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끝으로 2022년 주역과 불교가 마무리됐습니다~ 무엇보다 올 한해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어서 매우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올해도 뻔하지 않게 괘를 읽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매시간 괘를 정리ㆍ발표해주신 정옥쌤과 황리쌤, 뒤에서 바삐 일정을 조율하며 힘쓰신 호진쌤, 일 년을 이끌어주신 채운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분들이 아니었으면 올해 공부가 이렇게 풍성할 수 없었겠죠? 뭔가 소감을 쓰는 건데, 갑자기 수상 소감 같은 느낌이네요. 간단하게 대략의 코멘트를 정리하고, 선생님들의 후기를 모으는 걸로 에세이 후기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지성 교정 작업으로서의 주역 읽기
이번에 저희가 글을 쓸 때 가장 고민이 됐던 게 바로 ‘때(時)’죠. 자서전을 쓰기 위해 자기 인생의 결정적인 때를 정해야 하는데, 그 때가 과연 무엇인지 참 모르겠단 말이죠? 그런데 이번에 저희가 에세이를 쓰기 위해 고민하고, 나누는 과정에서 확실히 ‘때’는 어디 외부에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처음에 발표한 정랑쌤, 희수쌤, 지연쌤, 저 모두 2000년 이후를 배경으로 때를 잡았지만, 어느 하나 똑같은 2000년 이후는 없었죠.
채운쌤은 사람마다 구성되는 때의 범주가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는 가족 속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직장에서 자신의 때를 구성합니다. 우리의 욕망이 투영되는 곳이 다른 만큼 우리가 구성하게 되는 장(場)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우리는 그로부터 우리가 문제가 구성되는 세계를 볼 수 있습니다. 들뢰즈적으로 말하면, 배치를 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선악을 고집하고 있는지, 사건을 어떤 인과로 해석하고 있는지를 분석할 수 있죠. 글쓰기 혹은 주역 읽기는 이러한 배치로부터 도주선을 그리는 실천으로서 유효합니다. 글쓰기는 우리의 습관적 사고를 의심하고, 새로운 언어와 용법을 발명하는 과정이죠. 좀 다르지만, 주역 읽기는 하나의 괘가 어떻게 다면적인 것을 동시에 담지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상황을 지시하는 괘명이 때로는 그 상황을 능동적으로 맞이하는 실천이 되기도 하죠. 자신에게 익숙한 단일한 관점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게 우리의 경험이라면, 글쓰기와 주역 읽기는 해석의 분열을 경험하는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작업에 완성되는 순간이나 끝나는 지점은 따로 없습니다. 그러나 이는 곧 시작하기 위한 조건 출발점이 따로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스피노자가 <지성교정론>에서 제시했던 것처럼, 우리가 이미 발휘하고 사용하고 있는 지성을 어느 정도로 더 활발하게 발휘하고 정교하게 사용할 것인지가 윤리적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의 괘를 얼마나 다양하게 읽을 수 있을까요? 이건 또 내년 공부에서 실험해보죠. ㅋ
고독해야 만날 수 있다
하나의 때를 읽는 게 자신의 실존을 읽는 일과 무관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면, 이제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나의 실존을 이해하기 위해 내가 처한 때를 구성하기 위해 끈질기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사람, 가르치는 교사, 영화를 찍는 감독 모두 각자의 실존에서 비롯된 질문이 있죠. 공부하는 사람은 쓰기와 앎이 무엇일 수 있는지, 영화 감독은 자신의 작품이 그림, 사진과 무엇이 다를 수 있는지, 교사는 무엇을 가르칠 수 있는지 등 실존에 따라 질문도 다르게 구성됩니다. 우리는 내가 어떤 실존에 처해 있는지 봄으로써 질문을 구성하고 사유 역량을 촉구할 수 있는데요. 저는 결국 그게 자기 기질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채운쌤은 부처님처럼 해탈한 경지에 이르지 못한 이상, 대체로 기질을 바꿀 수 없다 하셨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질에 휘둘리기보다 기질이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자기만의 독특한 실존을 구성하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 자신의 기질을 분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디테일한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 큰 그림을 놓치는지 아니면 너무 큰 그림만 좇다가 디테일한 걸 놓치는지 등 자기 기질이 대략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는 논어를 읽으면 알 수 있죠. 공자의 제자들에 대한 평가나 일상적 모습에서 대략 이 인물이 어떤 기질인지 잘 보이니까요. 아마 글쓰기도 우리 자신의 기질을 분석하는 대표적 실천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이번에 현정쌤께서 쓰신 에세이를 보며 우리는 현정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새롭게 알게 됐죠. ‘내 손을 거치지 않은 우리 학교 대자보는 없다!’ 하신 자보 현정쌤의 모습은 지금의 수줍어하시는 모습에서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느 쪽이 현정쌤의 기질인지 바로 알 수도 없고, 둘 다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글을 쓰고 나눔으로써 기질을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 글쓰기가 현재적(혹은 현행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인 듯합니다. 객관적 과거, 예측된 미래 같은 것보다는 나의 기질이 무엇일지를 탐구하는 것, 나아가 지금 기질을 어떻게 발휘하고 있는지를 보다 분명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죠.
