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라고 MT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덥다덥다 하다보니 코앞이 9월이네요.
주역 3학기도 이제 슬슬 팀에세이 준비로 바빠질 시기가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수지비괘와 풍택중부괘에 대해 토론을 했습니다. 같은 괘인데도 읽을 때마다 매번 다르게 읽히고,
또 이번에는 두 괘를 함께 붙여서 비교해 읽으니 새로운 의미들이 퐁퐁 솟아나오는데요.
요런 맛 때문에 주역은 매번 읽어도 새롭게 느껴집니다.
이제 남은 괘가 얼마 되지 않아 아쉬운데요. 마지막까지 즐겁게 읽어보자고요.
공지 올리고 아래에 지난주 후기 올립니다.
<7주차 공지>
* 7주차 읽을 괘는 화뢰서합괘, 수택절괘입니다.
* 7주차 부터는 팀에세이 준비를 위해 오전-오후 세미나 모두 오후 팀원들과 할 예정입니다.
오후 팀에서 상의하셔서 괘 발제 대표들을 정해주시고, 토요일 밤까지 공통과제를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 이번 주는 예정대로 오후에 채운샘 강의가 있습니다.
아울러 3학기 팀에세이에 대한 코멘트를 들을 예정이니 각 조에서는 에세이 주제와 대략의 개요를 준비해서 출력해 오시기 바랍니다.
* 간식은 현주, 황리샘 이십니다. 일요일에 만나요!
<수지비 풍택중부괘 후기>
황리-희수팀
比의 친밀함은 편안하지 않을 때 구하는 것으로 사사로움에 치우지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누군가와 친밀해지고자 할 때는 여러 모로 나와 잘 맞을 것 같은 사람을 가리게 되는데, 주역은 친밀할 때는 사사로움에 치우지지 않아야 한다며 원서(原筮)를 이야기 한다(原筮 元永貞 无咎 不寧方來 後夫凶). 원서(原筮)란 근원을 연구하여 그 뜻을 점을 쳐 결단하는 것이라고 한다. 신중하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한편 신중하되 미적거리면 흉하다고 한다. 비괘는 九五 외에 나머지 효가 모두 음효로서 九五의 一陽을 우러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다섯 음효들이 永·貞을 가지고 서로 친밀해져도 현명한 군주(九五)가 밝게 살펴주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고 끼리끼리의 분란(붕당)으로 오해받아 허물이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음효들을 살펴주는 九五이지만 한편으로 사냥을 할 때 자신에게 오는 것은 살려주고 등을 돌려 도망가는 짐승은 잡는다고 한다. 剛하고 中함을 얻은 九五가 등을 보이고 도망가는 짐승을 잡는 것에 의견이 분분했다. 너그러운 군자 같은 모습이 아닌 것 같다는 등 말이다. 그래서 인지 ‘비록 大人의 길함을 얻지는 못하나 이를 顯比의 길함인 것이다. 이는 윗사람의 부림은 될 수 있지만 윗사람의 된 도리는 아니다’고 하였다.
부(孚)는 어미 새가 날개(손爪)로 새끼(子)를 품어 결국 부화시키는 정성스럽고 진실된 믿음을 의미한다. 전체 괘 모양은 3, 4효가 陰으로 가운데가 비워있어 진실한 믿음은 사심을 비웠을 때 가능하다는 것 같다. 육사효에서 동류를 끊고 위로 나아가는 것처럼 말이다(馬匹亡 絶類上也). 그래서 比괘에서는 만국을 세우고 제후들과 친밀해지는 것처럼(建萬國 親諸侯) 中孚에서는 믿음으로 마침내 나라를 교화시킨다고 한다(建萬國, 親諸侯). 그래서 믿음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鳴鶴在陰 其子和之 어두운 곳에서도 반드시 새끼들을 불러 찾아내고야 마는 어미 새의 간절한 믿음으로 가능한 것 같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中孚괘의 핵심이라고 여겨졌다.
정옥-영주팀
수지비괘와 풍택중부괘 모두 친밀히 교우하는 괘입니다. 예전엔 중부괘에 집중했었는데, 이번엔 비괘가 더 다가왔다는 의견과 함께 비괘의 한문 한글자 한글자에 집중하며 이야기했습니다. 괘사의 불영방래와 관련, 요즘 시대엔 물질적으로 풍요롭기에 불편하게 없고(불영) 굳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므로 서로 만남의 필요성을 못 느낍니다(방래). 자본주의 체제는 공동체를 끊어 놓음으로써 사람들에게 불안을 조장하면서도 거짓 편안함에 물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때로 우리의 편안함은 타인의 불편함으로 인해 생김을 잊어버리고 살게 됩니다. 原筮는 우리가 근원에서부터 연결된 것을 따져 묻는 것으로 우주 안에 존재하는 타자에 대한 인식역량으로 타인을 만나겠다는 결단의 의미입니다. 元永貞은 타인이 멀리서 찾아오려면 내가 곧고 바르게 서 있어야 사람들이 편안함을 느끼고 다가오게 되기에 먼저 불영방래하려면 원영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초육에서 질장구에 부신이 가득하게 한 뒤에 친비하는 허물을 면할 수 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원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친비하게 됨을 말합니다. 예로 징키스칸이 어느 하나의 종교만 허용치 않고 종교적 평등을 이루었기에 드넓은 지역을 다스릴 수 있었는데, 다름을 인정할 때는 원칙을 지키며 단순해야 함이 중요합니다. 친비에서 친함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구오의 顯比 王用三驅 失前禽 邑人不誡 吉에 대해 왕필, 공영달과 주자의 해석이 다르지만, 무엇보다 王用三驅란 단어가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원치 않게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로 법을 어길 수도 있기에, 강하게 억누르지 않고 한쪽 방면으로 길을 열어주어 숨통을 트여주는 게 지금 시대에도, 우리 생활 속에서도 필요합니다.
