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역사 서술하기
요즘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침략을 반대하는 미국과 유럽의 대학생들이 물리력으로 해산당하는 사진과 기사를 접하고 있습니다. 저에게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미지는 2001년 9.11 사건 당시 미국 도심 한가운데에 있는 빌딩에 부딪히며 화염을 일으키는 항공기의 모습과 비탄과 공포에 질린 얼굴을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보여주던 언론 속 모습으로 형상화돼있죠. 그러던 중에 팔레스타인 침략을 반대하면서 친이스라엘 기업과 정책을 문제 삼는 미국대학생들을 보면서, 9.11이 만든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에 고착화되어 있는 것은 제 자신이 아닌지 반문하게 됩니다.
『이슬람 문화』의 저자인 이즈꼬 도시히코도 첫머리에서 밝히고 있듯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십자군 이래, 근대 식민지라는 역사적 관계를 맺어온 서구 사회의 시선을 벗어나고 있지 못합니다. 누군가를 통해 전해진 이야기에는 더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는데 과정이 소거된 채 매끄러운 결론 같은 형태로 전해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슬람에 대한 이미지에서 더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나 ‘정말 그래?’ 라는 질문 따위는 별로 생기지 않지요. 자신에게 얼핏 보여진 이미지를 고민 없이 단정해버립니다. 실은 그런 중에도 이슬람은 세계를 이루는 일원으로서 현재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지요. 현재적인 힘으로 우리의 삶에 영향을 주고 받으며 살고 있는 존재지만 ‘이슬람’에 대해 그런 감각을 갖기는 어렵습니다. 이미지로 고착된 존재이자 과거 역사를 기술하는 문장의 사어처럼 작동합니다. 그러다가도 이슬람은 ‘테러’, ‘난민’, ‘기아와 구호’, ‘이주노동자’와 같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더러운(?) 존재처럼 불현듯 등장하지요.
이슬람에 대한 저의 이런 감각들은 그들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만들고, 폭력성이나 동정과 같은 우월의 감정을 불러일으킵니다. 이슬람에 대한 공부는 결국 제 자신을 위해 참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런 터무니없는 폭력의 감각을 되묻고, 알지못함으로 인해 무의식중에 제가 원하지 않는 어떤 이해관계를 전하는 이미지들을 매개하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설이 길어진 이유는 오늘 이슬람 문화에서 바라본 이야기 중에 ‘순니(수니)’ 와 ‘시아’파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의 종교 분파를 가리키는 이 말을 테러리스트를 길러내는 조직과 동일어 정도로 여기고 있었죠. 『이슬람 세계사』을 세미나를 통해 공부하면서 순니와 시아가 생성된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았죠. 그럼에도 순니니 시아니 하는 언어가 지닌 뉘앙스를 바꾸지 못했더군요. 이번에 다시 한번 채운샘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면서 순니나 시아라는 말에서 느꼈던 테러라는 감각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역사적 사실들을 연대기적으로 알고 있는 것도 물론 중요합니다. 앎의 질료와 같은 것이죠. 역사세미나에서 그런 자료들을 분명 더 얻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낱말이 새로운 뉘앙스를 발휘하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 혹은 그렇게 구성해서 말할 수 있을 때 다른 맥락에 언어가 놓이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사후에 이슬람 세계를 지도하는 정통 칼리프라 칭해지는 4명의 계승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알리의 즉위와 죽음은 이슬람 세계가 순니와 시아로 나뉘어지는 중요한 사건이 되는데요. 사건들의 나열이 순니와 시아로 나눠지는 맥락을 만드는 것은 아니란 경험을 했습니다. 역사적 사건을 기술할 때 사건의 조각들을 충분히 숙지하지 못하는 것이 실패의 일차적 원인이지만 그것을 엮어서 말하는 이가 생각하는 포인트, 혹은 관점의 부재도 중요한 한계의 지점이었습니다. 그 관점에 따라 가져올 조각들이 결국 인과도 달라질 수 있겠더라구요. 떠듬거리던 제 말을 듣고 채운샘은 ‘스토리 라인’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주셨는데요. 역사적 사건에서 스토리라인의 의미는 두고 생각해볼 문제입니다만, ‘스토리라인의 부재’란 관점의 부재란 말로 들렸고 객관적 혹은 중립이라는 상태에 대한 망상의 지속처럼 보였죠. 관점의 부재는 역사서술에서 권위에의 비판없는 복종, 중심 혹은 주류의 내재화, 정형화된 이미지의 재생산처럼 들렸습니다.
순니와 시아
앞에 잠깐 언급했던 무함마드 사후의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순니와 시아파는 이슬람 종교의 분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기독교도 캐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그리스 정교회와 그 외 여러 분파로 나뉘는 있듯이요.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이슬람문명에서 순니와 시아는 각기 달리 형성된 법과 정치체제, 철학을 의미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570년경에 태어난 무함마드는 610년경에 최초로 계시를 듣지요. 계시는 그로부터 632년 그가 죽을 때까지 약 20여 년에 걸쳐 이뤄지지요. 코란은 그 신의 말씀과 의지가 직접 계시된 것이고 무함마드는 신의 말씀을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들은 예언자구요. 이슬람에서 모세나 예수, 무함마드는 모두 예언자입니다. 무함마드의 다른 점이라면 ‘마지막’ 계시를 전했다는 점이죠.
