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해석에 관하여
<신학정치론 3~8장>
신이 헤브라인을 선택했다는 주장은 그들의 연합국가의 본성과 물질적인 복지에만 관계있을 뿐, 지성과 진정한 덕에 관해서 신은 한 민족만을 선택하지 않았다. 또한 우리를 ‘최고의 선(신에 대한 참된 인식과 사랑)’과 참된 삶으로 이끄는 신성한 법칙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며, 어떤 믿음들이나 의식(儀式)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헤브라인들이 이집트 노예에서 해방되어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번영하기 위하여 의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 의식은 세속적 번영만을 위한 것이었을 뿐 축복에는 전혀 기여하지 못했다.
성서는 인지능력이 부족한 헤브라인들의 신앙심을 주입하기 위해 이성보다는 경이로움에 호소하는 상상의 사건들만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자연안에 새로운 것은 일어나지 않으며 기적은 오직 인간의 무지에 기인한 것이다. 모
그러므로 성서를 자연적 인식에 따라 ① 성서 저자의 언어특성을 연구하고. ② 문맥에 따라 분류하며, ⓷ 어느 시대, 어느 저자가 서술했는지 분석하며 읽어야 한다. 따라서 ‘신성한 권위를 소유’한 성직자들의 해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은 자연적 인식에 따라 성서를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우리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헤브라이 민족을 뭉치게 한 ‘신의 율법서’을 볼 수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율법서의 소실을 인정하는 대신 ‘이러한 말들을 적었을 것이다’라고 하면서 멋대로 번역한다. 스피노자는 이를 성서를 읽는 것이 아닌 새로운 성서를 만드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지난번에 너무 많은 내용을 하긴 했죠. ㅋㅋ 그래도 여러 장을 관통하는 스피노자의 주장이 조금씩 더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자연적 인식만으로 충분히 성서를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죠. 일차적으로 성서를 가지고 한 말이지만, 이를 확장하면 모든 특권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성서가 사실은 신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 신체의 변용으로부터 비롯된 도덕 교과서인 것처럼, 어떤 신성한 것에도 그것의 신성함을 보증해 줄 어떤 초월적 요소도 없습니다. 여기서 스피노자는 왜 그것이 신성하다고 인정받았는지, 또 누가 어떤 물질을 신성하다고 규정할 권리를 부여받았는지 등등을 분석하죠. 매우 복잡하지만,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그게 공동체의 형성과정이라는 얘기가 쭉 이어졌던 것 같아요.
그리고 스피노자의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적합한 관념을 구성하는 장소는 무지와 정념이 휘몰아치는 사람들 사이라는 걸 알게 되는데요. 이때 '적합한 관념'이란 표현이 참 오묘한 것 같아요. 도덕적으로 '올바른 관념', 논리적으로 '참인 관념'이 아니니까요. 사람들 사이에서 현재 이 관념이 '적합한가'를 따진다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관념의 적합성은 꼭 이성적인 것 같진 않아요. 모세가 헤브라이 민족에게 선민의식을 심어준 것이나 할례 같은 종교적 실천을 만든 건 이들을 이성적이거나 도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단 생존하기 위해서 였으니까요. 서문에서는 스피노자의 분노가 느껴졌는데, 어쩐지 읽으면 읽을수록 스피노자 본인의 생각도 정리가 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게 아주 주역 64괘와 같네요!
신법은 인간이 만든 법과 다르다고 했던 게 기억나네요. 구약의 성경은 신법(자연의 법칙)과 구약 시대에 인간이 국가적 통치를 위해 만든 법을 교묘하게 버무려서 만든 것을 신법으로 만든 것이겠죠? 공동체의 형성에 필요한 것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