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함경』 (마스터니 후미오 지음. 이원섭 옮김. 현암사)을 읽고 공통과제 중심 토론.
좋은 벗과 함께 가라!
부처님은 온갖 욕망을 쫓고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신분과 가정생활을 버리고 출가했습니다. 구도의 길을 가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부모님의 절규와 아내와 아들의 사랑을 떨쳐낼 만큼 강렬했습니다. 생로병사에 따른 의문을 해결하려는 마음은 무소의 뿔처럼 단호하고 강렬했던 것이지요. 그 강렬한 의지는 독고다이로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나선 후 바로 스승과 도반을 찾아 같이 시도하고 확인하고 변환했습니다. 구도의 강밀도를 높이고 나아가는 힘은 선우(善友)가 되고 선우를 만나는 것입니다. 선우는 선법(善法)을 체득하고, 악법(惡法)멀리하도록 서로 독려하며 같이 가는 벗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법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하며 실천하는 삶입니다. 부처님은 자신을 선우로 삼고 나아가면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할 몸이면서도 그것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숙원인 생로병사의 문제를 생활공동체인 승가를 구성하며 해결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승가의 구성원들은 모두 평등했습니다. 부처님도 예외가 아니어서 태고부터 있었던 길을 먼저 발견한 스승이자 선우였습니다. 그럼 선우가 아니면 같이 갈 수가 없는 것인가? 모든 중생을 평등하게 대하고 자비심을 베풀라는 불교에서 그렇게 말하면 되는가? 라는 의문이 들 수 있지요. 모든 사람을 아우르며 함께 갈 수는 없습니다. 자신이 먼저 확고한 중심을 잡지 못했다면 같이 휘둘리고 허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선우를 만나려면 자신이 먼저 선우가 되어야 하겠지요.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는 다르지 않다.
바라문은 제사를 주관하며 자기와 남을 위해서 복이 되는 길을 닦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면 부처님과 제자들은 집을 떠나 자기통제와 자기의 편안함, 자기의 고통을 없애려고 하니 결국 자기 한 사람만을 위한 길이라며 힐난하였죠. 이는 한 사람만을 위한 것보다 많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 더 우월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바라문에 의해 제기된 이 문제는 후에 대승과 소승의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이 논쟁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上求菩提/自利)과 중생을 제도하는 것(下化衆生/利他)을 구분하고 대승이 소승은 자기의 해탈에만 전념할 뿐 대의를 망각하였다고 비난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은 뭐라고 하셨을까요? 부처님이 출가생활을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요? 생로병사를 겪는 타인의 고통을 보고 자신의 실존문제에 직면한 부처님은 출가하여 깨달음의 길을 실천하고 완성함으로써 번뇌를 소멸하고 해탈하였습니다. 그 후 불안과 두려움이 일어났으나 이를 이겨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길을 가도록 법을 설한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해탈에 이르렀으니 한 사람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위한 행복의 길을 가신거지요. 이 과정은 자리와 이타의 길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어째서 바라문은 부처님의 길이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대승과 소승의 논쟁이 그리 오랫동안 반복되었을까요? 부처님의 가르침에는 자기의 문제 해결, 자기의 확립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즉 상구보리가 선행하는 것이지요. 자기가 자유를 얻어야 남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요. 이는 결코 자리가 이타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자리와 이타는 표리관계로 경중을 따질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법에 집중하는 것은 이타행위와 다르지 않습니다.
깨달음 이후의 길은......
