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比)는 친밀하게 관계하는 것, 중부(中孚)는 마음으로 믿어 응하는 관계입니다. 둘 다 관계를 말하는 괘입니다만, 친밀함을 구축하는 양식이 다릅니다. 우리는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관계 하지 않으며, 우리를 둘러싼 배치에 따라 관계의 양상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과 땅의 친밀함
수지비(水地比)는 친밀하게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를 의미합니다. 물이 땅에 스며드는 것처럼 서로에게 밀착되어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죠. <서괘전>에 따르면 비괘는 지수사(地水師) 다음에 오는데,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군대에 모이면 서로 친밀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군대는 전투를 뜻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이 마음을 모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죠 비괘는 무엇보다 구오효, 정당한 리더를 중심으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모양입니다. 하나뿐인 양인 구오효를 다른 음들이 받드는 가운데 친밀함이 형성되는 것이죠. 이런 비괘를 읽으면 자연스럽게 이들과 함께 하면서 이끄는 리더십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진정 친밀한 관계란 어떠해야 하는지도 보게 되지요.
비괘는 이렇게 말합니다. "미적거리며 늦춘다면 대장부일지라도 흉하다[不寧方來, 後夫凶]." 우리는 친밀함 하면 두루두루 친한 모습을 생각하지만, 비의 때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하나뿐인 리더가 전쟁 후의 어수선함을 정리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정말 살벌한 시기이지요. 이럴 때는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는 것처럼 굴어서는 안 되며, 신속하게 함께 할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두루두루 잘 지내겠다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보낼 사람은 얼른 보내야 하고요.
구오효 효사는 이런 상황에 직면한 리더가 해야 할 일을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친밀한 협력의 도리를 드러나게 하니, 왕이 세 방향으로 몰아서 앞으로 뛰어가는 짐승을 놓아주며 마을 사람들을 경계하지 않으니, 길하다[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 이 효사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는데요, 정이천은 사방으로 에워싸지 않으면서 함께 할 의사가 없는 사람들은 떠나게 둔다고 보았고, 왕필과 공영달은 자기를 등지고 도망치면 쏘아 잡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신속하게 함께 할 사람을 구해서 서로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오효는 친함이란 결국 일정한 배제를 동반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하지만 괘사에서는 이렇게 신속하고 갈 사람은 보내는 친함은 "근원으로 판단[原筮]"하는 것이기에 길고 오래가며 일관될 수 있다고 하지요. 그 이유는 아마도 친밀함을 구성하는 근본적 이유를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로 "건만국 친제국[建萬國, 親諸侯]", 천하를 안정시켜 두루두루 다스리는 것 말입니다.
다른 존재에게 믿음을 준다는 것
중부괘는 진실된 믿음, 마음으로부터 믿는 관계를 말합니다. 중부괘는 위에는 손괘, 아래에는 택괘가 있어 밖으로는 공손하고 안으로는 기쁜 모습을 보여주지요. 또 괘 모양을 보면 중심이 비어 있어서 안으로는 무엇이든 수용할 수 있고 밖으로는 강건한 모습입니다. 이런 중부의 괘사는 돼지와 물고기에게까지 믿음이 미치는[中孚, 豚魚], 믿음의 궁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부괘에는 유독 동물들이 많이 나오는데요, 그것도 돼지, 물고기, 새와 같이 육해공 다양합니다. 동물들은 우리와 공통된 것이 적어 그만큼 감응하고 믿음을 주기 어려운 대상입니다. 중부는 이런 동물들을 등장시켜 과연 믿음을 준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음효의 핵심은 비어 있다는 것입니다. 단전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진실한 믿음은 유함이 안에 있고 강함이 중도를 얻는다[中孚 柔在內而剛得中]"라고요. 정이천은 안이 비어 있음을 "성신(誠信)의 상" 이라고 했습니다. 변화에 응하며 지속하는 성실성을 중부는 안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죠. 이는 믿음이 미치려면 이제까지 전제하고 있던 것을 돌아보고 타자를 받아들이는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 물고기와 돼지에게까지 미칠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중부의 때는 다른 이들을 감화시키며 믿음을 기반으로 관계할 수 있는, 정말 태평성대의 시기입니다. 이럴 때는 누가 실수하더라도 엄격하게 대하거나 돌이킬 수 없는 형벌을 가하는 것을 삼갑니다. 고의로 그렇게 한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요. 이는 제도만으로는 구축될 수 없는 사회 전반의 신뢰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정치가가 아무리 좋은 소리를 해도 믿을 수가 없는 지금같은 시대에 돌아볼만한 괘가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