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 2학기 에세이 후기 / 김현정
많은 고민과 걱정, 여러 번의 토론을 거듭하여 고치고 고쳐 마감 시간에 간신히 맞춰 올린 에세이 발표날, 컴퓨터 앞은 인쇄하려는 선생님들로 분주했습니다. 발표와 질문, 채운 샘의 코멘트를 중간중간 쏟아지는 졸음을 쫓으려고 애쓰며 듣는 시간이 장장 12시간 동안 이어졌습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시간이 쉬울 리가 없겠죠! 채운 샘의 총평을 중심으로 요약하는 것으로 후기를 갈음하고자 합니다.
밥을 먹어야 해서 먹는 게 아닌 것처럼, 공부도 해야되서 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해야되는 건 없다. 공자도 호학자라 하였고, 서양의 철학자도 지혜에 끌리는 것이었다. 공부는 결국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 곧 위기지학이다. 이 위기지학을 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가 말했듯이 지성과 이성의 이해능력을 통해서 정말 나에게 무엇이 이익이 되는지를 생각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정말 기쁠 것 같다는 구도 속에서, 이러한 능력을 실현하는 자는 결과가 나쁘더라도 그 결과에 상처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과에 따라서 자기의 삶을 규정하며 결과에 종속되는 삶을 살기에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모두 욕망에 따라 사는데 공부는 이 욕망의 과정을 어떻게 겪어내는가의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렵고 힘들 때 공부에 인연이 있는 사람은 공부를 하러 온다. 그런데 공부를 계속 하다 보면 무기력과 회의가 들게 된다. 이것은 공부를 진통제로 삼았기 때문이다. 진통제는 병을 낫게 하는 치료제가 아니다. 공부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 공부를 원하는 가이다.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든 공부를 하겠다는 발원이 중요하다. 만일 삶의 문제가 있어 공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면 이때 공부는 자기 것이 아니다. 공부의 힘은 문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고통을 진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 속에서 그 고통을 조금씩이라도 이해해 보려고 애쓰면서 살아가게 하는 것 이것이 공부다. 이런 관점에서 나의 문제를 봐야 한다. 이 공부를 해서 내가 겪어야 하는 나의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자 하는 것이 공부라면, 글은 자기가 뭘 모르는지를 알려고 쓰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스스로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것이다.
과연 어려움의 때는 있을까? 길흉은 항상 어떤 조건 속에 있다. 세상은 우리가 만드는 마음의 꼴대로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어떤 삶을 살면서도 길하다. 군자는 한 생을 살면서 결코 자기 삶을 흉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자다. 주역의 강점은 인간의 해석 역량을 극대화해 주는 것이다. 주역은 무한한 변화의 책이다. 삶을 무한하게 만들어 준다. 주역이야말로 맥락화 할 수 있는 게 무한하다. 권위적인 것에 얽매지 말고 어떤 방식으로 해석하냐에 따라서 각자의 해석을 만들 낼 수 있다. 텍스트가 우리에게 흔적을 남기게 하려면 그 텍스트를 가지고 머리가 빠개지도록 자기 언어로 해석을 해야 하고 그걸 했다면 충분한 것이다.
질문을 자기 병에서부터 출발하라. 자기가 스스로 ‘이렇게 살면 안 된다’라고 느끼는 지점이 있다. 그것을 깨달아야 자기 병에 맞는 약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의 질문이 하루 치의 질문인가, 일년 치의 질문인가, 평생을 가져가야 하는 질문인가가 내 공부의 깊이를 결정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자기 스스로 결정하라. 거기서부터 능동성이 생기고 내가 공부하면서 닥치는 여러 문제를 어떻게 대면할까도 생기는 거다. 또 문제를 설정할 때 자기를 부정하는 방식으로 설정하지 말아야 한다. 자기부정을 하고는 단 한 걸음도 나갈 수 없다. 자기부정이란 자기가 놓인 조건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력해진다. 크기하고 상관없이 내가 누구하고 뭘 할 수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게 중요하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누구와 할 것인가, 어떻게 공부할 것인지를 긍정적인 질문의 방식으로 바꾸어보라.
자기 문제를 직면해야 하는 에세이 쓰기는 힘들고 때로 고통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마치고 나면 마치 고비 하나를 넘긴 듯 후련함과 함께 조금은 진전했다는 뿌듯함도 듭니다. 그게 공부의 맛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이번 에세이에서 제가 얻은 소득은 호가 생겼다는 것이네요. “해무!” 나를 깨우치게 하는 회초리로 삼고자 합니다. 벗들의 도움을 얻어서요.
우와~ '해무'로 회초리 삼으시겠다는 선생님의 결심이 이번 에세이의 가장 큰 소득인 것 같은데요. 고민과 어려움 속에서도 재미있는 글을 써주셔서 이미 한 발 내딛고 있는 선생님이 보였습니다. 자기 대면은 늘 어렵고, 부정이 아닌 방식으로 대면하기는 더 어려운 것 같은데요. 그래서 공부하는 거니까 ㅋ 즐겁게 밥 먹듯 같이 공부해요. 해무샘~~
해무샘 에세이를 보며 공감을 많이 했습니다! 공부 하면서 문제 해결이 아니라 문제 속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혀봅시다! 다음 에세이에서도 주역 텍스트에 도움받아 해석 역량을 끌어보아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