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간 강의에서는 정주민의 철학 <주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확실히 <주역>이 나온 중국은 어떻게 봐도 유목민이 나올 만한 곳이 아니죠. 크고, 다양한 지형과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중앙집권적인 중국은 농경을 주로 하는 정주민 사회입니다. 그 정주문명의 대표주자 같은 맹자는 백성들에게 항상된 생산을 보장해 줘야 한다고 말하며 누구보다 백성들이 떠돌아다닐까 염려했습니다. <주역>은 하늘-인간-땅 구도를 기본으로 하고 있고요. 그런데 자본주의의 베이스는 이 정주사회를 박살내는 탈영토화, 뿌리뽑힘에서 시작합니다. 뿌리내리고 있는 곳에서 스스로 떨어져 나온 인간은 오로지 돈의 흐름을 따라 살게 되지요. 그리고 이 돈의 흐름은 자연의 흐름과 달리, 잉여가치를 착취하면서 흐릅니다. 이 흐름은 파편화된 삶을 조장하고, 또 그런 삶을 바탕으로 더 가속화 되고요. 한편으로는 안정적인 일자리와 '내 집'을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용에 매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부양의무도 지지 않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지금은 자본주의가 가장 극에 달한 시대 같기도 합니다.
<주역>은 정주민의 철학이지만, 그렇다고 정착적 삶을 지향하지도 않습니다. 모두가 뿌리뽑힌 시대를 보여주는 '려(旅)'와 같은 괘도 그런 가운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지요. 사실 <주역>에는 좋거나 나쁜 괘는 없고, 그저 상황이 제시될 뿐이니까요. 우리는 그 괘를 활용해 지금 우리가 마주한 상황을 어떻게 겪어나갈지 생각해야겠지요. <주역>의 해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각자 자기만의 일관성을 가지고 괘를 해석하면 되는 것이죠. 이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이 <주역>을 몇천 년 동안 읽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시간이면 벌써 마지막 학기 9주차입니다. 에세이 초고를 가지고 만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요^^;; 저희조는 어떻게든 쓴 것들을 그러모아서 '글이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고 서로를 다독였는데요, 과연 그 노력이 '글이 되는' 형태로 모아졌는지, 초고를 읽으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채운샘은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뭘 모르는지 알아내면 된다고 말씀하셨죠. 모든 존재는 다 자기의 좋음을 추구하지만, 문제는 이해 없이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추구하느라 번민하는 소인이 된다고요. 내가 어떤 것을 '좋다'고 생각하는지, 그건 정말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것인지 에세이를 통해 점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좋음'을 <계사전>에서는 '하늘의 도를 즐김(樂天)'이라고 표현했고요. 자연의 운행과, 내게 닥쳐오는 운명은 보통 이해하기 어렵고 불합리해 보이는 것이 많지요. 하지만 그게 어떤 원리로 운행되는지 이해한다면, 혹은 그 가닥이라도 잡는다면 '즐김'까지는 아니더라도 억울해하고 두려워하지는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주에는 <계사전> 끝까지 읽어오시고요, 도올 <계사전> 책 들고 오시면 됩니다.
에세이는 코멘트 반영하고 수정해서 초고 들고 만나요~
간식은 정옥샘, 지산샘.
그럼 일요일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