깨달음 후에는 이전과 어떻게 달라질까요? 고되고 귀찮던 일들이 기쁘고 충만한 것으로 다가올까요? 음식의 호불호가 없어질까요? 나른하고 피곤하던 몸이 생생하게 살아날까요? 아무튼 중생들은 뭔가 일상에 대한 큰 변화를 기대하는데 이는 그저 환상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아직도 모든 미덕을 구미하여 어떤 과오도 있을 수 없는 신을 설정하고 닮고자 하는 희망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부처님은 그런 신의 관념을 배척합니다. 갈애와 업에 의해 생겨난 몸과 마음을 가진 인간으로서 올바로 살아가는 길을 발견하고 가르침을 주실 뿐이죠.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은 탐진치의 소멸을 말하는 것이지 오온의 해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배탈이 나고, 등이 아파 제자에게 설법을 맡기고 자신은 누워서 지켜보았던 순간들도 있었던 것 아니겠습니까. 깨달음 이후에도 여전히 각자의 체질과 성향, 기질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탐진치의 불이 식어버렸기 때문에 그것과 맞설 힘이 생겼고 이어지는 수행을 통해 그 힘이 강화될 따름이지요. 깨달음 또한 끝이 아니라 과정이며 운동중인 것입니다. 계정혜를 계속하며 익숙해지고 그런 조건에서 자유로운 상태가 되는 것이 깨달음의 과정입니다. 부처임은 방일하지 말고 끝없는 정진을 계속하며 깨달음을 얻어 자유의 경지에 이른 다음에는 “유능· 솔직하고 단정할 것, 좋은 말을 하고 유화하고 거만하지 않도록” 유념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깨달음 이후 오히려 할 일이 더욱 많아지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비를 행하는 길입니다. ‘자(慈)는 우리가 흔히 쓰는 ’사랑‘이라는 말로 대치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남녀의 사랑, 부모와 자식의 사랑, 재물에 대한 사랑 등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랑은 일종의 인력으로 이것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생명의 본원적인 힘‘인 사랑은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어떤 한계와 불순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본원적인 사랑의 힘을 지양시켜서 다른 사람은 물론 일체의 생명에게 확대하라고 설하십니다. 비(悲)는 본디 ’신음‘을 뜻하는 말입니다. 남이 괴로워서 신음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가여워하며 그 괴로움을 없애주고 싶은 마음이 들죠. 부처님은 인간의 생존 양상을 슬픔으로 보고, 먼저 자기의 마음을 향해 침잠해 가는 방식으로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내적 심층에 이르러 몸과 마음의 진상을 진정으로 알게 된 다음에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됩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동고 동비(同苦同悲)의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에서 자비의 샘이 솟아납니다. 그래서 “삼세의 모든 세존은 대비(大悲)로 근본을 삼는다.”고 말하지요. 달라이라마께서도 매일 아침 뉴스를 통해 세계의 신음을 듣고 자비명상을 하신다고 합니다. “일체의 생명 모든 사람에게 행복이 있으라, 평화가 있으라, 은혜가 있으라.”
오후: 『해명』 (미셸 세르. 박동찬 역. 솔) 역자서문과 1장을 읽고, 발제와 질문을 토대로 토론.
미셸 세르에 대한 규정
세르(1930~2019)는 “전쟁과 폭력의 아들이며, 강제수용소의 공포를 통해 양육 받은 나”라고 스스로를 규정합니다. 1936년 6세 때 스페인 전쟁, 1939년 9세 때 나치 침공에 다른 패배, 12세 때 강제 수용의 비극, 14세 때 해방 직후 벌어진 청산 작업, 15세 때 히로시마 원폭 투하 등을 겪으며 몸과 기억에 새겨진 전쟁의 상흔들은 그의 실존과 행적에 여러 방식으로 변형되어 나타났습니다. 19살에 가업의 계승이자 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선택했던 해군 사관학교를 그만두었던 것도, 지적 혁명을 통해 행복감을 안겨준 과학의 길을 떠나 문학, 철학, 종교, 역사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도, 주류세계를 떠나 아웃사이더의 길을 가는 것도 폭력과 죽음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치 사나운 개들의 이빨과 짖어대는 소리를 피하기 위해서 정상적인 길을 떠나 다른 길을 만들어 떠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는 그를 밖에서만 보기 때문에 산만함을 느끼고, 모든 지식의 영역을 넘나들며 직조되는 그의 사고와 문체에 난해함을 느낍니다. 이에 『해명』은 부뤼노 라투르와의 대담을 통해 사람들에게 그 개들을 보고 그 소리를 듣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르의 인식론
