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가 늦었습니다. (죄송죄송!) 바로 공지 올립니다.
<4학기 8주차 (11/19)>
* 이번주 읽을 괘: 풍산점(風山漸, ䷴
), 뇌택귀매(雷澤歸妹, ䷵
)
이제 대망의 마지막 괘 두 개만 남겨두고 있네요. 두 괘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여자들이 시집가는 괘와 관련된 것인데요. 괘사나 효사들이 우리의 현재 생각과 상반되는 것들이 많아 다른 식으로 해석해 보는 것이 어려운 괘들이긴 합니다. 정옥샘 말씀처럼 다른 괘들처럼 공통점을 묶어 엮은 것은 아니라 편하게 읽어오시고 만나서 다른 해석의 길을 내보아요.
*
간식: 현정샘과 규창샘 부탁드립니다.
* 4학기 에세이 진행: 지난주에 채운샘께 코멘트 받은 것을 바탕으로 문제의식을 선명하게 해서 서론을 써오시면 됩니다. 괘는 바뀔 수 있지만 그래도 잡은 문제의식에 적절한 괘 후보들을 가져오시면 조원들과 토론하실 수 있겠습니다.
* 혹시 저처럼 답답하신 분 있을까 해서 지난주 채운샘 공통적인 코멘트 이해한 만큼 정리해 볼게요.
- 문제를 대상화하지 말 것
자기로부터 출발하라는 말은 자기에게 있었던 일을 써라는 말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제기하는 문제가 진짜 삶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 어떻게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지 그 고리를 찾아야 그 절실함으로부터 출발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정치, 경제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으나 그것이 자신의 어떤 실존의 문제로 와 닿는지, 자신의 어떤 지점을 건드리는가가 출발점이 되지 않으면 내가 쓰는 글이 대상화가 되어버린다고 하셨습니다.
2.
문제의 원인-> 해결을 향해가는 글로 쓰지 말 것
위의 내용과 이어지는데요. 채운샘께서는 인간이 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언제나 우리를 허무함으로 데려갈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천지의 일부인 개체로 살아가는 우리가 우리의 문제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나와 동떨어진 것으로 대상화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게 나의 문제야’라고 한다는 문제 지점에서 출발하라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자꾸 내가 힘들어하는 문제나 어려움 혹은 단점과 혼동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괴롭게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대신 겉으로 문제라고 드러난 그 이면에서 나를 건드리는 미세한 욕망을 문제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저처럼 무기력해지고 유튜브에 중독된 신체는 겉으로 드러난 문제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를 실마리 삼되 이런 문제들에 골몰하느라 보지 못하거나 혹은 보고 싶지 않은 삶의 문제지점을 찾아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글을 쓰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식으로 공부가 지금 나의 삶의 문제와 딱 맞는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글을 구성해보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과정에서 공부가 깊어지는 것이지, 책을 많이 읽었거나 글재주가 좋은 것과 상관없다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이게 문제인데, 열심히 해서 이 문제가 없도록 해야겠다.’는 식으로 글을 대충 해치워버리겠다고 접근하지 말라고 재차 하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문제가 뭔지를 모른다 고 정곡을 찔러 주셨습니다.
휴! 정말 저렇게 질문을 던지면 속이 후련해질 것같긴 합니다만 저도 이번주 내내 답답하고 맴맴 돌기만 하고 있네요.ㅠㅠ
하지만 아직 우리에겐 내일이 있으니까요. 고민한 만큼 가져와서 내일 또 얘기해 봐요!
* 4학기 7주차(11/12) 후기
지난주에는 물러나거나 멈추고 주춤하게 되는 때인 천산둔(
天山遯, ䷠)괘와 수산건(
水山蹇, ䷦)괘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하괘에 멈춤(止)을 뜻하는 간괘(艮,☶)를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상괘에 어떤 괘가 놓이느냐에 따라 다른 상황/다른 때가 펼쳐집니다. 그래서 멈춤도 단순히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선다는 의미로만 해석될 수 없고, 세심하게 읽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각 조에서는 어떤 말이 오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정옥조>
이번주는 천산둔(天山遯)과 수산건(天山遯)을 배웠습니다. 천산둔 괘는 아래에서 소인의 세력이 자라나고, 그에 따라 군자가 은둔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수사건 괘는 위에 험함이 있어 두려워서 나아가지 못해 그치는 시기를 말합니다. 저희는 세미나에서 천산둔을 소인과 군자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삶의 차원에서 이야기하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자라는 음陰의 세력을 주류적인 가치(외부적 척도)라면, 달아나는 양陽의 세력을 자기로 출발하는 마땅한 마음으로 볼 수 있지 않을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은둔한다는 건 상황을 마주하지 않고 회피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은데, 음의 세력을 주류적 가치로 이해했을 때 그 가치에 포섭되지 않으려는 적극적인 실천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흥미롭게 이야기나눴습니다. 이렇게 괘사를 이해하면 <대상전>에서 소인을 멀리하여 나쁘게 대하지 않고 엄하게 대한다(遠小人, 不惡而嚴)는 말도 새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소인을 멀리한다’는 것(遠小人)은 주류적 가치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는 것이고, ‘나쁘게 대하지 않고 엄하게 대한다’는 말(不惡而嚴)은 그러한 가치가 싫다고 부정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엄격하고 치밀하게 이해해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 아닐까요.
