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의 문턱에서...
어제까지는 날씨도 따뜻하고 좋더니 오늘은 비가 오네요. 비가 와서 쌀쌀하긴 해도 봄이 오는 길목의 비는 가을에 내리는 비완 달리 뭔가 싱싱함이 느껴집니다.
이번주 주역수업은 지난주 개최된 팀주역 공식게임 윷놀이 여파로 팀원들 대다수가 컨디션 난조를 보여 피치 못하게 한 주 쉬어가게 되었습니다. 매주 읽을 분량이 만만치 않고 세미나 시간도 빡빡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긴장도 풀고 팀웍도 다지자는 의미에서 개최된 윷놀이였는데... 생각보다 그 휴유증이 만만치 않네요.ㅠㅠ 그 덕에 공지담당인 저로서는 게으름 피우며 느긋하게 올릴 수 있어 다행입니다만... 다들 얼른 쾌차하셔서 다음주에 반갑게 만나요! (*휴강을 해야 할 정도로 정념이 분출하고 억지와 쪼잔함이 난무했던 “
격정의 윷놀이 현장”은 공지 마지막에 이어집니다.)
올해 주역팀에서는《주역》을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과 ‘종횡무진’ 접속하여 힘 닿는 만큼 풍부하게 해석해보자는 취지에서 《주역》과 함께 팀별로 어마어마한 멋진 텍스트들을 읽어가고 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없을 알찬(빡센) 수업 구성에 반해(속아) 덜컹 등록하신 뉴비 샘들(정말 감사합니다!)의 합류와 함께 기대와 설렘으로 시작해서 아직은 어색하지만 조금씩 리듬을 맞추며 공부해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계사下전> 뒷부분을 읽으면서 4주에 걸쳐 <계사전>을 마무리하고 다음 주부터는 본격적으로 괘들을 읽어나가기 시작합니다. 괘는 미리 공지한대로 64괘 순서대로 읽지 않고, 관련 있는 괘들로 묶어서 읽습니다. 그러나 보니 한 중에 2개, 3개 혹은 4개씩 읽게 될 수 있으니 확인해주세요. 지난 주 <계사下전>6-10장 조별로 토론한 내용입니다.
<정옥팀>
이번 시간 토론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전상(典常)과 요회(要會), 그리고 재(才)였습니다.
전상과 요회는 떳떳한 법[典常]과 중요한 귀결[要會]이라는 뜻으로, 계사하전 7장에 나옵니다. 역(易)은 천지를 본보기로 삼은 것으로, 엄연한 이치가 있는 것 같은데, 7장에서는 "오르내림에 일정함이 없으며 강(剛)과 유(柔)가 서로 바뀌어서 전상과 요회로 삼을 수 없다[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라고 하면서 일정한 법칙은 결국 없다고 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전요는 그저 인간이 우환에 대비하기 위해 갖는 임시적인 것일까? 라는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전요(典要)로 삼을 수 있는 건 없다는 구절은, 법칙은 결국 변(變) 뿐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는 인간이 있습니다. 계사하전 8장에서는 이를 삼재(三才)라고 표현합니다. 천지의 이치에 인간의 작용을 동률에 놓는 것이죠. 재(才)란 재료, 다듬어진 나무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천지인의 본성[性]이 보여지는 것을 재(才)라고 말한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그 본성은 신체로 드러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재(才)인 것이죠. 아침 강의에서 말한 사유의 나머지는 신체로 드러난다는 것도 떠오르는 이야기였어요~
<황리팀>
저희 조는 크게 역의 문(易之門)과 길흉(吉凶)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공자님께서는 건(乾)과 곤(坤)은 역(易)의 문(門)이라는 알쏭달쏭한 말씀을 하십니다.^^ 저희 조에서는 역(易)을 이 세상(변화)의 원리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은 하늘(乾)과 땅(坤)의 운동으로 시작된다고(門)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구절은 초월적인 신을 전제로 하지 않고 내재적인 운동으로 이 세상의 원리를 설명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성인은 왜 이 세계의 형성을 설명할 때 초월적인 것을 불러오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을 가지고 다음 시간에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두 가지의 핵심적인 힘, 건(乾)과 곤(坤)이 무엇인지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희는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이번 시간에도 길흉(吉凶)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두고 치열하게 토론했습니다.