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괘를 <서괘전>순서가 아닌, 주제나 관계에 따라 묶어 읽는 재미가 쏠쏠하지 않은지요(^^). ‘서괘전’의 순서도 물론 그 흐름의 맥락이나 연결 관계가 재미있긴 한데, 이런 방식의 읽기는 보다 적극적인 해석의지를 요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수풍정 괘와 화산려 괘를 ‘정주’와 ‘이주’의 관계 속에서 읽은 것이 대단히 흥미로웠는데, 그동안 막연히 비슷한 괘라고만 생각하고 넘어갔던 뇌수해 괘와 풍수환를 맞대면시켜 읽는 과정에서 또한 그간 생각못했던 새로운 의미와 해석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표면적으로 어떤 연관도 없어 보이는 괘들을 마구잡이로 엮어서 읽는 것 또한 경이로운 경험을 가능케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역시, 주역 읽기의 길은 여러 갈래로 우리 앞에 열려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규창조
공통된 괘로 구성된 두 개의 괘를 볼 때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볼 수 있을지 고민되는데요. 이번에 읽은 뇌수해괘와 풍수환괘도 그랬습니다. 공통적으로 아래가 감괘(坎卦)로 구성돼 있는데요. 이를 동일한 ‘감괘’가 다른 배치 속에서 전혀 다르게 작동한다는 것에 주목해서 봐야 할지, 아니면 다른 두 개의 괘 속에서 ‘감괘’의 속성을 이끌어 내야 하는지 고민됐습니다. 일단 토론을 하면서는 공통된 감괘의 속성보다는 ‘감괘’가 다른 소성괘와의 관계 속에서 다르게 나타난다는 것에 주목하면서 읽었습니다. 뇌수해괘에서 감괘는 ‘풀어내야 할 어려움’인 반면, 풍수환괘에서는 문제상황인 동시에 잃지 말아야 할 내면의 진실함이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두 괘의 기본적인 상황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습니다.
해괘는 문제 상황이 풀린 것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풀리는 문제상황’은 우리가 풀렸으면 하는 고난만을 의미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주역에서는 항상 인간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것을 경계하죠. 단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해’를 참고하면, 마치 우레와 비가 내리고 열매와 초목이 자라나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엉키고 막혀 있는 것을 풀리는 사건이 ‘해’입니다. 꼭 철학적으로 사유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어떤 어려움 정도는 삶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일한다거나 공부하기 위해 어떤 약속을 한다든가 등등 감괘가 의미하는 빠져 있는 상황을 자발적으로 견디죠. 그런데 해괘는 그런 것을 풀어버립니다. 해괘의 이전 괘인 수산건괘의 어려움도 단순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고난이기만 한 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신중함을 강제하는 어려움이기도 했죠. 그런데 해괘는 그런 신중함의 조건으로서의 어려움을 강제로 풀어버립니다. 계속 일해야 하는데 해고당하는 상황도 해괘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죠.
해괘가 문제 상황이 풀린 것에서 출발했다면, 환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정치적으로는 이를 민심이 흩어지는 상황으로 비유했었죠. 그러나 환괘의 흩어짐은 새로운 결집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괘사에 나오는 ‘종묘를 세우는 게 이롭다’, ‘큰 강을 건너는 것이 이롭다’ 구절들은 공동체적으로 이 어려움을 전유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죠. 그러니까 기존의 관계들이 해체되는 가운데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라는 것이죠. 효사에서도 이런 맥락에서 비응(比應)을 강조하면서 어떤 상황에서도 누군가와 함께해야 한다는 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와 함께하는 것’에서 역량의 차이를 볼 수 있는데요. 공영달은 ‘소인은 자기 몸 하나 의탁할 수 있는 관계를 찾는 반면, 군자는 소인까지도 품을 수 있는 거대한 비전을 세운다’고 해석했죠. 그러니까 똑같이 함께하더라도 소인은 어려움을 어떻게든 면하기 위해 기존의 관계를 반복하지만, 군자는 자기 진실함을 가지고 새로운 관계를 실험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주역을 공부할수록 팔괘가 점점 더 알쏭달쏭해지는데요. 다음에는 소성괘의 속성을 이해할 수 있는 쪽으로도 토론을 좀 더 이어가 보겠습니다.
황리조
주역 책을 발제하고 함께 세미나를 하며 열심히 풀었던(解) 뇌수해와 풍수환 괘들이 (渙)처럼 머리속에서 흩어져버렸다. 다음 주 택지췌를 기다리며 모으기엔 시간이 안 되니, 후기로 다시 생각을 끌어모아 보아야겠다. 우리는 기쁨을 느끼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태괘의 기쁨은 잠깐 우리에게 왔다가 어느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풀어지고(解) 흩어져버린다(渙).
