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후기
Seminar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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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주차에 읽은 산택손괘와 풍뢰익괘의 조별 후기 올립니다.
<규창조>
‘손해와 이익’이 바로 떠오르는 손괘와 익괘는 ‘아래를 덜어 위를 보태줌’ 이라던가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탬’으로 표현한 것으로 미루어 내가 단순히 잃거나 얻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합니다. 단순히 양적인 구분으로 내 위치에서의 손익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으로 손익을 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게 서로 연결되어 있음으로 손익의 괘명을 보면 ‘아래’를 중심으로 말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손괘는 백성의 것을 덜어 공동체의 자산에 보탬으로 볼 수 있고 위정자들은 이것이 백성으로부터 나왔음을 알고 그들을 위해 써야 함을 말합니다. 그러니 이 때에 필요한 것은 유부有孚라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백성으로부터 나온 것을 세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를 필요한 곳에 적절히 잘 사용하겠다는, 잘 사용될 거라는 믿음이 서로에게 필요하다고 말이죠.
또,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탬은 기초를 위태롭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상시로 행할 수는 없고, 위를 덜어 아래에 보탬 역시 가득한 데 더하는 것은 해치는 도가 됩니다. 오리발과 학의 다리는 짧아서 길게 늘여야 하거나 길어서 잘라야 할 상태가 아니라 정해진 분수인데, 이를 어겨가며 덜거나 보태는 이유는 때가 그렇기 때문損益盈虛, 與時偕行이라는 말이 손괘와 익괘 모두에서 나옵니다.
저희 조에서는 손과 익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세금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전의 적자폭이 엄청 나서 앞으로 전기요금이 더 오를 것이라고 하는데, 여타의 세금들도 그렇겠지만 혼자 독박 쓰는 것 같은 혹은 그대로 내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이 들지 않고 흔쾌히 낼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인상폭이 납득이 되고 적절하다고 판단되어야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 그러면 정부에서 이를 찬찬히 설명해서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유부가 행해지는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일본에서 지난 3월부터 시행하고 있다는 베리어프리 요금제로 장애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는 여러 장벽들을 없애는 재원을 마련한다는데 이를 통해 회사는 교통요금 인상해서 재원을 마련하고, 장애인들은 대중교통 이용이 쉬워지고, 비장애인들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할 수 있음이 우리 시대의 손익의 예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정옥조>
손괘(損卦)는 ‘손해본다’라는 의미가 먼저 떠오르지만 그보다는 ‘덜어낸다, 줄인다’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태평한 시절의 지천태괘에서 아래 양의 삼효를 위로 덜어주어 손괘가 된 것으로 아래괘(하괘)를 덜어 상괘를 보태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통 우리는 ‘덜어내는 것’은 나의 소유였던 것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흉(凶)으로 여기기 쉬우나 손(損)은 진실한 믿음(孚)이 있으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고 한다(有孚 元吉 无咎). 손(損)으로 덜어내도 有孚, 즉 진실한 마음이 있으면 허물이 없을 뿐 아니라 길(吉)하다고까지 한다. 그리고 두 개의 괘(簋)으로도 제사를 지내는 (二簋可用享) 소박함으로 근본에 집중하는 것이 ‘덜어냄’임을 알려주는 것 같다.
익괘(益卦)는 손익을 따진다는 의미가 떠오르면서 무엇인가를 ‘얻는 것’이라고 여겨지는데 ‘보탠다’, ‘는다(增)’의 뜻이라고 한다. 손이 아래를 덜어내어 위를 보탰다면 익은 위를 덜어내어 아래를 보태는 것이다.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쳐라(見善則遷 有過則改)’하면서 익괘는 善과 過를 보태고 덜어내라고 알려주는 것 같다.
<정랑조>
우리 조는 손괘와 익괘를 읽으면서 손익에 대한 기존의 개념이 확고한 괘일수록 기존의 개념틀에 매어 괘들을 제대로 혹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기존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개념이나 용법들이 주역을 통해 대단히 낯설고 하지만 새롭게 보게 해주는 요런요런 지점이 힘들지만 또 주역의 묘미이고, 계속 읽게 하는 매력 포인트이지 않나 싶습니다.
