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공지가 전날에 올라오다니... 이거 참 죄송합니다요. 그래도 뭘 읽어야 하는지, 뭘 해와야 하는지는 다 알고 계시죠...?ㅎㅎ;;
다음 시간에는 에세이 개요를 작성해 오셔야 합니다. 각자의 문제의식이 드러나는 서론과 진행이 드러나는 목차, 그리고 어떻게 괘를 해석하고 문제와 연결할지가 보여야 합니다. 그동안 조에서 토론하셨던 것들을 잘 종합하시면 되겠죠? 모두 파이팅입니다~!
읽을 괘 : 천산둔괘, 수산건괘
간식 : 영주쌤, 은정쌤
정옥조
天火同人卦와 澤地萃卦는 모두 이질적인 존재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괘입니다. 공동체의 고민이 담겨 있지만 두 괘는 상반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인괘는 하늘과 불이라는 양강한 힘이 하나의 음을 중심으로(육이효) 모이고, 췌괘는 땅과 물의 음기운이 짝을 이루는데 이들을 통솔할 구사 구오의 양강한 힘이 기둥이 되는 모양새이죠. 사람들이 모였을 때 중요한 것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어떻게 마음을 모을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 됩니다.
췌괘는 우발적인 만남인 천풍구괘 이후에 모여진 불특정 대중들의 모임으로 볼 수 있지요. 췌괘에서 마음을 모으는 기제는 제사입니다. 제사가 종합예술이라고 했는데, 의례와 악을 바탕으로 춤, 먹거리, 나눔까지,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물론, 함께 살아가야 할 지평이 어디에 발 딛고 있는지 인식하도록 하는 역할을 합니다. 향방을 알 수 없는 인심을, 진실과 공경하는 마음으로 모아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췌괘에서 이를 실행하는 자가 대인(大人)입니다. 대인은 일의 시종을 알아보는 선지자로, 모인 자들이 어떻게 살 것인지 길을 밝혀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 아직 뜻이 다 모아지지 않은 대중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일을 고려해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지요.(除戎器, 戒不虞),
췌괘가 제사를 방도 삼았다면, 동인괘가 방도 삼은 것은 들(野)입니다. 野는 동일성이 아니라 타자성을 전제한 장소입니다. 이질성과 차이가 다 드러납니다. 군자는 여기서 같고 다른 사물을 분별한다(類族辨物)합니다. 이것은 차등을 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냄으로써 모든 物들이 우주 안에 본성으로 자리(位)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죠. 이질성의 긍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野에서 함께 한다면 진실로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同人)이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죠. 췌괘에서는 ‘大人’이 모으는 자가 되는데, 동인괘에서는 ‘문명’으로 함께합니다. 동인괘의 문명은(文明以健) civilization이나 문화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공영달은 文에 대해 ‘세상은 文이라는 문장 제도가 잘 갖추어져 밝게 빛난다’라고 했는데, 이 때 문장은 예악법도를 말하는 것이죠. 군주가 예악형정을 잘 살펴서 세상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그런데 한 개인에게 文이란 현실적인 일들의 이치 구조를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문명으로 같이한다는 것은 서로 이질적이지만 우주의 원리(理)를 인식하는 역량을 바탕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은 늘 딜레마에 빠지게 하지요. 그러나 타자는 그 자체로 ‘나’의 실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에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나의 삶에 깊이 개입돼 있습니다. 우리가 두 괘를 통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모든 실존이 이질적인 것과의 접촉을 기반으로 유지되는 것이라면, 다른 존재들과의 유연하고 긍정적인 만남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왜소하지 않게, 긍정으로 이끌 것임을 말하고 있는 점이라 할 것입니다.
규창조
모임의 때, 누구와 어떤 방법으로 응할 것인가?
