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현대 철학팀은 1, 2학기에 스피노자를 읽는데요. 모두 어디선가 스피노자를 들었던 덕분에 헤매는 과정을 꽤 즐길 수 있었습니다.^^ 여러 재밌는 질문들을 메모로 공유했는데, 다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대략 코나투스, 신과 양태, 무한과 유한을 두고 얘기를 했던 것 같아요.
신과 양태, 무한과 유한
먼저, 에티카는 <신에 대하여>로 시작합니다. 스피노자의 혁신은 신을 새롭게 해석해낸 데 있는데요.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실존을 위해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 자기원인에 의해서만 존재합니다. 이는 자신이 만들어 낸 피조물을 보고 “보기 좋았다”라고 하는 인격을 걷어내는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인간이 노력해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죠. 어떤 짓을 해서 신의 마음이 위로가 되거나 상한다면, 그건 완전한 신이 아니라 너무나도 연약한 신이겠죠. 스피노자는 애초에 그런 신은 없다고 말하면서, 양태인 우리가 그동안 구속되었던 모든 도덕으로부터 벗어날 길을 열어놓습니다.
철학적으로 이는 초월적 신을 무너트리고 내재적 세계를 그리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재적 세계는, 주역의 언어를 빌리면 무시무종(無始無終)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시작과 끝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는 세계, ‘왜’가 성립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끊임없이 낳고 낳는 작용만 있고, 개체의 실존에 대해서는 ‘어떻게’만이 물어질 수 있는 세계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무한이 무한과 관계하고, 유한이 유한과 관계한다면, 여전히 신과 양태 사이에 어마어마한 심연이 있는 게 아닐까요? 일차적으로 신하적 구도를 벗어던지긴 했지만, 그렇다면 개체의 능동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토론에서 막혔는데요. 채운쌤은 개체가 자신의 실존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무한을 부분적으로 표현한다고 하셨죠.
인간의 지성은 사유 속성과 연장 속성 두 가지를 지각합니다. 우리의 행위는 관념과 몸짓의 형식으로 나타나죠. 여기서 모든 관념은 ‘신의 지성’과, 몸짓은 운동과 정지와 무관할 수 없습니다. 모든 관념은 지성적이고, 몸짓은 운동과 정지의 비율로 출현하죠. 즉, 유한양태의 실존 덕분에 무한양태의 작동이 성립합니다. 이는 신과 양태의 관계로도 드러납니다. 모든 개체의 실존을 제외하고 발휘될 수 있는 신의 역량 같은 건 없습니다. 모든 게 역(易)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주역의 사유처럼, 일어난 모든 것을 통해서 신의 절대적이고 완전한 역량과 실존이 표현됩니다. 아직 개체의 능동성, 윤리적인 지점을 충분히 얘기하지는 못했지만, 코나투스와 독특한 실재를 통해 조금은 단서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나투스, 독특한 실재
스피노자는 모든 개체는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합니다. 이 노력을 ‘코나투스’라고 하죠. 여기서 ‘자신을 보존’한다는 것이 선험적 자기가 있다는 것인지, 모든 개체의 노력은 결국 이기주의로 귀결되는 것인지가 질문이었죠. 토론에서는 모든 개체는 독특한 실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범위가 집단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 ‘자기’는 ‘열려 있고’ ‘보존’은 ‘확장될 수 있다’는 뉘앙스로 읽을 수 있다는 얘기를 했죠. 채운쌤은 코나투스를 통해 모든 개체는 어떤 경우에도 ‘소멸’이 아닌 ‘지속’을 욕망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죠. 그리고 지속은 베르그손이 말한 것처럼 계속보다 공존에 가깝습니다. 개체가 자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힘 관계가 반복돼야 하죠. 즉, 개체 이전에 개체를 형성하는 힘이 선행합니다. 코나투스는 이 힘들 속에서 개체를 종합하는 무의식적 활동이라 할 수 있고요. 우리는 이 활동의 결과로서 일시적으로 실존합니다.
스피노자가 개체를 ‘독특한 실재’라고 말할 때도 관계 맺음의 결과로서의 개체를 의미합니다. 독특함은 선험적으로 정해진 본질로부터 비롯되는 고유함이 아니라 복합적 관계 맺음의 결과로 인해 형성됩니다. 즉, 모든 개체가 자신의 독특함을 유지하거나 형성하기 위해서는 외부와의 관계 맺음에 기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최소한의 능동성으로 지속되고 있는 실존을, 어떻게 더 다양한 것들과의 연관 속에서 구성해 나갈 것인지에 따라 보다 능동적일 수 있겠죠.
다음에는 <윤리학 수업> 6강까지 읽어 옵니다. 그리고 3주 뒤에 다시 채운쌤의 정리 강의가 있는데, 그때까지 얘기들을 좀 더 정리해보죠. 채운쌤은 스피노자와 주역을 바로 연결할 수는 없지만, ‘신과 양태’-역(易)과 인(人)의 관계 같은 걸 비교하면서 읽다 보면 보이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하셨죠. 꽤 재밌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코나투스는 자기보존 노력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생명체는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다세포에서 어류, 양서류, 파충류, 포유류, 영장류로의 변용 과정을 거치게 되었지요. 그리고 마침내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상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명체의 진화 과정 역시 자기보존을 위한 '지속' 욕망의 일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