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3학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통상 개강 파티는 수업 이후에 이루어지지만 팀주역 MT로 토요일 아침부터 만난 우리는 어쩌다 보니 개강(전)파티를 한 듯 합니다. 끈끈한 팀웍을 다진 MT 사진은 이번 주 조별 토론 후기와 다음 주 공지 이후에 보도록 하시죠^^
3학기 첫 시간에는 풍천소축괘와 산천대축괘를 읽었습니다.
정랑-규창조
<제지함으로 기른다는 것>
소축과 대축괘의 축(畜)은 제지하다는 뜻과 기르다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언뜻 제지한다는 것과 기른다는 것은 상반되어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함축하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괘가 소축과 대축입니다. 사람이든, 그의 역량이든 길러지기 위해서는 변형되고 억제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괘를 공부하는 시간에 초등교사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배움을 위해 아이를 학교에 보낸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 자식만 최고로 배려받겠다는, 친구들로부터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음은 물론, 교사의 정당한 훈육도 받지않고 자녀를 키우겠다는 이기심이 크게 작동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의 감정적 분노만을 소중히 여기며 교사에게 마구잡이 요구를 해대며 자신들의 입맛대로 휘둘러서 자기 아이만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호하겠다는 이기적 요구에도 교사는 자신의 감정도 드러낼 수 없는 구조입니다.
여기서 제지함으로써 기른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크게 길러지기 위해서는 대축괘의 효사처럼 교사가 童牛之牿한다거나 豶豕之牙의 제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지금의 제도적 현실에서는, 너무나도 먼 이야기입니다. 교사가 강(剛)의 힘으로 제어했다가는 큰일 날 일입니다. 교사는 양적인 힘은 물론 음적인 힘도 쓸 수 없는 시대입니다. 도움받을 곳 없는 음(陰)으로서 이 시대를 어떻게 건너갈 것인가? 이기심으로 무장하여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까지 학교로 달려와 교사를 무력화시키고, 시시콜콜 문자로 자신들의 감정을 던져버리는 시기에 이들을 어떻게 제지하며 아이들을 길러내고 또 어떻게 이 시기를 넘겨야 할 지를 축(畜)괘를 통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안고 이번주 토론 내용 간단히 정리합니다.
소축괘와 대축괘의 대상전은 모두 덕을 기를 것을 말합니다. 소축은 아직은 비가 되지 않은 구름입니다. 유일한 음효인 육사는 아래의 세 개의 양 중 구삼만 제지할 뿐이어서(공영달), 또는 아래에서 같이 올라오는 세 양을 약한 힘으로 제지하지 못해서(정이천) 비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상황입니다. 음의 힘이 양에 비해서 턱없이 약합니다. 음양의 조화가 잘 되지 못하고 있는 밀운불우의 답답한 상황이죠. 이를 여말선초, 조선 개국에 반대한 정몽주의 제자들이 지방으로 내려가 후진을 향성한 시기라고 비유해 볼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자신들의 역량을 펼칠 수 없는 시기일 때 학문과 문장을 통해 덕을 기르는 것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한편으로 글쓰기의 과정을 密雲不雨와 自我西郊의 과정의 반복으로 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비가 내릴 듯 말 듯한 갑갑함 속에서 한 글자씩, 한 문단씩 써내려가는 시도 속에서 자신의 기존 사고를 돌아보면서 꾸준히 써 보는 것. 자아서교는 내가 서쪽에 있다는 것은 구름이 국지적으로 편재한다는 것이지만 내가 선 구름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문제제기 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처한 자리에서 구체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고(自我西郊), 한땀한땀 써내려가는(密雲不雨) 것으로 이 시기를 넘겨야 합니다. 밀운분우의 상황이기 때문에 내가 선 지점에서 한걸음 내딛는 것을 반복하는 글쓰기를 통해 자기 자신도 성장하고 사회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상효에서 내리는 비가 되겠지요. 정몽주의 제자들이 초야에 묻혀 공부하고 문장을 쓴 노력을 통해 실력을 쌓아 100년 후 사림으로 등장하여 새로운 변혁을 이루어 낸 것처럼 말입니다.