풍수환 - 환은 해산하고 풀어짐, 이산 등 떠남의 뜻이 있는데, 좋은 의미(나쁜 조직이 와해될 때)와 나쁜 의미(민심이 흩어질 때)를 다 내포한다. 환괘와 해괘의 각 효사에서는 왕필, 공영달, 정이천, 주자의 다른 해석들이 더 많았다. 그만큼 주역은 각자 어떤 관점에서 보는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본다. 환괘에서 내괘 물 위로 외괘의 바람이 불어 물결이 출렁이는 상이 서핑을 떠올리게 하며, 파도의 흔들리는 상 속에서 중심을 계속 바꿔가며 균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한다. 이렇듯 만물이 흩어지듯이 민심이 흩어질 때 군자는 사당을 세워 백성의 마음을 모으려 한다.(王假有廟는 王乃在中也) 소인은 난을 만나면 달아나 도피하려 하지만, 큰 덕이 있는 자는 功을 세우고 어려움을 해산하며 험함을 풀게 되어 형통하다고 한다. 功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나누었는데, 나무를 타고 물을 건넌다는 것은 어려움 앞에 도망하지 않고 직접 부딪힌다는 게 功이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았다. 단전에서는 구이가 강으로 와서 안에 거하여 험함에 곤궁하지 않고, 육사가 유로서 밖에서 지위를 얻어 위(구오)와 함께하니 이 때문에 험난함을 해산하고 풀어서 형통하며 대천을 건넘이 이롭다고 한다. 이는 육사가 지위를 얻고 바름을 밟고 있어서 구오와 뜻이 같기에 가능하다.(剛來而不窮 柔得位乎外而上同)(역사적 사례로 한무제가 유모를 엄한 죄로 다스리려 할 때 동방삭이 중재함) 초육은 해산하는 처음에 처해 구이의 건장한 말을 얻어 험난함을 피할 수 있다. 구이는 강중의 재질이 있고 초육은 유순하며 구이와 초육이 모두 응이 없어 친하고 가까워 서로 求한다. 이처럼 어려운 시기에 초육과 구이, 육사와 구오가 서로 힘을 합해 험난함을 이겨나가는 것을 보니 우리도 어려움이 닥칠 때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서로 협력해 ‘이섭대천’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정옥조
解괘와 渙괘는 그 뜻에 있어 “어려움을 푼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왕필과 공영달에게 있어서는. 이는 아래의 坎괘와 관련이 있다. 坎은 험난함이 되니, 解괘는 卦體가 험난함의 밖에서 움직여 험함을 면하므로 어려움이 풀리며, 渙괘는 험난함을 바람으로 흩어버려 어려움을 해산하고 험함을 푼다. 물론 渙괘의 풀림에 대한 정이천의 생각은 다르다. 정이천은 오히려 渙을 민심이 離散하고 흐트러지는 곤란의 때로 푼다. 따라서 괘사 “王假有廟”와 대상전 “享于帝立廟”의 뜻과 효사의 해석이 달라진다. 환을 어려움이 풀리는 것으로 보는 왕필, 공영달은 王假有廟와 享于帝立廟가 환산하여 어려움이 없는 때에 감사의 제향을 올리는 것으로 본다면, 이천은 흩어진 민심을 모으기 위한 제향으로 보는 것이다. 어떻게 보든 渙괘에서 제사는 매우 중요한 것임엔 틀림없다. 고대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어려운 시기에는 물론이려니와 태평의 시기에도 백성의 마음을 모으고 통치자의 위엄을 보여주는 특별한 퍼포먼스였다.
그렇다면 어려움을 푸는 데 있어서 解와 渙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먼저 解는 때 자체가 풀리는 때이다. 모든 것이 풀리는 좋은 흐름을 타고 있으므로 3효 같이 쓸데없이 애먼 짓 하지 말고 이치에 어긋나지 말고 소인을 멀리하는 등 잘 행동하면 허물이 없다. 그렇다 해도 모든 것이 다 잘 풀리는 것은 아닐 테다. 그렇게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빨리 해결해야 한다. 풀리는 때라고 손 놓고 있지는 말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겠다. 반면 渙은 나룻배를 타고 어려움의 강을 건너는 노력이 필요하다. 더구나 상제께 제사를 지내는 정성과 지극함이 요구된다. 즉 어려움을 풀려고 하는 자의 적극적인 행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초효를 제외한 모든 효에서 쓰이는 渙은 어려움을 흩어버리는 각각의 행위가 된다. 시도 때도 없이 험함에 빠지고 어려움에 처하기 쉬운 우리 모두에게 解괘와 渙괘는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제시해 주는 해석의 여지가 많은 괘로써 읽을 수 있다. 이렇게 解괘와 渙괘는 존재론적으로 읽을 때 그 의미가 더욱 풍부해지는 괘가 아닌가 싶다.
글쓰기 5주차에 접어듭니다. 지난 시간에 조별로 각자의 토론 주제와 핵심 괘를 정해서 제출했는데요, 여전히 글 길이 보이지 않아 넋놓고 망설이거나 과감하게 방향을 바꿀 결심을 하고 계시는 분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발자국씩 나아가야 한다는 거! 오늘 내일 중으로 자판 앞에서 생각들을 굴려보시고, 지난 시간보다는 좀더 영글어진 결과물들을 갖고 오셔야겠습니다. 문제 의식이 분명히 담긴 서론에, 핵심 괘를 중심으로 한 전체 개요를 정리해오시는 걸로요!!! 조만간 채운 샘의 중간 점검이 있다는 거, 잊지 마시고요!!! 다음 주에는 모임의 괘, 천화동인과 택지췌 괘를 읽습니다. 또 어떤 예상지 못했던 즐거운 촉발을 우리에게 선물할지 기대됩니다. 간식은 경순, 수미 샘이십니다. 모레 뵙겠습니다.
감정도, 소유도, 사람에게도 공평함보단 집착이 쉬운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두 괘를 보아서 좋았습니다. 정 반대의 해석도 가능한 괘이기에 해석 역량만큼 보이는 괘이기도 하죠.
에세이는 6주, 9주 코멘트 받으면 될 거 같은데요, 그 때까지 좀 더 세밀하게 논리를 만들어 보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