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철학 1-8주차 (4/9) 공지
날이 좋았습니다. 햇살은 적당히 따뜻하고, 봄바람은 살랑거렸지요. 팀별 에세이는 점점 다가오는데 별 성과는 없고, 속은 답답했지요. 핑계 삼아 카페의 빈자리를 찾아 가는 게 어떠냐는 모의가 있었고, 이래도 돼? 하지만 가고 싶어~! 그렇게 저희는 3조가 모두 카페로 나가 조별 모임을 하고 말았네요. 하필 이번 주 읽은 괘가 진괘와 간괘인데 이 괘들의 덕은 각각 동(動)과 지(止)이죠. 무작정 나아가거나, 멈추는 것이 아니라 때에 맞게 하라는 것이었는데요. 음....
봄날의 일탈은 여기까지 좋겠습니다.
이번에 읽은 네 개의 괘가 많기도 하고 좀 어려웠던 것 같네요. 처음 괘를 읽으시는 선생님들도 계시고 괘를 더 알고 싶어 하시는 샘들도 계신데, 묶어서 읽다 보니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괘사와 대상전을 먼저 여러 번 숙독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원래 황리샘이 공지를 쓰셔야 하는데, 후기가 다 모아지지 않아 기다리다 노트북 없이 ‘별장’에 가셨네요. 그리곤 이렇게 토스를 하셔서... 급히 후기 공유하고 공지합니다.
<정옥조> 토론
저는 주역 공부가 처음이어서 인지, 주역 정의를 읽을 때면 한상에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이 한꺼번에 차려져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먹고는 있는 데 맛도 모르는 것 같고, 소화가 안되니 체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왕초보인 제가 단번에 잘 되길 기대하는 것은 큰 욕심이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욕심을 내는 것은 허물이요, 그대로 밀고 가면 흉한 일이라는 것을 주역 텍스트는 알려주고 있으니,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생각이 많아집니다. 이런 마음으로 샘들께 초보자는 무엇을 중심으로 공부해야 할지 물었고, 괘와 괘명,괘사의 의미를 우선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의견을 들었습니다.
이번주는 4개의 괘- 택산함, 뇌풍항, 중뢰진, 중산간 을 공부하며 이야기를 나누었고 저는 괘의 생김과 괘명 괘사를 중심으로 살펴보았습니다. 함괘의 경우 여자가 위에 있고, 남자가 아래에 있으며 ‘멈추면서 기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남,여가 왜 나오는지 모르다가 8괘가 가족을 상징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이해가 되었습니다. - 건(아버지) 곤(어머니) 진괘(장남) 감괘(차남) 간괘(소남) 손괘(장녀) 리괘(차녀) 태괘(소녀) 처럼. 함괘의 상괘인 태괘(연못)는 '기쁨'을, 하괘인 간괘(산)는 '멈춤'을 의미하니 ‘멈추면서 기뻐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을 상전에서는 '산상유택’이라 했고,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남을 받아들인다 (군자이허수인, 君子而虛受人)고 합니다.
이처럼 저는 괘를 붙들고 보았고, 샘들은 진괘와 간괘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진괘 상전에서 '군자이공구수성(君子而恐懼修省)'은 군자가 (거듭된 우레를) 보고서 두려워하니 자기를 닦고 살핀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전전긍긍’하는 태도라고 합니다. 보통 전전긍긍하면 소인들이 갖는 우왕좌왕하는 태도라 생각했는데, 태만을 경계하는 군자의 태도라는 것을 알게 되니 새로웠습니다.
간괘는 노자의 텍스트와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노자 3장에는 '욕심낼만한 것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지 않게 한다’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한편 간괘 괘사에 나오는 ‘등에서 멈추면 몸을 얻지 못하며, 뜰에 가서도 사람을 보지 못하여, 허물이 없을 것이다’ 를 보고 한강백은 ‘눈에 근심이 없다’라는 주를 달았습니다. 두 구절이 통하면서도 감각기관(대표자: 눈)을 경계해야함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적인 삶에서는 우리가 뜰이라는 현실 즉, 가까운 것은 잘 살펴야 하지 않을까? 감각기관 탓으로만 돌리지 않고 잘 살피는 건 사유하는 능력에 달린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과 이야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황리조> 토론
澤山咸 괘부터 먼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문빈쌤께서는 택산함괘의 상전-象曰, 山上有澤, 咸, 君子以 虛受人을 가지고 글을 쓰셨습니다. 매의 눈이신 정랑쌤께서 虛受人인을 虛愛人으로 쓰신 것을 보셨어요. 문빈쌤의 무의식에 愛에 대한 욕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짐작을 속으로 했습니다.ㅎㅎ 오전에 강의를 들은 플라톤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었는데요. 플라톤은 그리스 시대의 에로스가 사람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지닐 때 능동/수동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못마땅해했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능동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知에 대한 사랑으로 의미를 변주했죠. 하지만 주역의 감응은 조금 다릅니다. 사랑이 아닌 감응을 하기 위해서는 비워야(虛) 할 것을 강조합니다. 그럼 이것은 수동인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는데요. 저희 조에서는 비움을 통해 서로가 서로의 것으로만 꽉 채우지 않고, 받아들여 새로움이 생성되는 관계가 감응이라고 보았습니다. 저는 비움이 플라톤의 능동/수동의 이분법적 분류를 넘어선 둘 사이의 생성을 의미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함괘의 단전에서는 柔上而剛下. 유함이 올라가고, 강함이 내려가는 것. 男下女, 남자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비움을 자기를 낮추는 것, 자리바꿈을 할 수 있는 것이로 해석해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황리쌤의 공통과제에서 쓰신 택산함괘와 중산간괘의 신체성과 연결해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九五, 咸其脢, 无悔 등으로 교감한다는 것이 후회가 없다는 구오효의 효사를 보았습니다. 전면은 오감이 발동하기 쉽지만 등은 그런 부분이 덜합니다. 그래서 사적인 욕망이 끄달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虛 비움이란 등으로 교감하는 것처럼 비워서 고요하고 무심하게 교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恒괘를 가지고 공통과제를 썼는데요. 조에서 동아리 모임이 항상성을 가지려면 4월에 일이 진행되어야 하는 게 때에 맞는 행위인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전 象曰, 雷風, 恒, 君子以立不易方 구절을 보면 항상성이라는 것이 고정된 것은 아닌데 군자가 자리를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기준은 있다고 읽어야 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주석에는 立身함에 方道를 바꾸지 않는 구절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선생님들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도 저의 자리에 맞게 서 있는 행위가 무엇인지를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못했구나를 느꼈습니다.
