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에피쿠로스 쾌락에서 2장, 4장, 5장을 각각 나누어서 정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2장은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에 대한 내용이 4장은 현자에 관한 내용, 5장은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원자론은 참 어려웠습니다. 지난 시간에 강의를 들었을 때 제 머릿속에는 과학시간에 배우는 +와 -로 이루어진 원자모형이 그려졌거든요. 에피쿠로스는 우주는 물체, 허공이라고 하는데 이 허공은 무(無)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강의에서 들었는데도 읽을 때마다 자꾸 헷갈립니다. 에피쿠로스는 합성물이 해체될 때 단단하고 해체될 수 없는 어떤 것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원자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 허공은 원자가 있고 허공이 있는 것으로 비어있음이 있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원자와 허공이 있기에 모든 것은 운동한다고 말합니다. 원자의 운동 영원토록 끊임없기에 세계는 늘 변화합니다. 하지만 중간중간의 심상, 유체 등의 개념을 저는 잘 모르겠어서, 다음 조 모임 때 한번 이야기 나눠보면 좋을 것 습니다.
5장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었는데요. 에피쿠로스는 삶을 잘 산다는 것을 그 시대의 만연한 망상을 걷어내는 것으로부터 찾았습니다. 그 망상이란 신화적 상상(영생), 죽음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신에 대한 환상은 신에게 나쁜 것을 피하고 좋은 것을 간청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무지에 머물게 합니다. 에피쿠로스의 신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생성 소멸을 하며 운동합니다. 그렇기에 신은 그 스스로 고통도 모르며, 다른 것들에 고통을 주지도 않습니다. 인간에게 상벌을 주는 신은 있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워합니다. 에피쿠로스가 보기에 죽음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감각에 있습니다. 죽음은 감각의 박탈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죽음 자체가 고통이라기보다는 죽음이라는 생각이 고통을 만든다고 여깁니다. 저희조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죽음이 두렵다기보다는 그 과정- 병, 늙음이 두렵다는 이야기도 나누었고, 에피쿠로스적 관점에서는 자살이나 안락사가 어떻게 해석되느냐는 질문도 나왔는데요.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왔지만 마무리 되지 않았어요.
저는 죽음에 대한 사유는 삶을 잘 살기 위해서라는 구절에서 많은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는 죽음을 삶의 끝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죽고 난 뒤는 알 수 없으니 그냥 지금 눈앞에 닥친 일들을 하나하나 잘 하면 되겠지’라는 마음입니다. 여기에는 여전히 죽음이 두려움의 영역으로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알 수 없고,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까 뒤로 미루는 마음입니다.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이 죽음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나머지 부분들을 읽으며 더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조 토론에서는 죽음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크다는 걸 확인했죠. 모든 두려움의 이면엔 애착하는 것이 숨어있을 텐데, 이 얘기를 더 나눠야겠네요.
'꼼꼼은정'샘 덕분에 토론이 복기되네요. 원자론 이해에 급급했던 우리가 보이기도 하구요 ㅋㅋ 잘 읽었어요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