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2학기 중반이네요. 매주 두 개의 괘를 공부하고 토론 시간을 늘리면서 1학기보다 좀 더 꼼꼼하게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주는 채운샘의 강의도 있었습니다. 채운샘 강의를 먼저 간단히 요약해 봅니다.
- 感하고 應하는 삶, 주역이 들려주는 지혜를 수중(手中)에 지니며 살 일이다.
채운 샘은 먼저 우리가 주역공부 하는 데 겪는 어려움을 일일이 물어보셨어요. 3,000년 전 텍스트를 현재의 상황에 끌어와서 적용하는 어려움, 자신의 삶의 방편으로 삼지 못하는 데서 오는 답답함, 괘를 읽는데서 강유 또는 응 관계 해석의 곤란함, 실천 방안에 대한 막막함 등 여러 얘기들이 있었지요. 쌤은 우리 도토리들에 감응해서 몇 가지 핵심을 짚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무슨 텍스트를 읽든 그 출발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감(感), 응(㒣)인 거죠. 감하는 곳에 자연스레 말을 건네게 되고 행동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우리가 감한다는 것 자체가 누군가와 함께 살아감을 전제로 하는 것이며 윤리는 여기서 도출됩니다. 다른 존재와 더불어 살아가면서 엄청난 일을 겪어내야 하고(내가 엄청난 사건이라 해석하고), 또 충돌하며 부딪혀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각자의 내부에는 언제나 거기서 방향을 틀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 힘이 곧 지혜입니다. 헬레니즘 철학자들은 지혜를 手中에 갖고 있어야 한다고, 언제든 바로바로 꺼내쓸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사건 속에서도 평정심을 찾으려는 힘이 주역에서 말하는 정(靜)정입니다. 동 속에 정이 있다는 것, 이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동과 정이 하나라는 말이 이해가 되지요. 靜, 평정심은 계속 흔들리는 속에서도 치우치지 않으려는, 과하지 않으려는, 파토스에 빠져 허우적 거리지 않으려는 태도이며 이 속에서 자신의 근기, 즉 수중에 지혜를 지니고 있는지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공부를 하는 것은 지혜를 수중에 갖기 위한 것이고 주역은 거기에 참으로 적합한 텍스트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역을 읽는 과정에서 우리가 헤매이는 중요 단어를 정리해 주셨습니다.
1-1. 吉凶悔吝, 길흉도 마음의 상태다.
회린을 마음의 상태라고 하면 금방 이해를 하는데 길흉은 결과물로만 생각하는 데서 길흉을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길흉도 역시 마음의 상태이며 태도입니다. 吉은 마음이 편안한, 평정심의 상태이고 凶은 반대로 마음이 산란하여 불편한 상태입니다. 길흉은 객관적 상황이나 결과물이 아닌 만큼 회냐, 린이냐를 쓰는 것에 의해 바뀔 수 있습니다. 유학자들은 언제나 길흉이 아니라 회린에 중점을 두었다고 하죠. 회, 뉘우침란 매우 능동적인 정서로 잘못을 고치는 것입니다. 익괘의 개과천선이 떠오르네요. 반면 린, 인색함이란 상황을 뭉개버리는 것, 흘려보내지 못하는 것, 안보려고 하는 것으로 결국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것입니다. 잘못된 일은 언제나 남탓하는 걸로 해석해 볼 수 있을까요? 이렇듯 자신에게 인색한 사람은 누구도 구제해 줄 수가 없습니다.
1-2. 시(時)와 중(中), 너 자신의 때를 알라.
동양의 앎은 서양의 앎과 달리 시중(時中), 때를 알라는 말입니다. 주역이 쓰여진 시기와 지금의 사회의 모습은 크게 다르죠. 예를 들어오늘 배운 가인과 풍에서 말하는 가족, 부, 모만 보더라도 고대 사회와 오늘날은 크게 다릅니다. 고대에는 모두가 가(家)를 이루고 살았기에 교육, 문화, 경제의 단위가 모두 가였습니다. 현재의 가는 1인 가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고 있으며 1인 가구라고 했을 때 가족은 애완용 동물과 심지어 스마트폰도 가족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애착하는 것이 애완용과 스마트폰임을 보면 금방 이해가 되지요. 또 주역의 가의 단위를 지금의 조건에서는 하나의 공동체로 해석해 볼 수 있고, 주역의 왕가나 부모와의 관계도 친구 관계로 적용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영역을 확장하거나 변주해서 해석하는 역량이 시중, 지금의 시대에 맞는 괘 해석입니다. 중을 적용하는 데에서도 역시 감, 응이 우선합니다. 때를 읽는다는 게 중요한 이유는 내가 감응하고 있는 것을 질문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질문을 바꾸어 보면 주역의 괘 해석도 다양하게 변주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구와 감응하면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가? 가족과만? 부자와? 내몰려진 존재와? 이렇게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해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감응하는 존재에게 말을 걸고 감응하는 존재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갑니다. 누군가를 의식한다는 것은 그 누군가도 고통받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이고 나와 같은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와 관계 맺는 수많은 존재들을 얼만큼 대상화하고 사물화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일입니다. 주역의 윤리는 어떻게 우리가 어떻게 물과 함께 할 것인가로 볼 수 있다고, 우리의 시선을 더 확장해 볼 것을 주문하셨습니다.
