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우리는 64괘를 완독했습니다! 그 기쁨에 점심을 무려 30분이나 일찍 먹고 창경궁 나들이를 했지요. 단풍은 다 떨어졌어도 모처럼 나가 콧바람을 쐬니 신이 나던데요 ㅋ 3교시 시간이 다 되어 생략한 차는 다음 주에 준비할 거 같으니 기대해 주세요~
주역 읽기를 끝냈으니 에세이 쓰기에 본격적으로 매진할 시간입니다. 8주차부터 2교시 토론 시간과 3교시 모두 에세이 글쓰기조로 만납니다. 이제 정말 질문을 마무리 짓고 괘 분석으로 들어갈 시간인데요. 뭐든 써와야 조원들과 나눌 수 있으니 매일 고민하고 조금씩이라도 써서 일요일에 만나요~
간식은 저와 지영샘이 준비합니다.
<정옥조>
이번 주에 읽은 점(漸)괘와 귀매(歸妹)괘는 어쩌다 남게 된 괘들이라지만 여자가 시집감을 뜻하는 귀(歸)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나옵니다. 귀(歸)는 여자가 시집간다는 뜻으로 쓰였는데 이는 음과 양이 만나는 것이고, 이로써 만물은 생겨난다고 볼 수 있으니 생산력의 핵심인 인구가 중요했을 고대 공동체에서 결혼은 매우 필요한 제도였을 겁니다. 점괘는 결혼처럼 절차와 순서에 따라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귀매괘는 언니를 따라 첩으로 가는 동생의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도를 말한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절차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공동체 안에서 두 집안의 결합이나 나라 간의 외교 같은 공적인 일이 떠오르지만 꼭 공적이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이나 공부, 관계에서 역시 순서는 중요합니다. 일을 시행할 때 결재라인을 건너뛸 수 없을뿐더러 책임을 물을 때 역시 순서를 지켰는지가 중요하죠. 효사에 철새인 기러기가 나오는 것 역시 계절에 맞춰 줄지어 날아가는 모습으로 때(時)를 따르는 이치를 보여줍니다. 아래 강가에서 시작해 저 높은 하늘로 점차적으로 나아가는 모습인데 과연 꼭 그렇게 순서를 지키면 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강가에서 나뭇가지, 구릉은 순차적으로 나아간다 해도 하늘로 날아오르는 건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든다는 거죠. 매일 하는 일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것과 갑자기 도약하게 되는 시점에 관한 이야기로도 들렸습니다. 매일의 연습이 없다면 도약은 불가능하지만 그 순간은 갑작스럽게 오기도 하니까요.
귀매를 天地之大義이자 人之終始라고 말하면서도 괘사에서 가면 흉하다고 한 이유는 지위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지의 위대한 뜻은 음양이 서로 사귀어 생식하는 것인데 이때 자리가 마땅하지 않다는 건 무얼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정이천은 남녀는 존비(尊卑)의 차례가 있고 부부는 따름의 도리가 있는데 자리가 부정이기에 정(情)에 이끌리고 욕심에 빠진다고 해석했습니다. 욕심이 들어간 기뻐함으로 동하게 되면 몸을 상하고 덕을 해치기 때문에 흉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는 천지의 뜻이라기보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지어낸 서사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귀매괘에 ‘이는 소녀를 위하여 이 例를 만든 것’(209쪽)이라 말했는데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인공이 아닌 보조자, 혹은 엑스트라로 주인공 옆에 있게 되는 경우가 있죠.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하는지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지위가 바르게 않아 절뚝거리지만 능히 밟고 나아가고, 애꾸눈이지만 능히 보려고 하는 것들이 그런 피하지 못할 상황(不正)에서 자기 바름을 지키는 떳떳한 도리라고 말이죠.