^^ 지난 시간에 저희는 길흉(吉凶)에 얽매이지 않는 삶, 정일(貞一)한 삶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에 읽은 부분에서는 “길함을 따르고 흉함을 피하며 선(善)을 행하고 악(惡)을 행하지 않게 하고자 한 것이다.”라는 부분이 있어서 혼란이 있었습니다. ‘아니, 저번에는 길흉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왜 이번에는 길함을 따라야 한다고 말하는 거야?’라고요. 저희 조에서는 이것을 개인적인 차원(수신)과 정치적인 차원(제가)으로 나누어 봐야 하는 게 아닌지 이야기 나눴습니다. 이후에 채운샘께 여쭤보니^^ 이치를 깨달은 자의 차원에서는 길흉이 없음을 알고 길흉의 얽매이지 않는 삶을 실천하지만, 성인이 우환 의식을 갖고 백성을 위해 해석을 달아준 차원에서 말하면 백성이 흉을 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스피노자의 좋음과 나쁨의 개념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좋음)과 악(나쁨)은 없지만, 우리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좋음과 나쁨의 기준은 설정할 수 있고, 그것은 삶에 유용하다고 합니다. 길흉(吉凶)의 개념 또한 좋음과 나쁨과 같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것으로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규창팀>
- ‘
만물이 서로 뒤섞이므로 文이라 하였으니(物相雜 故曰文)’ ‘
文이 합당하지 않으므로 길흉이 생겨난 것이다(文不當故 吉凶生焉)’
- ‘
역의 정(易之情)’, ‘
성인의 정(聖人之情)’, 혹은 ‘
길흉은 정에 따라 바뀐다(吉凶以情遷)’
우리 조에서는 文과 情이 나오는 구절들이 어떤 맥락에서 쓰였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했습니다. ‘
만물이 서로 뒤섞여 있는 것이 文’이라고 하는 것은 옥의 무늬처럼 각각의 다양한 띠들이 서로 뒤얽혀 있으나 막 뒤섞여 있지 않고 고유한 형태를 지니되 그 얽힘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각각의 띠와는 다른 신비한 조화로운 무늬를 띠는 것으로 상상해보았습니다.
역의 이치(法)는 만물을 본성(性)에 따라 길러줍니다. 이에 만물들은 개체의 차원에서는 자신의 개체성을 유지하면서 살아가지만 동시에 주변의 개체들도 자신의 고유한 개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야 하므로 가깝게는 주변의 개체들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호 변형이 되는데 이렇게 개체의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동시에 주변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 그런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을 무늬(文)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
文이 합당하지 않으면 길흉이 생겨난다’는 것은 개체들이 생존을 위해 각자 개체성을 주장하다 보면 아무래도 함께 얽혀 있는 다른 개체들의 입장에서는 길이나 흉으로 드러나는 차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음양이 교대로 끊임없이 바뀌는 운동의 전체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文의 합당하지 않음이나 길흉이라는 것도 역의 끊임없는 운동성의 과정 중에서 생기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역의 정
(易之情)이나 성인의 정
(聖人之情)이라는 것도 개체의 차원에서 길 혹은 흉으로 드러나는 사건을 원래 그러하거나 그 자체로서의 실체로 보지 않고, 역의 끊임 없는 운동 과정 중의 어떤 때, 순간, 정황 속에서 개체들이 길 혹은 흉을 겪고 있음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볼 수 있습니다.
*** 5주차 (3/19) 공지 ***
* 읽을 책 : 『주역정의』 1권 <건>괘, <곤>괘입니다.