수산건(水山蹇) 괘는 산山 위에 물水이 있는 형상이며, 험함에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건괘에서는 괘사에 “서남은 이롭고, 동북은 이롭지 않다”(利西南, 不利東北)라는 말이 흥미로웠습니다. 공영달은 서남이 이로운 까닭을 그곳이 ‘평이’平易한 방위이기 때문이고, 동북이 이롭지 않은 까닭은 그곳이 ‘험한’ 자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평이’한 방향으로 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험함이 눈 앞에 있는데 ‘평이’한 자리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저는 이번에 ‘험하다’는 이미지를 새롭게 생각해봤습니다. 산이 험한 것은 굴곡이 크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어려움을 겪으면 쉽게 더 좋은 것을 꿈꾸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더 좋은 것이 한편 우리를 더 나쁘게할 수 있음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걸 놓칩니다. 좋아하고 집착할수록 시간이 흘러 그것을 잃을 때 상실감이 크듯이요. 험함의 방위는 바로 ‘더 좋은 삶’, ‘더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꿈꾸는 곳이 아닐까요. 그와 반대로 ‘평이’한 방향은 마음이 평온한 상태를 추구하는 방향이 아닐지요. 구오九五효를 보면 ‘평이함’의 길은 벗-동지가 오는 것과 연관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추구할 때 타자를 경쟁 상대로 보게 됩니다. 그러나 평이함의 방향은 어떨까요. 평이함은 어떻기에 벗-동지와 연결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규창조>
때에 맞는 멈춤
수산건괘와 천산둔괘는 모두 하괘가 간(艮)으로 어떤 이유에서든 멈춰 있는 괘이다. 그런데 멈춤의 이유는 서로 다르다. 건(蹇)괘는 감(坎)에 멈춰 있고, 둔괘는 건(乾)에 멈춰 있다. 같은 멈춤이라 해도 앞둔 때가 다르기에, 이 두 괘를 보면서 때에 맞는 멈춤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천산둔괘와 수산건괘는 단순히 나아가거나 물러가기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고 하지 않는다. 둔괘는 음이 자라는 것에 발맞춰 서서히 물러나는 것을 말하는데, 뒤집어 말하면, 물러나면서 무언가를 하라는 얘기다. 건괘는 앞에 험난함이 있음을 알고 방향을 바꿔 나아갈 것을 말한다. 그게 괘사 "서남으로 나아가는 게 이롭고, 동북으로 나아가는 건 이롭지 않다"는 구절이다. 무작정 나아가는 건 충분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나아가지 않는 것도 충분하지 않다. "서남", 좀 더 평이하고 벗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괘에서 말하는 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리듬을 구성하는 일이다.
여기서 두 괘에 공통된 간괘의 역량이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볼 수 있다. 지난번에 공부했던 뇌수해괘와 풍수환괘는 똑같이 감괘를 포함하되 동일하게 작동하지 않았다. 해괘에서 감괘는 풀리는 어려움만을 의미했다면, 환괘에서는 흩어지는 마음을 모으는 구심점을 의미했다. 그런데 이번에 공부하는 둔괘와 건괘에서는 간괘가 공통적으로 ‘제지하는 힘’, 나아가 다른 리듬을 구성하도록 ‘변형하는 힘’으로 나타난다. 대상전에 나오는 윤리를 보면, 외부를 어떻게 하는 것보다 자신을 단속하는 이미지가 반복된다. 둔괘에서는 소인을 멀리하되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거리감을 형성하고, 건괘에서는 스스로 돌이켜 덕을 수양한다. 기본적으로 외부로 향할 수 있는 힘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린 것이다.
