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주역 읽기 4-4주차(10/29) 공지
우리 시대를 좀 더 돞아볼 수 있는 괘들이 4학기에 많이 배치되어 요즘 아름다운 괘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지난 주 리괘와 겸괘도 그렇고 이번 주 읽은 수풍정괘와 화산려괘도 그 괘를 구성한 마음의 면면을 읽을 수 있어 더 좋은 거 같아요. 수풍정괘는 함께 사는 자들의 공동체성에 기반하고 있지만 길 떠난 누구라도 우물을 사용할 수 있기에 자연의 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인간을 넘어 새들도 먹을 수 있도록 우물을 가꾸는 데까지 인간의 덕이 나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만물과 함께 사는 인간을 놓치지 않고 있구요. 려괘는 우리가 존재적으로나 사유적으로나 자기 영토를 떠나야 사는 존재라는 걸 말해줍니다. 성대한 풍괘 다음에, 많은 것을 쌓은 대축 이후에, 모두 길 떠남을 선택하고 있죠. 도덕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이야기가 우리 존재를 살린다는 사실이 역에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망각하고 사는지 주역의 괘들이 리트머스지처럼 보여주네요.
에세이는 잘 되어가시는지요? 벌써 4주차라 주제와 괘 확정하고 개요를 서서히 구성해 가야 할 때입니다. 6주차에 개요 가지고 채운샘 코멘트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주차에 초고 나오면 한 번 더 코멘트 받도록 하지요. 글에 대한 저항도 있고, 글쓰기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스텝을 밟아가며 글을 완성해 보는 경험이 무슨 공부를 하던 힘이 되겠지요.
다음 주 읽을 괘는 : 뇌수해괘, 풍수환괘
에세이 : 주제와 괘 확정(취합해서 샘께 드릴 예정), 정해진 분은 자료 준비.
간식: 황리, 정옥
규창조
수풍정괘와 화산려괘는 정주민의 관점에서 쓰인 괘가 아닐까? 수풍정 괘의 우물(井)은 정착된 마을에 존재하는 필수적인 산물이며, 려괘에 대한 전반적 느낌은 떠도는 것에 대한 최대한의 조심스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노마드시대라고 부르며, 우리에게는 노마드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정주적 사유가 미래적 사유가 될 수 있을까? 노마드 시대에는 마을이나 나라는 바꿀 수 있지만, 공유 가능한 것, 우물은 바꿀 수 없다(不改井). 현실 속에서 중심은 공유 가능한 무엇이어야 한다.
수풍정괘에서 우물은 누군가의 소유나 사적 재산이 아닌 공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우물을 공유한다는 것은 무상무득(无喪无得)하고 왕래정정(往來井井) 한다는 의미이다.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사적 소유가 아닌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오고가는 이가 모두 사용하는” 우물인 것이다.
또한 우물은 변하지 않는 항상성이 중요하다. 우물이 항상성을 유지하려면 끊임없이 사용되어야한다. 이용되지 않는 우물은 정리불식, 정곡석부, 정석불식하게 되어 우물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다. 우물은 지속적으로 써야 깨끗해지며 쓸수록 솟아난다. 우물을 만들고 가꾸는 데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 우물은 겉으로 나타나는 강과 같은 지표수가 아니기 때문에, 땅속에 흐르는 물을 겉으로 끌어올려 벽돌을 쌓는 등의 수고가 필요하다. 사람의 노력이 있어야 우물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돌보고 써야 깨끗한 물이 항상 차올라 그 항상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항상성이 유지되는 우물이 있다 하더라도, 시원한 우물물을 마시려면 두레박이 깨지지 않아야 하고 두레박줄을 우물에서 끌어올려야 한다.
화산려괘를 읽다보면 려(旅)가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그저 마을에서 쫓겨난 유랑민이거나 떠돌이, 혹은 상인일 수도 있지만, 춘추전국시대에 전국을 유랑하던 유세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구삼효를 살펴보면서 종복을 가진 유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듬) 그렇다면 정치에 뜻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목적이 있는 유랑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유랑과 비슷한 의미로 유목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유랑과 유목은 구분지어 생각해야한다. 유목이 방목지를 두고 순환하는 구조라면 유랑은 정해진 목적지가 없이 정처없이 떠도는 것일 수도 있다.
려(旅)는 떠도는 나그네로서, 손님으로 귀속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사회와는 다른, 바깥의 리듬을 가진 존재인 나그네는 가서 살아남는 것으로 충분할 수도 있다. 려가 소형(小亨)한 것은 육오효가 음의 역량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려의 정(正)은 나그네의 바름이며 음효의 중정함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성괘에서 리괘의 가운데는 음효로서 무나 허로 본다. 모든 것을 연결할 수 있는 비어있음이며 창조적인 여백이다. 따라서 려괘의 바름은 음효의 중정함이 가진 특수한 바름이라고 할 수 있다.