한나 아렌트는 “고독해야 만날 수 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는데요. 사실 이 말은 듣기만 해서 잘 모르겠네요. ^^;; 다만 이번에 확실히 선생님들께서 진지하게 고민하신 덕에 에세이를 나누는 시간이 뜨거울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깊이 고독해지는 것, 더 뜨겁게 만나는 건 내년에 시도해보죠!
그럼 선생님들의 에세이 소감을 덧붙이는 걸로 후기를 마무리할게요~
에세이 소감
장장 12시간을 함께한 우리 샘들 대단하십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 코멘트에서 제가 간과한 지점들을 다시금 생각해 보는 겨울이 될 것 같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습니다~^^
붓다,공자,예수를 쓸 때도 그랬지만, 이번에 자기 삶에 대한 평전을 쓰면서 대체 이게 가능한 건지, 무슨 의미가 있는 건에 대한 회의감이 컸던게 사실입니다. 그래도 미션이니 적당히 꿰맞춰서 구색이나 갖춰야겠다는 마음이었는데, 뭐든 쓰면서 보니 나를 둘러싼 여러 힘들을 관통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거며, 그 속에서 내가 해 볼 수 있었던 거며 놓쳤던 것들을 나름 최대치의 빈 마음으로 들여다 보려고 노력한 것 같습니다. 이런 것도 주역을 완하는 또 하나의 방식이겠거니 싶었고요. 1년 샘들과 함께 공부하고 글 읽으면서, 샘들 글 속에 제가 들어 있다는 것과 제 글 속에 샘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에 새삼 놀라게 되기도,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올 한해 감사드리옵고, 내년에도 믿고 나아가는 한 해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애쓰셨습니다!!!
주역을 공부하다 보니 샘들도 만나고 샘들 덕분에 1년동안 함께 울고 웃으며 즐겁게 공부하고 무사히 끝낼 수 있었는 것 같아요. 마지막 에세이 끝나고 후토크 제대로 못하고 헤어져 넘넘 아쉽네요ㅠ 건강하시고 또 뵈어요!
선생님들의 진솔한 고뇌와삶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선생님들과 진실한 소통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종강었다는게 아쉽습니다. 다시 만나서 보다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마무리 인사와 새해 인사를 함께 드립니다.
일년동안 공부하면서 팀 주역쌤들 덕에 어려운 주역을 꾸역꾸역 이해하려고 애쓰며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시간에 끝까지 함께 마무리 못 해서 너무 아쉬웠어요. 중간에 저희 집에 일들이 있었지만 쌤들의 도움으로 끝까지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해요. 한 해 마무리 잘 하시고 건강하세요.
‘머릿 속에 정리해놓은 인과관계로 글을 썼으며 답을 향해 가는 글이다. 관계에 대한 고민을, 때에 대한 고민을 여러 각도에서 해 보았으면 무언가 달리 보이는 지점이 있었을 것’이라는 채운샘의 평을 들었습니다. 제 문제를 갖고 주역을 들여다보는 힘이 많이 많이 부족하네요. 그래도 1년 동안 팀주역 샘들 서로들 열심히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면서 여기까지 왔다고 믿으니 한편으로 뿌듯함도 있습니다. 새해에도 같이 만나요^^
올해 마지막 후기를 계속 들여다보며 읽고 또 읽어봅니다. 올 한해 나의 주역 읽기가 과연 '도주선을 그리는 실천으로서, 습관적 사고를 의심하고, 새로운 언어와 용법을 발명하는 과정'으로서의 그것이었나를 생각해 보면서요(ㅜㅜ). 그러믄서 살짜기 또 내년한테 떠넘겨보고 싶은 생각이 이는 걸 어찌할 수 없네요. 그래도 우리에겐 서로 믿고 따르는 동학들이 있으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해봅니다. 공지 올리시느라, 반장님들 고생 많으셨다는 생각이 새삼 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