손익을 생각하면 우선 손해는 나에게 득이 되지 않고, 빼앗기는 것으로 이익은 뭔가 나에게 유리하고 득이 되는 것이 떠오릅니다. 손괘와 익괘를 보면 손(山澤巽)괘는 ‘아래를 덜어 위에 보탠다’고 하고, 익(風雷益)괘는 ‘위를 덜어 아래를 보탠다’고 합니다. 방향만 달랐지 결국은 뭔가를 덜고 보태는 역량을 손익으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딘가를 덜어낸다는 것은 언제나 어딘가를 보태는 것과 항상 같이 간다는 것을 동시적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주역에서는 ‘아래에서 덜어 위를 보태는’ 손의 때를 주로 백성과 군주의 관계로 보고 백성의 것을 깎아 군주에게 위태로운 때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때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때는 아니라고 봅니다. 마치 IMF 금융위기 때 했던 금모으기처럼 말이죠. 한 선생님도 손의 때를 아래의 세대가 부모세대를 경제적으로 부양하게 되는 때를 예로 드셨습니다. 그런데 손괘의 괘사에는 덜어내야 하는 때에 강조하는 것이 바로 ‘有孚’ 믿음을 들고 있습니다. 자신을 덜어 보태는 것이 처음에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어떻게 보탬이 되는가임을 믿고 이해하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 같은데요. 한 선생님께서는 손의 때를 우리가 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욕망과의 관계로도 볼 수 있다고 한셨습니다. 요즘처럼 신상으로 넘쳐나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다양한 상품들이 즐비한 풍족한 시대에 맞게 나의 욕망을 채워가는 것이 뭐가 나쁘냐는 생각은 실은 결국은 쓰레기를 넘치게 하고 우리가 살아갈 터전인 지구를 망치고, 깎아내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의 욕망을 덜어냄이 어떤 보탬을 만들어내는지 고민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셨습니다. 이것이 손괘 대상전의 ‘懲忿窒欲’ 분노와 욕심을 막고 덜어낸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했습니다.
익괘는 뭔가를 얻고 취하는 것이 아니라 ‘덜고 보탠다’고 하는 말이 낯설게 읽힌다고 하셨습니다. 괘의 모습을 보면 상하괘가 모두 운동성이 있는 손(巽)괘와 진(震)괘로 되어 있습니다. 아래에서 강하게 움직이는 진괘 위에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면서 만물에게 부드럽게 스며 들어가는 바람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음유한 성질의 손괘가 아래의 양강함을 거스르지 않고 아래를 은혜롭게 하는 도를 펼치는 모습을 ‘위를 덜어 아래에 더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위에서 덜어 아래에 보탠다는 것을 하늘이 은혜를 베풀어 땅이 만물을 낳는 모습 혹은 하늘의 운동이 사계절의 순환을 생기게 해서 이를 본받아 땅에서는 물질을 생성하게 하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천지의 조건 없는 베풂(益)을 매 순간 받고 있으면서도 그래서 너무 당연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베풂은 특정 개체에게만 보태는 것이 아니므로 일정한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태는 것은 언제나 때와 더불어 행하는 것이지요. 한 선생님도 익의 때를 인간의 욕망에 빗대어 생각할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충분하면서도 멈출 줄 모르고 계속 덧붙이다 보면 어느새 중독(약물, 돈 등등)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중독의 정체에 빠졌을 때 ‘利涉大川’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은 하괘의 우레와 같이 큰 결단, 초구처럼 ‘큰 일을 일으키는(利用爲大作)’ 현재의 정체를 직면하는 태도가 필요하지요. 하지만 이런 결단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틀었다면 방향의 힘을 지속해서 몸에 스며들고 몸에 붙도록 하는 신중하지만 꾸준한 세심한 태도도 필요합니다. 이런 태도를 대상전에서 ‘선을 보면 옮겨가고 허물이 있으면 고친다(見善則遷 有過則改)’고 하는 것 같습니다.
*** 2학기 4주차(5/28) 공지 ***
* 읽을 괘 ; 뇌화풍雷火豊괘, 화천대유火天大有괘
* 과제 :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어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 간식: 지영샘 & 저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 요즘입니다. 혹시 지난 화요일에 금성과 달의 ‘초근접 만남’을 보셨나요? 저는 저녁 먹고 산책 나갔다가 초승달 옆의 별이 유난히 밝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기사로도 나왔더라구요.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5240818001)
이번 주 읽을 뇌화풍괘의 효사에 見沬가 나와(日中은 아니지만) 반가운 마음에 사진 올려봅니다. 낼 만나요~~
손익괘는 아래를 기준으로 보면 손과 익의 상황이지만 , 동일한 상황에 위를 기준으로 보면 손익은 익손으로 반대가 되지요. 지금처럼 손해나 이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덜고 보태며 함게 살아가는 공동체의 도를 손익괘를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손익괘를 해석하기가 참 어려웠는데.....우리가 함께 사는 관계에서 덜고 보탬는 관계만이 있다는 사유에 접근하기가 어려워서 였나 봅니다. 달과 별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진 한 장이 더 처연해 보이네요. 희수샘을 팀주역 찍사로.....
오호, 멋진 사진입니다. 초승달에 둥근달이 들어 있음이 보이네요.
토욜날은 과제하느라 바쁘다고 말만 할 뿐 실상은 하루종일 이것도 저것도 잘 못하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야 허둥대고 맙니다. 토욜 낮동안은 해는 떠 있으되 길을 헤매는 것이 꼭 북두성을 찾고 있는 기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