2. 조별 토론 후기
2-1. 규창조
산풍고와 풍화가인은 둘다 소성괘 巽이 들어간다. 손괘는 물상으로 보면 바람인데, 바람은 스며들지 못하는 데가 없다. 손괘의 역량으로서의 入이란 바로 바람의 어디로든지 들어간다(入)를 표현한 것이다. 고괘와 가인괘는 둘다 巽의 역량을 어떻게 긍정적으로 전유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문제는 고괘든 가인괘든 오늘날 우리의 시대와 삶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할 것인가이다. 우리 조에서는 특히 주역의 시대와는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의 家의 상황에서 가인괘의 괘사 利女貞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논의가 모아 졌다.
여자의 정함이 이롭다는 것은 여자의 바름은 집안이 바른 것이고, 남자의 바름과 나아가 사회의 바름의 기본이다. 따라서 利女貞을 얘기한다는 건, 여성에게만 올바름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올바르게 살 수 있도록 남성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는 말이고 이는 정치적으로 혁명적 사유와 연관된다고 한다. 또한 여자의 올바름은 시대상을 반영한 말일뿐, 결국 구성원이 자기 역량을 제대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안팎에서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는 말이다. 지금 시대에서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 성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닌 관계 속에서 위치가 정해진다. 그러므로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자기 자리를 바르게 잡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 利女貞과 옛날의 家와 오늘날의 家의 차이 속에서 가인괘의 해석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분분이 토의하다 보니 고괘를 이야기할 새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2-2. 정랑조
蠱는 그릇 위에 벌레 세 마리가 놓여 있는 형상으로 사물이 긴 시간에 걸쳐 어지럽혀지고 파괴될 때, 일이 있어 능한 이를 기다리는 때라고 합니다. 혁괘와는 달리 전면적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일을 뜻은 이어받지만 시대적 조건에 따라 현재에 맞지 않는 것은 새롭게 고쳐나감을 말합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수십 년 쌓아온 습관으로 인해 신체 리듬에 혼란이 생기는 경우로, 또 사회적 차원에서는 낡은 관습이 시스템에 장애를 일으키는 상황으로 보았습니다.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때이기에 흉할 것만 같은데 괘사에서 크게 형통하다고 하니, 아마도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가 드러난 덕분에 이제 전면적으로 바꿀 수 있는 상황이 도래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였습니다. 선갑삼일 후갑삼일은 새로운 조건에 맞는 법과 삶의 스타일을 만들되, 코앞에 있는 조건만 볼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토대가 만들어진 원인을 근원적이고 넓은 시각에서 정확하게 파악하고 새로운 삶의 양식이 가져올 결과나 효과까지 멀리 보라는 의미로 생각되었습니다. 상구효에서 왜 왕후의 일을 계속 하지 않을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마도 5효에서 아버지의 일을 끝내고 명예를 얻었기에 이제는 그 문제에 대해 더 할 일이 없으므로 진덕수업하는 일을 하려고 길을 나서지 않았을까 합니다.
家人(영어 influence)은 안을 근본으로 삼기에 여자를 먼저 말하였습니다. 초구에서 閑有家 悔亡 가르침은 초기에, 법은 시초에 달려 있으며 늦으면 후회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초범에 반성하다고 하여 범법자들을 쉽게 놓아주니, 잘못을 하고도 처벌이 약해 다시 반복되는 현상을 보면 이해가 갑니다. 육이에서 여자는 이루는 바가 없으며 집안에서 음식을 만드는 봉제사 접빈객의 역할만 이야기하니 여자를 차별하는 것 같고 현대와 맞지 않으며, 1인 가구가 많은 요즘 시대엔 현실감이 떨어진다는 의견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집밥은 따뜻한 불처럼 어머니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잘 키워내는 중요한 역할로, 어머니란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하였습니다. 홍루몽 등의 책을 보면, 사대부 집안에서 가정을 경영한다는 것은 많은 지혜와 리더십이 필요한 일로 가내에서 여자들의 역할과 권위가 막강했음을 봅니다. 육이와 구오의 정응 관계를 통해 집안의 도는 각자가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할 때 아랫사람들도 교화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구삼효는 하체의 극에 처해 한 집안의 어른이 된 자로 엄함이 때로 후회될 수도 있지만 길하다고 합니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아이들을 훈육할 때 사랑만 강조할 게 아니라 엄할 땐 엄한 부모의 역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단, 화를 품은 엄함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을 품은 엄함과 구별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럴 때 상구효의 有孚 威如 終吉이 될 수 있으며 자기 몸을 돌이켜 봄도 가능합니다. 아이들은 부모의 언행일치를 보며 존경심과 위엄을 느끼니까요.