* 과제 :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읽으시면서 함께 얘기 나누고 싶은 대목을 골라 어떤 얘기를 나누고 싶은지 간략한 메모형태로 정리해주시면 됩니다. 토요일 밤 10시까지 [주역철학] 숙제방에 올려주세요. 되도록 다른 선생님들의 글을 읽고 토론에 참여하면 좋겠지요.
* 간식 : 문빈샘, 진희수샘께 부탁드립니다.
****예고해 드린대로 팀주역 이판사판 “
격정의 윷놀이” 후기입니다.
현장의 열기를 렌즈로 담기에는 한계가 있네요. 평소 대단히 젊잖으신 팀원들의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해서
몇 번이나 윷판이 뒤집어지고, 윷가락이 내동댕이 쳐지고, 드러눕는 선정적 장면들은 가능한 제외하고 게시 가능한 몇 장만 엄선하였습니다.
1. 윷판이 깔리고.. 태풍이 지나가기 전 비장함 & 풍성한 상품들
2. 시작 전 팀별 파이팅! (왼쪽부터 '會通'<서양고대팀>, '그냥 파이팅'<스피노자팀>, '寂然不動' <동양철학팀>
(<=동철팀 사진 없어 공자님사진으로 대체)
3. 본 게임 시작!
세 팀이 물귀신 마냥 서로 못 가게 잡고 잡히는 접전이 반복되다 용케 가장 먼저 이 구덩이를 탈출하신 서양고대 '회통' 팀의 우승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윷놀이가 끝이 났습니다.
겨우 한판이었는데 다들 기진맥진... 목도 마르고 얼른 맥주 한잔 마시러 갔습니다.
*Qiuz 맨 마지막 사진에서 펄쩍 뛰시는 분 누굴까요? 1. 건화샘 2. 나한군 3. 황리샘
4. 달빛마루에서 시원한 맥주타임(feat.황리사장님)
시끌벅쩍 못다한 이야기도 나누고 엄청난 안주들을 먹어치우며 즐겁게 마무리 했습니다. 팀주역의 윷놀이 맛을 보셨으니 다음에 있을 대회를 위해 팀원분들 체력 안배해 두세요. 이제 봐주는 거 없으니 제대로 붙어보자고요!
우선은 다음주에 건강히 만나요!!
후기를 보면서 우리 공부를 꽤 열심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래 격정의 윷놀이 현장을 보니, "아닌가?" 싶은 생각이 바로 드네요 ㅋㅋㅋ 잘 놀고 잘 공부한 걸까요? 잘 아프기도 하고? ㅋㅋㅋㅋ
계사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사유를 엄청나게 자극하는 것 같아요. 만물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모습을 '문'으로, 그 '문'이 합당하지 않음에서 '길흉'이 비롯되고, 그러한 세계의 실상을 '정'으로 놓고 또 역을 본받은 성인도 그렇게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걸 강조하고... 가끔씩 이러다 우주적 시야를 갖게 되나 살짝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ㅋㅋ
그날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후기입니다 역의 문앞에서 모두 어떤 격정에 휩싸여 있었떤...ㅋㅋㅋㅋㅋㅋ
만물이 섞이는 것이 문이라면, 그 뒤섞임이 합당하지 않을 때 길함과 흉함이 생겨난다는 말이 재밌네요! 뒤섞임에 질서가 갖춰져 있으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나 지만, 뒤섞임에 무질서함이 있기에 길함도 흉함이 생겨나는 것이군요! 서로 다른 코나투스를 가진 존재가 뒤섞여 있으니 길흉의 사건은 필연적인 듯 합니다ㅎㅎ 그리고 그러한 길흉이 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도 흥미롭네요! 길흉을 겪는 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또 강조하는 듯 합니다-!
격정의 윷놀이를 즐겁게 하고, 한 주도 잘 쉬었으니 다시 재밌게 공부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