황리조 후기
이번주는 수풍정, 화산려 괘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물을 뜻하는 정괘와 유랑을 뜻하는 려괘는 언뜻보면 너무 다른 괘 같습니다. 이 두 괘를 어떻게 연결지어 생각해 볼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인간은 물이 꼭 필요합니다. 마시지 않으면 살 수가 없죠. 수도시설이 없는 옛날에는 천이나 샘에 가서 물을 가져왔을 겁니다. 마을이 샘이나 천 가까이에 있기 어렵기 때문에 인간은 지하수가 흐르는 땅을 깊게 파서 우물을 만들었습니다. 우물을 만들면 이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수시로 오고 갑니다. 괘사에서는 井, 改邑不改井, 无喪无得, 往來井井(우물은, 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으니, 잃는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없으며, 오고 가는 이가 모두 우물을 사용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우물은 자리를 지키며 거기서 터전을 일구는 정주민을 삶을 보여주는 괘입니다. 반면 화산려괘는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기 점쳐서 나왔던 괘라고도 하는데 자기의 터전을 떠나는 괘로 볼 수 있습니다. 머묾과 떠남. 인간의 삶을 보면 학교, 직장, 거주 등 어딘가 접속하고 익숙해져서 떠나고 다시 다른 곳에 정착함의 반복입니다. 삶도 태어나서 살다가 죽음으로 떠납니다. 머묾이 있기에 떠남도 있고, 떠남이 있기에 어디에 정착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두 괘는 서로를 함축합니다. 또 우물이 있는 마을에 늘 같은 사람들만 있으면 그 공동체는 유지되기 힘듭니다. 새로운 유랑민들이 오고, 또 누군가는 공동체를 떠나며 공동체는 유지됩니다. 그런점에서 수풍정과 화산려는 공동체와 개체로 읽어도 좋겠다는 황리쌤의 말씀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물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워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이것을 단전에서는 “改邑不改井”, 乃以剛中也,(“고을은 바꾸어도 우물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은 강하면서 중도를 이룬 방도로써 하기 때문이다.)로 이야기합니다. 우물이 머물면서도 늘 새로운 물이 퐁퐁 솟을 수 있는 것은 양효가 끊임없는 지속성으로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려괘의 단전을 보면 려괘의 중은 음효입니다. 彖曰, “旅, 小亨”, 柔得中乎外而順乎剛, 止而麗乎明, (“유랑은 조금 형통하다”고 한 것은 유함이 밖에서 중을 얻고, 강함에 순종하며, 합당한 위치에 멈추고 밝은 빛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때의 유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유연성과 적응력으로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떠나서 낯선 곳에 이르렀을 때는 강함으로 자신의 것을 고수하면 위험합니다. 여행자가 낯선 곳의 풍습과 문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려면 유연함이 필요합니다. 이 유연함과 적응력은 려괘 앞의 풍요로운 풍괘에 대한 미련과 집착을 버릴 때 가능합니다.
려괘에 대해서 선생님들과 다양한 상황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역사적으로는 디아스포라(자의적이나 타의적으로 기존의 살던 땅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는 것), 동물이 환경의 변화로 자신의 터전을 떠나서 가야하는 것, 인간의 삶으로 보자면 나이에 따라 자신이 익숙한 습관이나 하던 행동을 다른 것으로 바꿔서 해야 하는 것 등 다양한 상황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정옥조
困卦를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아래로 내려와 정괘로 받았다고 한다(서괘전). ‘困의 위에서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째든 우물에 두레박을 아래로 내려 물을 길어 올리는 것으로 해결한다는 의미일까? 하는 궁금함으로 시작하여 함께 井卦를 살펴보았다.
괘사에서부터 두레박이 깨지지 않도록 해야 함을 알려준다. 우물을 쌓고 물을 담을 수 있는 두레박을 만들어 물을 올리려고 하나 마지막에 두레박이 깨져버리면 결국 물은 쓰일 수 없으니 모든 과정을 마칠 때까지 성실하게 해야 함을 알려준다고 보았다. 1년 4학기의 공부를 마무리 하면서 마지막 에세이까지 성실하게 임하라는 당부처럼 들리기도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 우물에 이물질이 쌓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치우고 가꾸지 않으면 아무도 찾지 않는 우물이 되니(정니불식 구정무금) 항상 가꾸어(정추무구) 시원한 물을 먹을 수 있도록(정발한천식) 하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우물은 무상무득 즉 얻고 잃음도 없음을 넘어 쓸수록 더욱 채워진다는 것이다. 성경의 오병이어가 생각나기도 하는데, 어째든 쓸수록 더욱 생긴다는 것이 더 많은 고민을 해보게 하는 것 같았다.
뇌화풍의 풍성함 끝에 갈 바를 잃어버려 旅괘로 이었다고 한다. 마치 오늘날 넘치는 정보속에서 오히려 선택의 어려움을 겪는 것과 유사한 것 같다는 질문으로 나그네의 道인 려를 보았다. 오늘날은 환경의 급작스런 변화나 아니면 취업을 위해서도 거주지의 이동을 하는 경우가 빈번해 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기존의 것에 더 이상 머무리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 시도하는 각자 떠도는 나그네 일 수 있고, 그런 우리들에게 려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다는 의견에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려괘 내내 나그네는 盛한 지위에 오르면 결국 어렵게 얻은 집, 충직한 종, 소, 민심 등을 잃어버린다고 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盛하여 풍족하면 아쉬움이 없다고 여겨 머무르려 하고 떠나려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일 거라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나그네에게 왜 ‘盛함’이 이롭지 않은지 더 논의를 해 보아도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旅之時義 大矣哉라고 하여 려의 때와 義가 크다고 한다. 거저를 잃어버리고 방랑하는 나그네의 때이어서 힘들고 어려운 時인 것 같지만오히려 지혜로운 자에게는 훌륭한 일을 할 때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