대상전의 영종지폐永終知敝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지폐知敝는 자연의 이치이든 관계에서든 폐괴(해지고 무너짐)의 이치가 있음을 알아 삼가고 경계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영종永終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끝마침을 길게 한다’ 혹은 ‘끝(終)이 계속 된다’는 건 귀매를 人之終始라고 단전에서 말한 것처럼 한 사물의 끝이 끝이 아니라 변화의 다른 시작임을 다시 말해 끊임없이 변화하면서 생을 이어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1교시에 배운 장자의 사유 가운데 ‘한 사물의 해체는 동시에 한 사물의 형성이다. 한 사물의 형성은 동시에 다른 한 사물의 훼멸이다’라는 부분과 통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규창조>
이번주는 풍산점(風山漸), 뇌택귀매(雷澤歸妹)괘를 읽었습니다. 점괘와 귀매괘의 공통점은 시집가는 여성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64괘 중 결혼하는 여성의 관점에 주목한 희귀한 괘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만 똑같이 시집가는 형태는 아닙니다. 점괘는 정식으로 결혼하는 것, 귀매괘는 잉첩으로 시집가는 것이라는 게 다릅니다.
점괘는 나무가 산에 뿌리를 내리듯 여자가 새로운 가정으로 시집 와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효사를 보면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을 그리는데요, 기러기는 먹이가 많고 편안한 곳에만 날아들지 않습니다. 불안정한 가지에도 앉고, 돌에도 앉습니다. 그때마다 기러기는 어떻게든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게 낯선 곳으로 점점 나아가는 시집간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때 점진적인 나아감은 꼭 시집의 정석(?)을 따르진 않습니다. 즉 결혼해서 남편과 화목하게 살면서 아이를 낳는 수순을 밟기에는 너무 변수가 많습니다. 남편이 갑자기 어디론가 멀리 떠나기도 하고 아이가 오랫동안 생기지 않기도 하고 도적이 침범하기도 합니다. 이런 때에 적응하는 힘은 점괘 소성괘의 덕성인 '지이손(止而巽)에 의거합니다. 산은 경거망동하지 않으며 신중하게 처신하고 바람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춰 어디로든 들어갑니다. 결혼을 하면 여자는 남자와 달리 완전 다른 환경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진 않더라도 우리는 완전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환경의 중요성을 알게 되지요. 점괘는 자신이 이룬 것이 사실 환경, 타자의 기여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알고 겸손하고 신중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는 괘인 것 같습니다.
저희 조는 처음에 귀매의 단전에 농락(?)당했습니다. 결혼하는 일은 인간사의 시작과 끝이라고 하면서[歸妹 人之終始也], 한편으로 지위가 맞지 않는 일[位不當]이라고 하기 때문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아무래도 잉첩 제도가 무엇인지 몰라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잉첩은 말하자면 한 자매가 같은 사람에게 시집가는 상황 같은 것인데, 그때 자매 중 한 명은 정실부인이 아니라 언니에게 딸려 가는 형태가 됩니다. 결혼 때를 놓치거나 두 가문간의 관계를 더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이런 제도를 시행하는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효사에선 유독 늦은 때를 의식한 구절이 많이 나옵니다.
토론에서는 귀매괘를 보며 '모든 사람이 올바른 자리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을 생각해봤습니다. 잉첩으로 시집보낸다는 것이 바로 이해가 안 가, 같이 시집가는 자매를 하나의 팀으로 이해해 본 것입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자신에게 맞는 자리를 받아 그에 맞게 행동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가령 어떤 조직에 자리가 나면 한 팀이 통째로 이동할 때도 있는데, 그 팀 내의 사람들이 모두 그 자리에 적합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팀의 리더에 딸려가는 경우가 많죠. 그럴 때 팀원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자리를 얻은 기쁨을 잠시 내려두고 이 자리가 사실 자신의 온전한 공인 게 아닌 걸 알며 삼가는 것입니다. <주역>에는 사실 좋은 괘도 나쁜 괘도 없다는 게 이런 것 같습니다. 좋은 자리, 나쁜 자리도 없고요. 다만 어떤 자리에 떨어지든 최대한 그 자리에 마땅하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뿐이죠. 그럴 때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 하는 윤리를 점괘와 귀매괘가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황리조>
'여자가 시집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풍산점' 괘와 '뇌택귀매'. 점괘는 ’괘사‘에서, 귀매괘는 ’괘명‘에서 이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지요. 우리 조에서는, 남녀간의 결합이나 결혼, 즉 결연이 당시 사회에서 지녔을 의미를 중심으로 많은 얘기들을 나눴습니다. 더구나, 이 괘들뿐 아니라 택산함이나 뇌풍항괘가 남녀간 관계를 문제 삼고 있고, 또 여러 괘들에서 효사를 통해 혼인에 대해 거론하고 있음을 볼 때 결혼 문제가 생식이나 재생산, 나아가 사회적 코드화와 관련해 그 중요성이 막대하는 것을 증거하는 것일 테니까요. 결론삼아 말해, 풍산점 괘가 그 점진적인 흐름이나 차서를 중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정식 결혼을 통한 상징적 질서의 수립과 관련된다면. 뇌택귀매 괘는 어리고 생산력이 있는 잉첩(정처의 동생이나 조카)의 결혼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재생산의 지속을 통한 세대의 계승과 관련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냐 싶었습니다. 이같은 구조적인 보완과 체계적인 시스템이 고대 국가 초기 사회를 형성, 유지하는 데 막중한 역할을 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에 대해선 더 세밀한 인류학적 고증이 필요한 것이겠지만요.
