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주역 3-6주차(8/27) 공지
주역 읽기가 공통과제에서 발제로 바뀌면서 조금 여유로워졌지요? 일장일단이 있지만 과제에 매이지 않고 텍스트에서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해볼 수 있다는 점과, 토론 시간이 길어졌다는 장점이 있긴 한데요. 자유롭게 새로운 해석에 접근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7주차 채운샘 강의 주에 조별 에세이 주제를 발표하고 코멘트를 들을 텐데요, 이번 주쯤에는 대략의 주제가 나와야 할 거 같아요.
다음 주 읽을 괘는 수지비괘, 풍택중부괘 입니다. 조별 발제자는 발제문을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간식은 규창 정옥입니다. 일요일에 모두 건강하게 뵙지요.
정랑-규창조
수뢰둔, 지화명이 두 괘는 모두 어렵다고 여겨지는 상황을 나타내는 괘로 볼 수 있습니다. 수뢰둔은 상괘는 물, 험난함을 뜻하는 감괘가 하괘는 우뢰, 움직임을 뜻하는 진괘가 있는 괘입니다. 내면에서는 움직이고자 하는데 밖의 상황은 험난한 것으로 여기에 어려움(屯)이라는 뜻을 붙였습니다. 둔은 강과 유가 처음 사귀어서 어려움이 생긴 것으로 처음으로 서로 만났기 때문에 생긴 어려움으로 정의에서는 설명합니다. 지화명이는 둔괘와는 다른 어려움입니다. 명이괘는 상괘에는 곤괘가 하괘에는 리괘로 되어있습니다. 상으로 보자면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 밝음이 어두움에 덮힌 모습입니다. 저는 명이괘는 화지진괘의 다음에 있어 밝음이 극에 이르면 그 밝음이 손상을 당하는 것으로 해석했는데요.
조에서는 한 문명에 극에 이르렀다는 말이 뭘까?, 밝음이 손상당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문명은 무엇인가?등 질문이 나왔습니다. 저도 둔괘보다는 명이괘가 좀 더 어려운 느낌이 들었거든요. 지화명이는 역사적 인물이 단전에 나와서인지 폭군이나 독재 등 어떤 인물에 의해 어려운 시대로 생각하기 쉬웠습니다. 앞선 질문처럼 화지진괘가 뒤집힌 괘가 지화명이괘로 밝음이 내재하고 있는 다른 측면이 어두움이라면 밝음을 지혜, 문명으로 본다면 지금 시대는 문명이 과도한 시대로 볼 수 있을까요? 도리어 디지털 인공지능 등 기술은 발달했으나 그에 따른 삶의 윤리가 부족하여 고립감을 느끼는 어두운 때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학교로 생각하면 8-90년대 교육부, 관리자가 이상한 시대에 아이들과 교사들이 밝음을 감추고 교육을 했던 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과 이야기하다보니 저는 明夷를 어둠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명이는 밝음이 있고, 그 밝음이 손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晦는 색깔의 어둠,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 위아래가 구분되지 않는 것, 혼미한 어두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대립적이지 않고, 어두움을 쓰는 것은 다른 식의 인식역량을 발휘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괘의 리괘가 내면의 밝음을 지키는 貞인 것 같습니다.
희수-태욱조
이번 시간에는 수뢰둔과 지화명이를 읽으면서 '혼돈'과 '어두움'을 어려움으로 보는 두 양상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특히 저희 조는 지화명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는데요, 대상전의 '군중에 임할 때 어둠을 써서 밝힌다'라는 게 지금으로 따지면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중 루쉰의 철방과, 이광수의 계몽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둘 다 어두운 시대를 지나온 사람들이지만, 루쉰의 철방 비유가 사람들과 어떻게 철방에서 함께할지 고민하는 것이었다면, 이광수는 일방적으로 목표를 정해 이끄는 방식이 옳다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용회이명'은 전자와 같은 방식이지 않을까? 어두운 시기에 옳은 방향만 제시하는 건 자칫 입바른 소리만 늘어놓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어둠을 쓰는 것이지 않을까요?
명이가 황혼 후의 밤이라면 둔괘의 '초매'는 새벽녘의 어스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아직 뭔가가 뚜렷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이루어지기 직전의 혼돈이고요. 이때 중심을 뜻하는 '제후'를 세운다는 게 지금 우리에게는 어떤 것일 수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군주가 있는 시절 제후라 하면 신분상 왕이지만, 결국 중심을 결정하는 건 나와 거리를 만들 수 있는 상대를 찾는 것이지 않을까? 그떄 혼돈에 질서가 삽입되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영주-정옥조
이번 주 읽은 괘는 수뢰둔괘와 지화명이입니다. 두 괘 모두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괘입니다. 둔(屯)괘는 하괘에 움직임(雷)이 활발하나, 상괘에 장애, 험난함(水)이 있습니다. 내면에서는 움직이고자 하는 욕망이 가득한데, 밖의 어려움에 막혀 게 되었습니다. 지화명이괘는 밝음이 땅 속으로 들어가 어둠이 가려진 상황입니다. 상괘에는 곤괘, 하괘에는 리괘가 있어, 해가 땅 속으로 들어가 밝음이 어두움에 덮힌 모습입니다.
屯은 일의 시작에 질서(位)가 잡히지 않은 혼란한 상황이라 아직 物을 만들지 못하는 때입니다. 그때는 나아가지 말고 제후를 세우라고 합니다.(利建侯) 후(侯)는 사람들이 바른 삶을 살 수 있도록 구조화하는 자로 삶의 비젼, 정치적 규율, 교화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일의 시작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일인데요, 초구가 양강한 힘으로 나아갈 수 있음에도 머뭇거리(盤桓)는 것은 정서적으로 마음을 모으는 작업이라고 보여진다는 토론이 있었습니다.
명이괘는 단전에서 아예 문왕과 기자의 이야기를 가져와 역사적으로 해석하며 혼란한 상황을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조에서는 명이는 어떤 때인가? 라는 질문을 계속했던 것 같고, 워낙 극단적인 문왕의 사례 때문에 핍박의 시대를 많이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또 어려웠던 건 明이 무엇일까를 다양하게 사유해보는 것이었는데, 지성, 문명, 새로운 사상, 시도,라는 이야기들이 나왔었는데, 속시원하게 논의가 되진 않았어요. 어둠으로써 밝음을 쓴다는 것을명과 암의 극단의 대비가 아니라 다른 길의 모색으로 보았구요. 저희는 주로 멈춤으로 해석을 했는데요, 반지성이 지성임을 자처할 때, 과도한 문명에 멈추는 방식을 고민했습니다.
주역을 해석하는 게 쉬운 게 아닌 건 맞는데, 그걸 더 어렵게 하는 게 텍스트주의라는 생각도 하게 했어요. 명이괘의 단전에서 제시한 문왕의 예도 그 시대에 할 수 있는 해석의 하나이죠.그걸 우리 시대로 가져와 다양한 이야기를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