둔괘는 멈춰서 은둔하는 괘이다. 하늘 아래 산이 있는데, 이때 산은 음의 자라나는 형상이다. 공영달은 "산은 음의 부류"라 하며 둔괘 자체가 산세가 하늘을 핍박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둔의 때는 말하자면 소인이 득세하는 때인데 이럴 때 나서는 건 그 무리에 합류하는 꼴이다. 이럴 때는 나서고 싶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중요하다. 육이효를 보면 이치로 견고하게 묶어서 자신을 단속해야 하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데 이때 소인이란 무엇일까? 그건 군자와 대비되는 그릇이 작은(?) 사람이기도 하지만 군자의 건건함을 흩어놓는 완전 다른 종류의 무리이기도 하다. 군자는 이때 나와 다른 존재를 배척하지 않으면서도 휩쓸리지 않는 방법을 고민하고, 그 공공의 마음이 바로 둔괘의 은둔 형태인 것. 이를 공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했고, 대상전의 “소인을 멀리하여 나쁘게 대하지 않고 엄하게 한다”라고 한 것이 아닐까.
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利見大人 貞吉. 건의 때에는 남서쪽 이롭고 북동쪽은 이롭지 않으며 대인을 만나러 가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방위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면서 어느 쪽이 이롭다고 말하고 있지만 어느 쪽으로 가는 것이 이로울 것인가의 문제보다는 고난에 처했을 때 어떻게 올바름을 지켜낼 것인가의 문제에 더 방점이 있는 것 같다. 건의 때에는 대인의 도움이 필요하며 그 도움을 통해 반신수덕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수산건 괘의 효사(초육, 구이, 사육, 상육)에는 왕건(往蹇), “가면 어렵다”는 표현이 반복된다. 가면 어려우니 아예 가지 않으면 어려움을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꼼수를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세상일은 가서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그 어려움을 모를 수 있다. 가서 어려움을 겪은 후에야 내 다음 한 발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고 돌아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황리조>
<천산둔>
둔괘는 아래에서 음괘가 두 개 자라난 모양으로 음괘의 기세가 상승하는 모습입니다. 주역에서는 아래에 음의 기운이 두 개가 쌓여있지만 곧 성대해져서 위의 양효를 몰아낼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이런 때를 주역은 음의 기운이 점점 자라나는 때를 소인이 자라는 때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나는 것이 아니라 군자들이 기미를 알고 자발적으로 물러나는 은둔의 때로 봅니다. 마치 군자가 소인(음효)이 성대해지는 때에 군자(양효)가 스스로 물러나 은둔하는 때와 같습니다. 그래서 둔의 때에 물러남은 상괘가 건이 있는 것처럼 하늘의 이치에 따라 자신의 향방을 능동적으로 정하는 것이지 자신의 안위나 이익을 따져 계산적으로 치고 빠지는 것과는 다른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둔괘의 괘상을 보면 아래에 음효가 두 개가 이제 막 자라고 있어 겉으로 보았을 때는 여전히 양의 기운이 성성하고 양의 기운이 충분히 펼쳐지고 있는 때라고 할 수 있죠. 게다가 둔괘는 12벽괘(辟卦)상 음력 6월입니다. 즉 아직도 양의 기운이 성할 때이나 그것은 동시에 음의 기운이 아래에서 서서히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둔의 때에는 이런 기미를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아직 괜찮은데 뭐. 라고 하지 않고 힘이 있을 때 서서히 다음 스텝을 적극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때라고 봅니다. 이럴 때 계속 기운을 펼치지 않고 지금껏 써온 힘들을 스스로 거두고 방향을 바꿀 수 있으므 형통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이익에 사로잡혀 시야가 좁은 소인은 이렇게 움직일 수 없고, 군자라야 가능하다고 하죠. 대상전에서는 이런 둔의 때를 ‘
소인을 멀리하되 나쁘게 대하지 않고 엄숙한 태도를 취한다(遠小人, 不惡而嚴)’고 합니다. 그래서 괘사에서는 지금의 기운 그대로 쓰는 것은 흉하지만 자신의 힘들을 조절하면서 가고 있으므로 바름을 지키고 있어 조금 이롭다고 합니다. 이를 단전에서는 ‘
강함이 지위에 합당하게 행동하여 호응하니 때에 따라 행동하는 것(剛當位而應 與時行也)’이라고 합니다.