저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 괘들을 지금 이 시대의 삶과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논의들을 주고받았습니다. 풍산점은 말할 나위 없지요. 시집가는 신부의 발걸음이나 기러기떼의 질서정연한 편대 비행이 보여주듯이 일상의 세사 하나하나라도 소홀히 여기거나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는 것, 하늘길로 비상해 그 깃으로 의표를 삼을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일신우일신하는 나날의 수행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하여 채운 샘께서 말씀하신 ’일상으로의 초월‘이란 게 바로 점괘에서 말하는 바가 아니겠냐는 것까지, 점괘가 지금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가 실로 절실한 우리의 문제임을 확인했더랬습니다. 귀매괘는 쉽지 않았습니다만(ㅜ), 언니를 따라 시집길에 나서야 하는 것과 같은, 원치 않지만 부득이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예외적 상황에 처해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을 이끌어냈습니다. 마치 <중용>에서 말한 바, 어떤 처지에서도 자득(自得)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군자의 도리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요. 그런 면에서, 호랑이에게 물릴 수 있는 상황에서 애꾸눈으로 보거나 절름발이로 걸으면서도 유인지정(幽人之貞)을 품고 살라고 하는 ’천택리‘ 괘의 효사의 일부가 여기에 재등장하는 것이 썩 어울린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경우, 텅빈 광주리를 받들게 되거나 피없는 양의 육체를 확인하게 되는 불상사를 맞이하리라는 경고 또한 더없이 멋진 마무리라 생각되고요.
그러고 보면, 풍산점과 뇌택귀매 괘는 여자의 결혼을 통해 ’일상‘과 ’비일상‘의 삶(물론 둘이 분명히 구분되기야 하겠습니까마는)에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실천적 태도와 마음가짐을 문제삼고 있다는 점에서 마치 거울쌍과도 같은 괘들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괘는 ’종‘이면서 또한 ’착‘의 와중에서 순환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입니다. 더구나, 귀매 괘는 주역의 이념이랄 수 있는 ’영종지폐‘를 말하는 괘가 아니겠습니까?^^ 건곤, 미제기제에서 시작해 이렇게 귀매 괘가지, 올해의 마지막 괘읽기가 이렇게 마무리되어 더없이 감동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간 중요한 주제 중심으로 엮고 남는 두 괘를 생각없이, 떨이처럼 배치한 거라고 정옥 샘께서 말씀하셨는데, 역시나 ’주역‘은 인간적 의지 너머에서 우리를 갖고 논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어떤 식으로는 주역읽기가 지속될 수 있길 바라봅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끝까지 파이팅요!!!
지난 주 철일에서 장자에 나와 있는 열자의 모습을 통해 '일상으로의 초월'에 대해 강의를 들었었죠. 점괘에서 같은 의미를 발견한 것 같은데요. 일상의 꾸준함이 규오효의 홍점우릉에서 상구효의 홍점우규로의 도약을 만들어준다는 의미였는데, 주역이 참 새록새록 새롭게 읽힙니다. 에세이와 별개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