단테는 길이 있어서 걸어간 것이 아니라 그의 행위와 더불어서 펼쳐진 것이 그가 낸 길이라는 것이죠. 그런 과정을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죠. 방향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두렵다면 혹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면, 그건 바로 행함을 펼침으로써 길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문제 삼을 것은 정성 어린 마음이 될 것입니다. 펼쳐진 길 앞에서 마음을 다해 걸어가면 되는 것이죠. 길이 있다/없다가 아닌 것처럼 유용성이란 것도 있다/없다의 사고의 틀을 넘어가야겠죠.
***정아샘 : 채운 샘의 코멘트를 제 방식으로 해석해보자면. 정아샘은 혼돈을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성적으로 모든 걸 반들반들하게 평면화시켰다는 것이 글의 단점으로 드러났으며 이것은 정아샘이 지식을 받아들이는 방식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삶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채운 선생님께서는 반평생 50을 넘게 살았으면 이 세상 충분히 살았으니 앞으로는 죽기밖에 더 하겠느냐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정아 샘의 사유를 이성이 아닌 야성(삐뚤어진 이성)에 던져 놓으라고 하신 것 같습니다. 가장 의미심장한 코멘트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접니다. 다들 알다시피 이번 에세이에서 제가 칭찬을 좀 받았잖아요. “지난 몇 년간 은옥 샘의 글에서 비문이 아닌 것이 2개였는데 이번 에세이에서는 비문이 2개”라고...(막상 후기를 쓰려고 하니 의심이 드네요. 이거 칭찬 맞죠?) 덧붙여서 “이제부터가 지옥”이라고 하셨는데요. 제게 구축된 이미지화된 세계, 그것을 자각하는 과정이 지옥이 될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후기를 쓰고 보니 학인 모두가 저에게는 베르길리우스였네요. 다음 학기에는 또 어떤 이야기의 길들이 펼쳐질지 기대해봅니다. 아직도 에세이 지옥에서 혼자 남아있는 지원샘 파이팅!!! 하세용.
오~~ 이런 꼼꼼한 후기를요?? 코멘트까지 쏙 들어오게 정리해 주시다니 역시 에이스다우십니다. 신금에 괴테와 같은 소음인 미가(이런 거 막 밝혀도 되나??) 뿜뿜하네요. 작년부터 같이 공부하며 저의 공부 의지를 가장 촉발시키고 계십니다. 비문 없이 술술 읽혔다는... 남은 기간 샘이 어디까지 나아갈 지 너무나 기대됩니다. 잘 읽었어요~~
하산을 명 받은 은옥샘^^ '사적 감정을 버무려' 정리해주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 샘이 적은 것처럼, 신곡을 통해, 그리고 에세이를 통해 각자 다시 한번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게 되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채운샘의 금쪽이 처방(!)을 명심하며, 천일야화도 즐겁게 읽어봅시당~~
학인 모두가 저에게는 "베르길리우스", 너무도 공감되는 멘트예요. 에세이 코멘트를 이렇게 알뜰히 써주시다니, 은옥 베르길리우스에게 두손 모아 합장!
니체 세미나에서 만난 은옥샘을 이렇게 다른 공부의 장에서 만나 함께 공부한 시간이 제게도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절차탁마Q의 에이스라고 하신 정옥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겟네요. 비문이 두 개밖에 없는 에세이, 가감없는 '칭찬' 맞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모름지기 비문 없는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쓰는 의식이 깨어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어요? 샘의 공부가 한발씩 나아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저도 힘을 낼 거예요.
채운샘의 코멘트를 은옥샘의 말로 들으니 저는 미처 알지 못했던 점들을 알게 됩니다. 특히 저에 대한 코멘트를 적어주신 부분은 좀 두고두고 보아야겠어요. 감사합니다. 은옥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