과거의 인식론은 어떤 형이상학 체계를 전제하고 그 체계를 정당화하기 위한 것으로 기능했습니다. 19세기 이래 과학과 철학이 구분되고, 형이상학이 분리되면서 현대 인식론은 국지적인 탐구를 해왔습니다. 이런 경향은 과학의 세계가 분화할수록 심화되어 갔고 이제 국지성은 인식론의 필수적인 한 조건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과 더불어 학문 세계 전체를 조망하려는 보편적 이념 또한 면면히 이어져 20세기에는 논리실증주의자와 구조주의자들이 보편학의 이념을 추구하였습니다. 세르는 구조주의의 연장선상에서 보편학의 이념을 새롭게 추구하는 대표적인 철학자였습니다. 세르는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떤 전체성의 개념과 분리될 수 없다”(p68)고 말합니다. 이때의 전체성은 부분들의 합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르는 전체성이라는 개념에 시간과 운동이라는 요소를 도입 합니다. 철학자는 온갖 종류의 과학들과 그것들의 역사 그리고 과학이 아닌 것까지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 백과사전같이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살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 사이에 어떤 공간적, 연역적, 정합적인 전체성을 부과하지 않습니다. 모든 영역들을 유영할 뿐입니다. 그 사이를 연결하고, 뚫고, 때로는 싸우면서 말이죠. 그러면서 어떤 전체의 이념을 부분들에 부과하지 않고, 담론들 사이의 소통 가능성, 동형성, 공통의 토대 등을 발견할 뿐입니다.
토론에 대한 태도
세르는 토론을 말싸움, 전쟁으로 표현하며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고등사범학교에서 선생들과 학생들이 이데올로기적으로 심판하는 폭력과 테러리즘을 마주한 경험과 학문 분야의 분과 계열들과 여러 정치 및 종교 운동들이 나뉘어 각각 온갖 야망들을 드러내고 같은 집단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제시키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요. 전쟁과 폭력에 대한 그의 저항은 학습 방법에까지 이어져 토론에 대한 불신감마저 드러냈던 것입니다. 그는 토론은 “늘 기존의 생각들을 확인하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게 한다.”(p85)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고들을 격화시키고, 압력 단체들을 구상하고 굳힌다고요. 혹 토론은 정확성을 가다듬는 데 기여하기도 하지만 보존할 뿐이고, 발견과 창조에는 공헌하지 못합니다. 창조는 ‘빠른 직관과 무중력 상태의 가벼움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창조는 토론이 아니라 고독, 독립성, 자유,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마스타니 후미오의 <아함경>은 불교의 '깨달음'이 도달해야 할 목표가 아님을 확실히 알려줍니다. 붓다의 행적을 토대로 말이죠. 저는 저자의 이러한 시도에서 붓다의 '법'이 다르게(더 친밀해서 더 신성하게) 저에게 다가오는 좋은 체험을 했습니다. 함께 읽은 친구들과 토론 하면서 얻은 체험 같기도 한데, 세르는 왜 토론을 피했을까요? 세르가 비판하는 "늘 기존의 생각들을 확인하는 쪽으로 압력을 가하게 하는 " 토론은 어떤 면일지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해명>을 읽으며 우리가 세미나에서 하는 토론과 세르의 토론을 비교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미영샘의 후기에서 지혜와 헤르메스 세미나의 열기(재미)가 느껴지는 데 저만의 느낌일까요?^^
촘촘 후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이 역시 우리 세미나-토론의 흔적일진데, 세르가 우려했던 토론의 어떤 면모들을 경계하면서 우리 세미나를 '창조적인 무엇'으로 만들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고 싶어집니다.
*세 번째 시간(2.29) 공지입니다.
-<디가니까야> 1품 1장(73~132쪽)까지 읽고 과제를 적어 옵니다.
-<해명> 2장과 3장(99~222쪽)을 읽고 질문 또는 이야깃거리를 3개 이상 적어서 과제와 함께 올립니다.
-<해명> 발제는 윤순샘과 혜윤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
-간식은 은이샘께서 준비해주시겠습니다.