觀其所感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 觀其所恒而天地萬物之情 可見矣
함괘와 항괘는 공통적으로 개체가 어떻게 자신을 지속하고 있는가에 관한 얘기를 전제합니다. 우선 괘명에 주목해보면, 함괘와 항괘 둘 다 변화 속에서 지속을 논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 괘 모두 상전에서 情을 얘기하고 있는 데 정이란 무엇일까요? 함괘에서는 물건에 감응하여 동함을 情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천지 만물이 모두 기류로써 서로 감응하고 그 감응하는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情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때 情을 자연질서의 법칙으로 이해해도 되는 것일까요?
<규창조> 토론
택산함에서 못의 성질은 아래로 흘러 윤택하게 하고 산의 체는 위를 받아들여 적셔줌을 받으니 산으로서 택에게 감동되어 감괘가 되었다고 합니다. 단전에서 二氣感應 以相與 두 기운이 감응하여 서로 준다고 하였고, 대상전에서는 山上有澤 咸 君子以 虛受人 마음을 비워 남의 의견을 받아들인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아집을 없애는 것입니다. 유기체가 외부에서 이질적인 것들을 받아들여 나를 변형해 가듯이 함괘도 능히 마음을 공허하게 비워 남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남에게도 나의 것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相與 혹은 虛受人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타인과 감응하는 관계를 맺어 갈 수 있을까요? 고요하게 멈춰서 마음을 비워야 감응할 수 있다고 합니다.
뇌풍항괘의 괘명인 항이란 글자는 달이 차오르다 줄어들고, 줄어들다 차오르는 모습을 정형화한 것입니다. 항괘의 단전에서는 雷風相與 巽而動 剛柔皆應-우레와 바람이 서로 도와주며, 長陽과 長陰이 능히 서로 이루어주는 것(相成)이라고 합니다. “우레는 바람을 의뢰하여 소리가 더욱 멀리 가고, 바람은 우레를 빌려 위엄을 더한다.”고 합니다. 항이란 항구성입니다. 정이천은 ‘항상성’이란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도를 말하는 것으로, 한 모퉁이만을 고집하여 변통할 줄 모르고 하나에 고정해서 집착하면 오래 지속할 수 없다고 합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기제와 미제가 서로 변화하며 항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공자의 禮도 도그마하지 않고 때에 따라 다르게 대했기에 항구하게 올 수 있지 않았을까요?
중뢰진괘는 하늘의 위엄이 진동하는 괘로서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형통함을 얻을 수 있으며, 태만한 자들을 놀라게 하여 풀어지고 태만한 자를 엄숙하게 하고 우레가 옴에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복을 오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괘의 두려움은 스스로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요, 우레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인데 비해, 상괘에서 구사의 두려움은 正位를 잃고 中을 어겨, 스스로 두려워하여 진흙에 빠지게 됩니다.
중산간괘는 합당한 자리에 멈추어 그침을 편안히 여기는 것입니다. 왕필은 艮은 그쳐서 서로 통하지 못하는 괘라고 하였으며, 왕부지는 艮이란 한계선에 서서 굳세고 확실하게 저지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艮有背 不獲其身은 등에 그쳐서 물욕에 막히지 않음으로 몸을 보지 못하여 나를 잊어서, 사사로운 내가 없기에 멈출 수 있다고 합니다. 사욕과 사사로움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욕망의 작동방식을 구분해햐 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 같나요?
4개 괘를 다 하려니 시간은 부족하고 식사 때가 되었기에, 때를 맞추어 공부를 그치고 맛난 점심식사를 하러 갔습니다.
*** 8주차(4/9) 공지입니다 ***
* 읽을 괘 : 중수감, 중화리, 중풍손, 중택태
* 과제 : 8괘(소성괘)가 가진 에너지를 깊이 있게 살펴보면 좋겠지요. 나눌 이야기를 간략하게 써서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 간식 : 희진샘, 규창샘 부탁드려요.
♣ 후기 : 다시 황리샘
내일이네요, 또 반갑게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