둔의 때는 겉으로 보았을 때는 지금까지 어떤 일이 기운을 펼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때이지 쇠락하는 때는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을 놓지 못하고 경험치로 또 앞으로도 그런 패턴으로 될 것 같은 생각에 취해 미세하게 음이 쌓이는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하기 쉽습니다. 혹은 지금까지 해오던 방향이나 습관을 바꿀 필요가 있지만 귀찮기도 해서 계속 하던 것에 매이고 집착해 있다가 변화가 눈에 띄게 될 때야 뒤늦게 허겁지겁 따라가기 쉽죠.(
초육 遯尾, 구삼 係遯) 그런데 둔의 때에 황소가죽을 쓸 정도로 방향성을 잡아매는 뜻의 견고함이나(
구이 執之用黃牛之革, 莫之勝說) 기뻐하면서 은둔하고(
好遯) 아름답게 은둔하고(
嘉遯) 여유롭게 은둔하는(
肥遯) 역량을 쓰는 것은 그저 때가 그러하기 때문임을 인식하고 있으므로 추하게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물러나는 것이 아니라 물러남에 어떤 원한이나 미움이 없는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입니다. 왜냐하면 물러나는 것은 힘이 없어서거나 외부의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방향성을 만들어 낼 역량을 위해 힘을 안으로 수렴하고 거두는 능동적인 태도이기 때문이죠. 어떤 샘들은 조지훈의 시 낙화도 생각난다 하시고, 또 군자가 어디에 있든 자신의 처지에 맞게 행하고 그 외의 것을 바라지 않는다(君子 素其位而行 不願乎其外)는 중용도 떠오른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여유롭게, 기쁜 마음으로 멋있게 방향을 바꾸는 것 멋있는 경지인 듯한데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수산건괘>
건의 때는 어려움(難)이라고 했습니다. 괘상이 하괘에 멈춤을 뜻하는 간괘와 상괘에 험함을 뜻하는 감괘가 놓여 있어 험함과 어려움 앞에 멈추어선 상황이죠. ‘蹇’한자가 절뚝거린다는 뜻입니다. 우리 조에서는 건괘를 주역에서 어려움을 뜻하는 다른 괘들과 간단히 비교하면서 정리해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둔屯괘는 어떤 것의 일의 처음에 어디서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두서가 없어 우왕좌왕하는 어려움과 답답함이고, 곤困괘는 역량이 부족하고 궁색한 때이고, 감坎괘는 물의 위험이 거듭해 나타나 험하고 빠지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건의 때는 앞만 보고 열심히 걸었는데 문득 돌아보니 뒤에는 험한 산이 솟아 있고 앞에는 험함을 마주한 막막한 때죠. 그런데 괘사에서는 험한 동북방향이 아니라 평탄한 서남쪽을 택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힘들고 어려운 쪽은 피하고 쉽고 평탄한 쪽을 택해 가라는 것은 분명히 아닌 듯합니다. 왜냐하면 어쨌든 내 앞에 놓인 물을 건너가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실존이기 때문이죠. 이럴 때 쉬운 서남과 어려운 동북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 조에서는 이 동북방향과 서남방향을 효사의 가고
往 옴
來을 뜻하는 것으로 읽어보았습니다.
정이천은 괘사의 괘사의
貞吉을 ‘고난이 해결되지 않더라도 올바른 덕을 잃지 않아 길하다’고 해석했는데요. 여기서 힌트를 삼으면 성급하게 건의 고난을 해결하고 타개하고자 무모하게 난관을 뚫으려 하지 말고 우선은 멈추어 대인에게 조언도 구하면서 신중하게 한 발씩 걸어가라는 뜻으로 여겨집니다. 즉, 건의 때에 험한 동북 방향은(
往)은 지금 처한 외부의 상황인데 이것은 때가 그러하기 때문에 바꿀 수 없는 부분입니다. 반면 쉬운 서남쪽(
來)은 내가 그래도 해볼 수 있는 나의 몸과 마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의 믿음이나 행동은 스스로 돌이키고 점검할 수 있는 쉬운 서남방향이고, 돌아오는(
來)부분입니다. 그래서 단전에서 건의 때를 ‘
위험을 보고 멈추어 설 수 있으니 지혜롭다(見險而能止 知矣哉)’고 했는데 이때의 止는 위험에 멈춰 가만히 있거나 쉬운 곳만 찾아 머무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대신 ‘
蹇’ ‘절룩거리며 간다’는 것 자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성급해하지 않고 자신의 방향성에 대한 질문을 놓지 않고 가는 신중한 마음과 태도를 뜻하는 것이라 할 수 있죠. 이것은 대상전의
자신을 돌이켜 덕을 수양한다(反身修德)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그런데 단전 후반부에는 신중한 태도를 가지고 대인을 만나면 가서 공이 있고(
利見大人 往有功也), 올바름을 굳게 지키면 나라를 바로 잡는 것(
正邦也)이라고 했습니다. 즉 반신수덕은 단순히 나의 내면의 바름을 지키기 위함으로만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결국은 나라를 바로잡는 태도의 근본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에세이를 준비하며 에세이 쓰기의 원칙을 다시 찾아보게 되네요 ㅋㅋㅋ
근데 원칙은 원칙일뿐,,,,,,, 전 다른 곳에서 허우적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