대축괘는 양괘와 양괘의 만남입니다. 양괘(艮괘)로서 양괘(乾괘)를 제지하지만 간괘는 두 음효(육사, 육오)를 통해 건괘를 제지하면서 키워내서 결국 하늘과 연결되는 거리를 인간 삶에 구현합니다. 여기서 핵심어는 괘사의 不家食입니다. 家食은 사사로운 감정이나 사적인 이익에 붙들리는 것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여기에 붙들리지 말고 그런 사사로움은 바퀴살이 빠지듯 멈춰버리고, 돼지의 어금니를 빼듯 날뛰는 마음을 제거하여 건괘의 종일건건을 덕을 키워야 함을 말합니다. 대축괘의 상을 보면 내적인 강건함이 외부에서는 산을 형성하는 생명체로 드러납니다. 큰 산은 사사롭지 않게 오행을 모두 품고 있으며 모든 생명체가 깃들여 살게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을 드러내듯 크게 쌓고 기를 수 있는 시기에 선현들의 언행을 배우고 쌓아서 하늘과 공명할 수 있는 삶을 살아내는 시기입니다. 괘사에서 큰강을 건너고(利涉大天), 상구에 이르면 사방으로 하늘길을 내는(天之衢) 원대한 꿈을 갖고 공부를 해 볼 일입니다.
영주-정옥조
이번 주에는 “쌓는다, 저지한다”는 뜻을 가진 畜괘 두 개를 비교해 읽으면서 과정의 중요성과, 배움과 타자와의 관계성을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소축괘와 대축괘는 괘상으로 보면 음이 하나일 때와 두 개일 때 나머지 양을 저지하는 힘의 작용이 달라지는데, 소축괘는 구삼이 저지의 대상이 되고, 대축처럼 전면적인 제지가 어렵습니다. 소성괘의 관계로 보아도 하괘에 있는 양강한 건괘(乾卦)를 음이 길들이는 정도, 또는 현실화하는 정도가 다릅니다. 해서 소축은 아직 쌓아가야 하는 작용이(健而巽), 대축괘는 저지시킬 수 있는 작용이(能止健) 좀 더 중심적으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괘의로 보면, 소축은 밀운불우(密雲不雨) 함에도 亨하죠. 밀운불우는 배움의 과정 또는 배움의 형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뭔가를 알아가는 과정에 의문이 생기고, 더 탐구하고 싶고, 아직 명쾌하게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러는 과정이 배움이라는 거지요. 그래서 소축괘의 상구효에 이르면 효사에 “비가 내려 조화를 이루어 제자리에 멈춘 것으로 덕을 숭상하여 오래도록 쌓인 것”(旣雨旣處 尙德載)이라고 합니다. 기(旣)자는 ‘이미’ ‘그러는 동안에’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우기처’가 말해주는 것은 그렇게 밀운불우하게 헤매는 사이 뭔가가 쌓이고, 그 과정 자체가 亨한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비가 내린다가 아니라 ‘이미’ 비가 내렸다고 하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이지요.
반면 대축은 강건한 힘으로 이미 저지하여 많은 것을 쌓았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가서 나누어야 합니다. 집에서 먹지 않는다(不家食)고 하는 것은 쌓은 다음의 스텝을 알려줍니다. 지식이든 재물이든 관계든 무엇이 고여 있는 것은 역의 운동성에 위배되는 것이라서, 성인은 현인을 기르고, 대천을 건너는 것으로 운동성을 확보해야 하는 것입니다. 대축의 때에는 바름으로 이로움을 구해야 하는데(利貞), 그 예가 공자의 주유천하가 아니겠는가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공자는 지천명하고 안주할 수도 있었는데, 14년 동안 고난을 무릅쓰고 천하를 돌며 배움을 나누었지요. 배움과 배움을 나누는 것이 자신의 즐거움이 분리되지 않는 공자의 모습에서 대축괘를 이해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야기 했습니다.