2-3. 정옥조
蠱괘는 이어 받고 가는 것을 의미하고, 家人괘는 세세하게 살피는 괘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을 읽다보면 利涉大川이라는 말이 종종 나온다. 산풍고괘에서도 단전에
蠱 元亨而天下治也 利涉大川 往有事也 先甲三日後甲三日은 終則有始 天行也라고 한다.
큰 천을 건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뭔가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일까? 강을 건넌다는 것은 뭔가를 실행해가는 행위를 일컫는 것 같다. 먼저 강을 건너겠다는 결단이 필요하고 실제로 강을 건널 때는 믿음이 있어야 비로소 강을 건널 수 았다. 이렇게 강을 건넜을 때 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대천을 건넘이 이로움은 가면 일이 있는 것이다(利涉大川 有事也)는 구절을 보면 그 일(事)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이 강을 건넌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다. 일단 왕(往), 나가는 것 자체가 일(事)이 있다.
고(蠱)를 낡은 세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입장에서 보자면 부모의 일을 이어받는다는 것은 오래된 부패도 함께 이어받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을 어떻게 이어 받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단계를 선갑삼일(先甲三日)볼 수도 있겠다. 결단하고 이섭대천(利涉大川 )한후 ’내가 어떻게 해나갈까‘를 후갑3일(後甲三日)로 볼수도 있다. 그 일을 하나하나 해 나가는 것이 강을 건너는 것이다. 사실 내가 있는 곳만을 본다면 부모의 일을 이어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갈 수 있겠어 하고 의심하는 마음으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행위, 나가서(往) 그 일을 계속 하는 것(有事), 그것이 종즉유시(終則有始)의 과정이며, 세대교체, 순환의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家人 利女貞, 가인괘는 집안의 도를 닦고 집안을 꾸려가는 여성의 괘처럼 보인다. 이 괘에서 보이는 여성의 이미지는 소극적이며 사회적 활동을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단상에 나오는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 여자는 안에서 자리를 바로잡고, 남자가 밖에서 자리를 바로 잡는다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여자는 안의 일을 하고 남자는 밖의 일을 하는 것처럼 읽히기 쉽다. 하지만 이것은 추상화된 비유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음은 음의 역할을 양은 양의 역할을 하는 해야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父父子子兄兄弟弟夫夫婦婦而家道正 正家而天下 定矣 가인괘에서 말하는 ’~답다‘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까? 어머니는 어머니답게, 아버지답게라는 것은 각자 자기 자리에 있다는 의미로 본다면 어디에 어떻게 있어야 한다는 말일까? 동양에서는 자식이 부모를 부양하는 것은 있지만 부모가 자애로 자식을 키우는 얘기는 없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는 위엄을 지켜야한다고 하니, 부모가 자기 자리에 있는 것이 위엄을 지킨다는 의미일까?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써 부모의 엄함(嚴)에 대해서 새겨들을 일이다.
가인괘를 읽다보면 어머니의 역할에 대한 구절이 눈에 많이 띈다. 家人 利女貞, 여자, 어머니의 바름은 무엇일까? 풍화가인이라는 괘명에서 보듯이 바람처럼 공손하게 사물을 변화시키고, 불처럼 명(明)이 있어 지혜롭고 밝아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지혜를 가진 가인이 집안을 돌보는 것은 온 집안에 미쳐야 한다. 옛날 씨족 사회를 생각해보면 집안은 마을 전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인이 세밀하게 집안을 살펴서 안팎을 바로 잡는 것은 천지의 대의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가인은 어떻게 집안을 세세하게 살피는가? 가인의 말은 언유물(言有物), 실질이 있어야 하며, 행동은 행유항(行有恒) 항상됨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물은 일이다. 일을 해야하고 행동으로 해서 몸소 무언가를 해야하는 괘라고 할 수 있다.
3. 6차시 예고
1) 오전 과제 : 택화혁, 화풍정을 읽고 과제를 하여 숙제방에 올립니다.
2) 오후 과제 : 글쓰기 주제를 정해 옵니다. 조별로 조별 텍스트 토론과 2학기 에세이 주제를 적절히(1:1?) 안배하여 진행합니다.
3) 간식 당번: 희진샘, 은주샘
지혜를 수중에 가지고 있으라는 헬레니즘 철학자들의 말도, 역을 완구처럼 가지고 끊임없이 玩하라고 하는 주역도, 모두 우리가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로 만들라고 하는 것이겠죠.
사건 속에서도 평정심을 찾으려는 힘이죠. 이것이 정(靜)이라고 해석해 주신 것이 인상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