무함마드 사후에 그와 교우 관계거나 친밀했던 이들이 종교적 권위를 내세워 이슬람 세계의 정치적 수장의 역할을 합니다. 632년부터 661년까지 무함마드와의 개인적 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칼리프의 역할을 하던 시절을 다른 시대의 칼리프들과 구분하여 ‘정통 칼리프’ 시대라고 하지요. 정통 칼리프 시대의 정치적 기반은 아라비아 반도의 무슬림 공동체와 중동제국 정복에 가담한 아랍인 부족세력입니다. 또 이들은 메카와 메디나 또는 중앙과 지방 혹은 무함마드 생전에 지지자와 반대자 등 여러 이해관계로 또 나뉘어 있었지요. 복잡한 관계들 속에서 칼리프들은 특정 세력을 중용하면서 다음 칼리프에서 관계가 역전되는 등 혼란이 이어져요. 아부 바르크(632~634년 재위)를 거쳐 칼리프가 된 우마르(634~644년 재위)의 치세가 끝날 무렵에는 각 집단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데요. 우마르의 뒤를 이은 우스만(644~656년 재위)은 중앙의 강화, 종교에서 주도권을 행사하는 정책을 꾀하다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고 결국 아랍군인의 무리에게 살해를 당하죠. 우스만의 살해 후 알리(656~661년 재위)가 칼리프로 선출돼요.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였으며 최초의 이슬람 개종자인 알리였건만 우스만을 암살한 자들의 도움으로 권력을 잡지요. 이로 인해 알리는 우스만을 살해했다고 의심을 받구요.
우스만의 사촌이었던 무아위야가 알리와 격돌을 하고 그것을 조정하는 중에 알리는 우스만의 암살문제를 조정하겠다는데 합의합니다. 알리를 칼리프로 추대한 자들 중 이런 알리의 결정을 자신들의 희망과 종교적 원칙에 반하는 행위라며 등을 돌리는 자들이 있었어요. 이들을 카(하)와리즈(이탈자들)라고 하죠. 알리는 카(하)와리즈에 의해 암살당해요. 알리가 죽자 무아위야가 자칭 칼리프임을 선언하고 우마이야 왕조가 시작됩니다. 우마미야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무슬림을 순니, 알리와 그의 후손만을 적법한 칼리프라고 인정하는 이들이 시아라고 불려요.
순니파는 코란이나 하디스와 같은 경전의 말씀과 그것에 근거한 법전에 무슬림 신앙의 뿌리를 둡니다. 반면 시아파는 알리와 그 후손들과의 관련성이 중요한 믿음의 근거죠. 순니란 정통이라는 뜻이래요. 시아란 순니에서 벗어났음을 뜻하는 말로, 알리를 따르는 ‘당파’를 의미하구요. 시아파는 소수파이고 다수인 정통 순니와는 다른 종교적 교리를 지녔죠. 시아파는 이란에 거주하는 무슬림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구요. 그 외에도 이라크, 바레인, 시리아, 파키스탄 무슬림의 일부, 세속국가인 아제르바이잔의 무슬림 중 95%가 시아파라고 해요. 시아파를 이란의 민족주의와 연관시키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죠. 시아파는 정통 순니파와 차별성을 두는 과정에 ‘영적 논리, 영적지도자'를 중요한 요소로 가져오죠.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이맘’이에요. 칼리프와 이맘 모두 정치적 지도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시아파는 이맘이라는 지도자의 자질로 영적능력을 중요한 요소로 삼죠. 앞서도 말했지만 순니파는 코란과 하디스 같은 경전, 이것의 해석을 위한 학자들의 합의가 믿음에 중요한 역할을 하죠. 반면에 시아파는 이맘에게 이런 능력을 부여하는데요. 이맘은 ‘코란과 하디스를 해석하고 율법을 정비할 수 있는 배타적 권위’를 지니고 있고, ‘마숨’(종교적 진리로 이끄는 죄 없고 오류 없는 안내자)으로 인식되지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채로 역사가 발달했던 이슬람 세계에는 그로 인해 서양의 근대문명이 식민지화 과정에서도 깊숙이 침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그들이 지닌 이질성 속에서 탄생한 철학이란 무엇인지 궁금해지네요. 다음 시간에 이슬람의 철학을 듣게 될 텐데요. 이번 강의에서 서양의 철학이란 개념에 입각한 철학이나 사상을 중국이나 인도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채운샘이 반문하셨지요. 이와 더불어 이슬람 철학이라고 할 때 단순히 지리나 종교를 경계로 해서 철학을 구분할 수 있는지도요. 중국철학을 유교로 유럽의 철학을 기독교라고 단순히 치환할 수 없듯이요. ‘이슬람’에 대해 주어진 시선 대신 우리의 스토리라인들로 구성된 이야기를 만들고 싶네요.
〈공지〉
* 〈천일야화〉 5권을 읽어오세요. 그 중 이야기 나누고 싶은 문장을 골라 필사하고 이유도 간단히 적어옵니다. 과제는 일요일 밤 12시까지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 〈이슬람 문화〉 3장을 모두 읽어오세요.
* 이번 주 문학과 철학 후기는 호호미, 역사세미나 후기는 경원, 다음 주 간식은 정옥. 내일(금) 역사세미나-줌에서 만나요.
자기의 질문이 무엇인가에 따라 일어난 역사적 사실들에 주목하는 지점이 달라지겠지요. 스토리 라인은 그런 의미일 거란 생각이 드는데요, 역사를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샘의 후기가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두루뭉술하게 알고 있던 이슬람의 초기 역사와 용어들이 이번 시간에 분명하게 정리되어서 좋았습니다^^ 저는 스토리라인에 대한 언급을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고 넘겼는데 다시 생각해보게 되네요. 이런 역사와 분리될 수 없는 이슬람의 철학이 저도 궁금해지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