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천지 사이에 인간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세 가지 요소를 꼽을 때 무려 인간을 그 한 축으로 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주역>의 세계가 인간중심주의라고 하기에, 인간의 역할과 능력은 너무나 미미합니다. 게다가 인간의 문명이라는 것은 순 자연을 거스르고 천지의 리듬을 어그러뜨리는 것들 뿐이라 차라리 인간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생태적이라는 의견이 있을 정도로 반자연적이지요(feat. 호진샘, 미물중의 미물!). 다른 생물이 자연의 리듬에 순하는 것에 비해 인간은 너무 많은 것을 하고 있다고요.
하지만 '천지 사이에 인간이 있다'는 말은, 그럼에도 인간은 천지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인간 문명이 있는 그대로 자연에 순하지 않는다면, 거기서 '스탑'을 외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자연에 기여 가능한 방식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담고 있지요. 문명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은 문명에 대한 양만성을 계속해서 의식하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를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문명은 인간이 도구의 사용을 통해 생존할 수 있게 했지만 밤을 밝히게 되면서 자연의 리듬과 어긋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지요.
문명이 낳은 이 간극을 어떻게 헤쳐갈 것인지 생각하려면, 역시 그 기초를 묻는 수밖에 없습니다. 문명의 모든 것은 사실 인간이 힘만으로 꾸린 것이 아니라, 자연의 증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전기를 발명하고 철도를 놓은 것 같지만, 사실 그러기 위한 조건은 모두 자연의 증여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이렇게 본다면 <주역>에서 천지 사이에 굳이 인간을 놓은 건, 인간이 천지만큼 대단해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은 천지의 사이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음주는 드디어 에세이 발표입니다. 채운샘 왈, "코멘트를 아무리 많이 받아도 결국 자기가 쓰고 싶은대로 쓴다..." 그렇게 되겠지요....ㅎㅎ 하지만 왜 그런 코멘트가 나왔는지, 글의 진행에 어떤 힌트가 되는지 숙고하고 에세이를 써 보도록 합시다~
에세이 발표 시간은 12월 26일 일요일 오전 9시입니다. 9시까지 모두 프린트 하고! 앉아있도록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