그 밖에도 여탈복(輿說輻)이 소축괘의 구삼효와 대축괘의 구이효에 나옵니다. 소축괘의 구삼효는 여러 해석의 논지가 있지만 저희는 좀 더 능동적으로 읽어보자는 입장에서 배움의 과정에 자기변형이 필요한 부분을 표현한 것 아닐까라고 생각을 나누었고, 대축괘 구이효는 이미 중에 거해 중도를 이루어 허물이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 둘다 뒤에 길흉회린 등의 평이 없다는 것도 해석의 여지를 두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대축괘의 육사, 육오효가 양을 저지하는 것이 ‘본성을 범하지 않으려고 제지한다’고 하는 부분도 저지한다라는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괘의 배치에 따라, 어떤 괘와 함께 읽는지에 따라 매 번 새롭게 드러나는 부분이 있어 흥미롭게 토론한 것 같습니다.
태욱-희수조
축이란 쌓는다는 뜻과 양육한다는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소축과 대축은 단순히 양적인 차이만으로 보기보다 강건한 건괘가 상징하는 양의 힘을 길들이는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괘 모두 건괘의 나아가려는 힘을 그대로 두지 않고 굳이 막는 이유는 양의 발산하는 기운을 막을 때에 무언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를 조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형을 하기위한 전제는 저지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눌러주는 힘에 막혀 반목을 빚기도 하겠지만 그 힘에 의해 자기 길을 갈 수 있기도 한 거죠. 소축괘와 대축괘는 그런 축적의 과정을 보여주는 괘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축은 익숙한 힘(건괘)이 아닌 이질적인 힘들(손괘, 간괘)과의 결합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소축은 하나있는 육사효가 위아래의 양들을 겸손한 음의 힘으로 포용하고 길들인다면 대축은 양인 간괘가 힘있게 저지하여 크게 쌓는 모습입니다. 음의 힘이 하나일 때와 둘일 때의 양상도 다른데 소축은 일상의 소소한 상황들에서 성취들을 쌓아가는 것, 이를 懿文德(문덕을 아름답게 꾸민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축은 양과 질 모두에서 규모나 범위가 넓어 하늘을 품은 산의 형상입니다. 이런 대축의 때에는 강건하고 독실함으로 날로 그 덕을 새롭게 한다고 하는데 日新의 과정이 多識前言往行, 과거 성현들의 말씀과 행실을 기억하여 덕을 쌓는 과정과 함께 간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3학기 2주차(7/30) 공지 ***
* 읽을 괘 ; 뇌산소과괘, 택풍대과괘
* 과제 :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 간식: 현정샘 & 저
우리는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1박2일의 짐과 책을 바리바리 싸들고 황리샘의 별장으로 향했고, 남원에서 계속되는 기차의 연착을 뚫고 무려 5시간 남짓 걸려 은정샘이 합류했습니다. 각자&공동의 솜씨를 뽐내며 만든 다양한 요리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노래하고 춤추고 요가하고 밤샘 토론으로 끝없는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특히 그 날의 하이라이트인 주역점과 타로의 대결! 이라기보다 주역으로 해석하고 타로로 보태는 가운데 각자의 고민 속에서 길을 찾아보려는 간절함이 보였습니다. 그 화제의 현장을 보시죠^^
여러 사정으로 참석 못한 샘들은 마음으로 함께 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공부하면서 또 즐거운 시간 만들어 보아요. 무덥고 습하지만 놀때처럼 3학기도 파이팅입니다!!
주역점 칠 때와 달리 타로점에 현격하게 몰려있고 쏠려있는 모습 넘 웃기네요. 점을 치지 않아도 기미를 읽겠다는 팀주역의 당찬 자부심은 워디 가고 이깟 타로점괘에 우리의 미래를 홀딱 의탁해버리는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라니요. 공부 좀 몸에 붙게 주역책 베고 잠이라도 자야하나 싶네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