중부괘 단전에서 유(柔)가 안에 있고 강(剛)이 중을 얻었으며 기뻐하고 겸손하는 네 덕이 있기에 비로소 믿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믿음은 내적 역량으로서 마음에서 나옵니다. 밖으로 강중하면서도 안이 비어 있어야 다른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내 속이 꽉 차 있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상대방을 믿기가 힘듭니다. 믿을 信자도 단지 말이 아니라 그 말속에 언행까지 포함하기에 다른 사람의 언행을 보고 믿게 됩니다. 오전 시간 체운샘 강의 중 공부는 감화돼서 하는 거라 했는데, 감화되기 위해선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부(孚)’자는 새가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어미가 자식을 사랑하는 돈독한 마음을 나타내는데 예전에는 誠信으로 풀었다 합니다. 다음 주 배울 誠이란 단어가 기대됩니다. 중부괘에서는 我有好爵 吾與爾靡之란 말이 참 좋았는데, 공자가 이 말을 가장 좋아했다고 합니다. 내가 음의 처지에 있어도 화답해 주는 이가 있을 때, 누구나 꿈꾸는 함께 응하는 관계에서 우리는 힘을 얻고 더불어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정랑-규창팀
수지비괘와 풍택중부괘를 통해 <주역>에서 반복되는 ‘부(孚)’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중부괘에서는 이미 괘사에서부터 ‘부’를 얘기하고, 반면에 비괘에서는 ‘부’가 여러 주석자들의 해석에서 제시된다는 점에서, 두 개의 괘를 ‘부’라는 키워드로 관통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물론 구체적으로 두 괘에서 요청되는 ‘부’는 매우 다를 텐데요. 각각의 괘를 정리하면서 왜 <주역>에서 ‘부’가 일종의 윤리적 단어로 제시되는지, 그리고 우리는 ‘부’를 어떻게 문제화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런 질문이 들었습니다. <주역>에서 ‘부’의 용법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부’란 내가 소유할 수 있는 것일까요, 누군가의 인정 속에서 확립되는 것일까요? 전자의 의미라면 ‘부’는 언제든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것이 되고, 후자의 의미라면 타자에 의해서만 확인될 수 있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내가 소유한 것이라면, 왜 우리는 필요한 상황에 맞게 ‘부’를 가져다 쓰지 못하는 걸까요? 그리고 타자에 의해서만 확인되는 것이라면, 이 믿음이란 건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요? 무엇보다 이런 식의 ‘부’가 어떻게 윤리적인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요?
토론하면서도 ‘부’를 명확하게 정리하지는 못했는데요. 다만 우리 차원에서 ‘부’가 어떤 상황에 필요한지, 비괘와 중부괘에서 ‘부’가 어떻게 도출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은정쌤은 이미 학교에서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많아진 사회를 경험하고 계셨는데요. 다른 문화, 다른 국적, 다른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의 공존은 당면한 문제상황이었습니다. ‘다양한 인종의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이런 식의 공존은 아직 낯선데요. 이럴 때 그 상대방에 대한 무지가 편견으로 이어지게 돼 학교에서든 농촌사회에서든 따돌림과 차별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문제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상대적으로 ‘한국’ 아이들이 따돌려지게 되는 일도 일어난다는 건데요. 여기서 어떻게 해야 다문화가정을 ‘한국인의 가정’과 구별시키지 않을 수 있을지,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인 ‘믿음(孚)’을 어떻게 형성할 수 있을지에 있어서 비괘와 중부괘가 힌트가 될 것 같았습니다.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나머지 이야기는 각자 좀 더 발전시키는 것으로 했습니다..!
주역은 끊임 없이 다른 존재에 대한 사유를 놓치지 않는 것 같아요. 중부(中孚)괘에서도 , 천지 사이의 존재하는 우리(中)를 바탕에 깔고 있고, 비괘도 原筮로 사귐의 원칙을 잡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을 때마다 괘가 매번 새롭게 보여 재미있는데, 에세이에도 잘 녹아나오면 좋으련만 , 마음과 글은 늘 따로 놀아서 말이죠. ㅋㅋ 조별로 나눈 이야기를 보는 게 재미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