천화동인과 택지췌 두 괘는 어떻게 모이고 응(應)할 것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상괘가 건괘, 하괘가 리괘인 동인괘는 양들가운데 육이효가 중심이 되어 하늘에 응하는 모습(柔得位中而應乎乾) 을 두고 동인이라 표현한다. 이것은 건(乾)의 모습처럼 빠짐없이 두루,항상스럽게 하는 것을 뜻하는데 그것을 실행하는 공간적 이미지가 들(野)로 나타난다. 함께하는 것은 무엇보다 들에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동인우야). 괘사의 리섭대천과 효사에서 군대를 쓰는 상황들을 보면 그것이 꼭 긍정적으로만 해석되지 않는데,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위험을 무릅쓰고도 들로 나가는 용기란 무엇일까 상전에는 그것을 해내는 군자의 도리가 '류족변물'에 있다고 한다. 불이 하늘을 타고 올라가듯이 들처럼 뒤섞임의 공간속에서도 물건은 함부로 뒤섞이지 않고 동류와 모일 수 있다고 한다. 들로 나가는 일은 위험과 더불어 사사로움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다. 하지만 군자가 바름(正道)을 지킨다면 함부로 섞이지도 않으면서 뜻을 함께하는 무리를 얻을 수 있다는 말. 마치 공자의 주유가 그 모습을 잘 보여주는 듯 하다. 동인괘가 자신과 뜻을 함께하는 무리를 얻는데 적극성을 펼치는 때라면 췌괘는 이미 구성된 이질적인 무리들과 함께 가야 할 방향성, 즉 비전을 중심으로 뭉치는 때를 보여준다. 그 방법이 왕이 사당을 세우고, 큰 희생을 사용한다는 것으로 표현된다. 못이 땅 위에 있는 형상을 가진 췌괘는 순함과 기쁨으로 쉽게 모일 수는 있지만 이것만 쓴다면 자칫 사사로움에 빠지기 쉽다. 같이 모여서 즐겁자고 벌이는 도박판에 분위기에 이끌려 어느새 들어가 있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구오효의 강중이응(剛中以應)한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순하고 기뻐하되 강함을 덜지 않는 것은 예측 못한 비상사태를 경계하며 늘 대비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단기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구오효 효사에는 원영정(元永貞)이 나오는데 지위가 있고 떳떳하더라도 소인들(음효)과는 그 행위가 멀리 있는 자라서 올바름이 쉽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올바름을 지켜야 믿음(信)을 겨우 얻게 된다. 이러한 원영정의 덕(德)이란 앞서 얘기한 왕이 사당을 세우고 큰 희생을 사용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황리조
함께 한다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는 요즘, ‘남과 뜻을 같이한다’는 동인괘와 ‘함께 모인다’는 췌괘는 유난히 모호했고 모호한 만큼 어렵게 읽혀졌다. 자연이 인간의 유불리를 위해 돌아가지 않듯이, ‘동인’과 ‘췌’ 역시 그렇지 않나 생각한다.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흐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치즘이나 파시즘, 군국주의, 실패한 사회주의나 자본주의, 왜곡된 종교화 등 전혀 이롭지 않은 방향으로도 흘러왔기 때문이다. 여하튼 주역에서 얘기하는 ‘동인’과 ‘췌’, 두 괘의 의미를 토론했던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본다.
우선 동인괘는 ‘세상이 막히고 단절되면 사람들이 뜻을 합쳐야 비색한 시대를 끝낼 수 있기에 비괘 다음이 동인괘가 된다’는 서괘전의 풀이처럼, 동인은 이러한 막힘의 때에 행해야만 허물이 없다. 대의라는 명분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래야만 뜻을 모을 수 있다. 사사로운 이익 앞에서 뜻을 같이 한 사람들의 말로는 대개가 좋지 않게 끝나기 마련으로, ‘오직 군자라야 천하사람의 뜻을 능히 통할 수 있다(唯君子爲能通天下之志)’고 단전은 말한다. 그 어느 때 보다 훌륭한 리더, 군자가 필요한 때이다. 이때의 군자는 ‘같은 무리를 분류하여 사물을 변별하라(類族辨物)’고 대상전은 말하는데, 바로 유족변별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군자의 역량이랄 수 있겠다. 여기서 ‘族’은 모임, 군자가 동인괘를 본받아서 만든 같은 ‘類’끼리의 모임으로, 문제는 각기 다른 욕망들을 같은 ‘類’로 묶어내는 일이다. 욕망이 다르면 기껏 모였다가도 다시 흩어지게 될 테니, 고로 만물의 실정(욕망, 개체성, 다양성 등의)을 잘 살펴 사물을 분별해서 소외됨이 없는 대동의 길로 이끌어가는 가는 것이 바로 군자가 할 일이다.
‘췌’는 사람들이 모이는 괘로, 모이고 난 이후의 예측 할 수 없는 사태를 대비한 방비를 강조한다. 동인괘가 군자의 역량을 강조하며 유족변물하라 했듯이, 췌궤에서는 군자에게 병기를 수리하여 비상상태를 대비하라고 가르친다. 무턱대고 흘러든 물처럼 무턱대고 모여든 사람들이 혼란 속에 난을 일으키지 않으려면, ‘동인’처럼 뜻을 모아야하고, 물자를 모야야 한다.
해서 문왕은 췌를 ‘왕격유묘’에 비유하며, 왕이 천하를 모으는 도를 사당을 둠에 이른다며,
큰 희생을 치르면 길하다 했다. 단전에서는 왕격유묘를 효도의 제향을 올리는 것으로, 반드시 온전히 모여야만 비로소 효향을 올릴 수 있는 것이라 했다. 큰 희생의 의미는 모여든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기쁘게 따르게 하기 위함이고, 효향이란 의례를 구심점으로 모여든 사람들에게 공동체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함은 아닐까. 이때 그 모이는 바를 보면 천지 만물의 실정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는 계사전에서도 <‘方’은 ‘類’로 모이고 ‘物’은 무리로써 나누어지니, ‘情’이 같은 뒤에야 비로소 모이고 기운이 합한 뒤에야 무리가 된다>고 말했다. 또 공영달은 만물이 모일 수 있는 것은 ‘情’이 같기 때문이니, 정과 뜻이 어긋나면 모일 수가 없으니, 모이는 바를 보면 천지만물의 실정을 알 수 있는 것이라 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다보면 제 아무리 정을 같이 했어도, 예측 못한 상황들이 연출될 수 있기에 상전에서는 이를 대비해 군자는 병기를 수리해서 미리 방비하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